▲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지난 1일 출범했다. 산재사고 예방기능을 확충하고 현장 관리를 강화하며 새로운 안전·보건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겠다는 의도다. 기존 본부조직(1국 5과 47명)을 1본부 2관 9과 1팀 82명으로, 지방관서 조직을 63과 2팀 821명 체제로 확대·개편했다.

산업안전보건본부 설치는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대비한 후속조치이며,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위한 사전 작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본부 출범은 중대재해예방과 더불어 근본적인 안전보건 정책·집행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

입법취지 사라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입법예고안

산업안전보건본부 출범에 맞춰서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9일 발표했다. 그러나 시행령 제정안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입법취지는 ‘중대산업재해와 시민재해는 개인의 과실이 아니라 기업의 조직적 범죄이며,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통해 재발방지와 재해예방을 위한 구조적, 조직적 대책을 세우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안에는 위험작업에 대한 2인1조 작업과 같은 중대재해 근절 핵심 내용은 빠져 있다. 또한 관리상의 조치를 외부민간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면서 경영책임자가 처벌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줬다.

주무부처인 노동부가 관계부처 회의를 통해서 만든 제정안이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안전보건본부 설치가 중대재해 감소와 근본적인 안전보건정책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중대해재처벌법 제정은 중대재해가 기업의 범죄행위, 즉 안전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다하지 않거나 하청으로 위험을 외주하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용납하지 않겠다는 신호이고, 이 역할이 작동돼야 한다.

2019년 11월 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16~2018년 발생한 중대재해조사 보고서 자료를 통해 중대재해 유형별 현황을 분석·연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본 보고서에 따르면 제조업은 단독 작업에서 중대재해의 80% 이상이 발생했다. 32%가 끼임·협착사고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사고의 대부분은 기계가 가동하고 있는데 수리점검을 하다가, 안전방호설비가 미흡해 발생했다.

건설업은 20억원 미만의 공사 현장 중대재해가 72%를 차지하고 있다. 떨어짐으로 인한 중대재해가 59%로 매년 270여명에게 발생했다. 방호장치 미설치 및 불량, 그 밖의 작업수행 절차 부적절이 각각 30%대, 20%대를 차지하고 있다. 매해 작업수행절차 부적절로 인한 사고가 증가하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현황을 연구한 보고서만 보더라도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과 더불어 중대재해 발생 원인과 유형에 대한 대책이 정부의 시행령 안에 포함돼야 했다. 하지만 노동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는 눈을 감았다. 정부는 중대재해 발생 원인과 대책을 알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시행령에 반영하지 않았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비전 있어야

사고 이후 수많은 대책이 만들어졌지만, 중대재해로 인한 노동자들의 죽음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변화의 신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에도, 시행령을 제정하는 지금도 생명과 안전에 대한 가치보다 경제논리가 압도하는 형국이다.

새롭게 신설되는 산업안전보건본부는 외형을 확대하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안전과 관련해 노동자에 대한 배타적 옹호기관으로서 자기 위치를 재정립해야 한다. 그러자면 산업안전보건본부 재편과정에서 보여줬던 깜깜이 행정, 밀실논의에서 벗어나서 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애써 온 노동안전보건 단체와 전문가들, 무엇보다도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위험을 만드는 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행정을 통해서 확인시켜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 위험작업에 대한 정의와 대책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또한 무너져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규범력을 회복해야 한다. 사업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웬만해서는 노동부 감독이 들어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동부 감독이 들어오더라도 솜방이 행정조치와 벌금으로는 기업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발달과 산업재편에 따라 고용형태도 다양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다양한 위험이 양산되고 있다. 전통적인 고용형태로 규율되지 않는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기반 노동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과 집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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