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에 위치한 창고 겸 업무지원직 노동자 탈의실 <의료노련 보훈병원노조 중앙보훈병원지부>

“인격적인 모멸감이랄까, 차별을 느끼죠. 병원 내 다른 직군은 탈의실이 있는데 저희는 창고를 로커룸으로 쓰고 있으니까요.”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에서 환자이송업무를 하는 A씨는 14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입사한 지 2년이 넘도록 창고에서 옷을 갈아입으니 제대로 된 탈의실 필요성을 항상 느낀다”고 말했다.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A씨는 창고 안 로커룸을 탈의실로 쓴다. 소모품 더미 옆에 옷이나 소지품을 보관하는 로커가 5개 놓여 있는 식이다. 성별이 나뉘어 있지 않아 남성인 A씨가 여성이 대부분인 리넨(침구류·환자복 관리) 직군 노동자들과 탈의실을 같이 쓴다. 출퇴근 시간이 겹치면 동시에 쓸 수 없어 서로 탈의실 이용을 양보한다.

곤란한 상황도 여러 번 있었다. 창고에서 소모품을 가져가려고 들어온 직원과 상의를 탈의한 채 맞닥뜨린 것이다. 잠금장치가 없는 도어록이라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바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A씨는 “업무지원직이라는 이름의 무기계약직이라 겪는 차별이라고 생각한다”며 “업무지원직들은 제대로 된 휴게실도 없어 빈 회의실을 휴게실로 쓰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공공기관인 중앙보훈병원, 노동자 인권 무시”

14일 의료노련 보훈병원노조 중앙보훈병원지부(지부장 황규호)에 따르면 중앙보훈병원의 업무지원직(무기계약직) 노동자 450여명 중 다수가 창고를 남녀공용 탈의실로 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업무지원직은 간병·환자이송·리넨·청소 등 2018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중앙보훈병원은 국가보훈처 소속 공공기관인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 운영하는 공공의료기관이다. 5개 건물로 1천400개 병상을 보유해 33개과의 진료과목을 운용한다. 그런데 A씨와 같은 업무지원직 노동자들은 수십개 병동 한편에 위치한 ‘일반창고’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작업복을 입고 일하기 때문에 탈의실은 이들에게 업무상 필수적인 공간이지만 마땅한 공간은 마련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업무지원직을 중심으로 결성된 지부는 지난 3·4·5월 세 차례 병원에 “업무지원직을 위한 탈의실과 휴게실을 마련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사측은 “배선실이나 콘퍼런스룸(회의실)을 이용하라”고 답변했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황규호 지부장은 “공공기관에서 성별 구별도 안 되는 탈의실을 노동자에게 쓰라고 한다”며 “이러한 탈의실을 사용하라는 사측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고,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적절한 탈의시설, 업무상 질병 예방하고 업무능률 향상”

고용노동부가 2019년 펴낸 ‘사업장 세면·목욕시설 및 화장실 설치·운영 가이드’에는 “산업재해·업무상 질병을 예방하고 업무능률을 향상하는 데 세척(탈의)시설과 화장실이 필요하다”고 명시돼 있다. 노동부는 탈의시설의 설치기준 첫 번째로 성별 구분을 꼽는다. 일상복이 오염에 노출되지 않도록 작업복과 일상복의 탈의공간을 분리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중앙보훈병원의 업무지원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탈의시설은 탈의실로 부적합한 것이다. 의료노동자 특성상 환자와 대면하는 일이 잦은데 병원 소모품이 쌓인 창고에서 작업복을 갈아입어야 하는 환경이 위생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남녀 공용 탈의실은 범죄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김옥란 의료노련 교선국장은 “직원 탈의실을 남녀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법적 문제를 떠나 노동인권의 침해소지가 다분하다”며 “불법촬영 같은 성범죄에 노동자들을 사실상 무방비로 방치하는 병원의 행태는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중앙보훈병원 관계자는 “탈의실이 8월 중으로 마련될 수 있도록 공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지부 관계자는 “공사를 어디에 하고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지부가 몇 차례 소통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한 번도 제대로 된 답을 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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