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서울남부지법 2021.6.4. 선고 2019가합112404 판결

1. 사실

원고들은 피고 한국전력공사(이하 ‘피고’ 또는 ‘피고 회사’)의 경인건설본부(이하 ‘이 사건 사옥’)에서 시설관리업무 등을 수행해 왔다. 원고 1명을 제외한 원고들은 피고와 시설관리에 관한 용역계약을 체결한 외주업체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해 그 소속 근로자였다가 피고 자회사 한전에프엠에스 주식회사(이하 ‘자회사’) 소속 근로자로 순차로 고용돼 왔다. 나머지 원고 1명은 자회사 설립 이후에 자회사에 입사했다. 그런데 이 판례리뷰에서는 외주업체에서 자회사로의 전적동의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파견근로자의 직접고용 반대의사 표시에 관한 쟁점을 살피고자 한다. 따라서 자회사에 입사했던 원고 1명은 이 글에서 논의하는 원고들에 포함돼 있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추진되자 피고는 자회사를 설립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서 원고들이 수행하던 이 사건 사옥의 시설관리업무를 외주업체에서 자회사로 이관했다. 2019년 5월23일 피고는 홈페이지에 자회사 채용공고를 하고 시설관리 근로자 등에 대한 정규직 전환 절차를 안내했다. 2019년 5월28일부터 29일께 원고들은 ‘전환채용 지원서’를 제출한 후 자회사 소속 근로자로 근무하게 됐다. 2019년 9월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파견근로를 주장하며 고용의사 표시 및 정규직과의 임금 차액 등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제기했다.

2. 주장

소 제기 당시에는 파견근로 해당성이 관심사였다. 이 사건 사옥에서 시설관리업무 등을 수행했던 원고들이 과연 피고에 파견근로한 것으로 법원에서 인정될 수 있겠는가. 이미 수많은 사업장에서 시설관리업무는 외주업체를 통해서 수행해 오고 있는데, 이러한 시설관리업무에 종사하는 외주업체 소속 근로자를 파견근로자로 인정하는 법원 판결은 드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는 데 집중해서 상담을 하고 관련 증거를 확보하고서 소를 제기했다. 원고들은 외주업체와 자회사 소속 근로자였지만 피고에 파견근로를 했던 파견근로자였다고 주장하고, 파견법에 따라 피고의 근로자로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는 외주업체와 체결한 용역계약을 내세워 외주업체가 원고들의 사용자로서 용역계약상의 업무를 수행했던 것이라며 파견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파견근로에 해당하는지를 주된 쟁점으로 변론이 진행됐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피고는 파견근로에 해당하더라도 원고들이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피고 자회사 소속 근로자로 됐으니 피고의 직접고용의무가 소멸했다고 주장하고 나왔다. 피고가 자회사를 설립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줬으니 피고에게는 원고들을 피고 정규직으로 고용할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피고 주장은,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침에 따라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했으니 피고가 파견법상 직접고용 의무를 이행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원고들이 피고의 방침에 따라 자회사로의 전적에 동의했으니 원고들이 파견법상 직접고용 반대의사 표시를 한 것으로 본다는 것인지 그 주장이 뒤섞여 분명하지 않았다. 파견법은 무허가 파견 등의 경우 사용사업주는 파견근로자를 직접고용해야 하되, 해당 파견근로자가 명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6조의2 1항·2항). 여기서 사용사업주는 파견근로자를 직접고용하도록 규정한 것이라서, 사용사업주의 근로자로 고용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자회사 근로자로 고용해도 된다고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상과 같은 파견법 규정에 의거해서 원고들은 해당 파견근로자의 명시적 반대의사 표시란 사용사업주의 근로자로 고용되는 데 대한 반대의사 표시일 수밖에 없고, 자회사로의 전적 동의 등 의사표시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3. 판단

이 사건 판결은 외주업체 소속 근로자로서 원고들이 피고의 시설관리업무 등을 수행했던 것이 파견근로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자회사로의 전적을 내세워 피고에 고용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에서 재판부는 먼저, 위에서 살펴본 피고의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 추진 경위를 적시하고서 원고들이 “자의로 자회사 전환에 동의하”고서 자회사로 전적해 근무해 온 것이니 “이 사건 변론종결일 당시 피고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서 재판부는,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피고가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이고, 정부 지침에서도 “자회사를 설립해 직접고용하는 방식을 인정하고 있”어 자회사를 “다른 외주사업체들과 동일하게 볼 수 없”다며, 피고는 원고들에 대한 “고용의무를 이행했다”고 판시했다.

4. 평가

무엇보다도 원고들에 대한 피고의 고용의무를 인정하지 아니한 이 사건 판결은 피고와 자회사가 법적으로 별개의 권리의무 주체임에도 마치 하나로 취급해서 판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모회사가 자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하나의 법적 인격체로 취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파견법은 사용사업주에게 파견근로자를 자신의 근로자로 직접고용할 의무를 부과한 것이지, 자회사를 통한 고용도 가능하다고 규정한 것이 결코 아니다. 파견법은 파견근로자가 명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경우에 사용사업주의 직접 고용의무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그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원고들은 자회사로의 전적에 동의했을 뿐, 피고의 직접고용에 반대의사 표시를 한 적이 없다. 당시 원고들이 전환채용 지원서 등으로 자회사 전적에 동의했던 것은, 피고와의 용역계약 체결에 따라 소속 외주업체가 변경될 때에 변경된 외주업체 소속 근로자로 고용이 이전되면서 새로이 근로계약을 체결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기고 했던 것이다. 이전에 외주업체 변경시와 다를 바 없이 자회사로의 전적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자회사는 피고가 용역계약을 통해서 외주업체로 하여금 수행했던 시설관리업무 등을 피고와 계약을 통해서 이관받아서 수행했던 것이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외주업체와 자회사로 변경된 것일 뿐 소속 근로자에 대한 관계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자의로 자회사 전환에 동의하”고서 자회사로 전적해 근무해 온 것이니 “이 사건 변론종결일 당시 피고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고 판시했다. 그런데 위와 같이 100% 지분을 보유했다는 것 말고 외주업체와 법적으로는 다르다고 볼 수 없는 자회사로의 전적에 동의해 근무해 왔다는 것으로 피고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고 보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나아가 여기서 “이 사건 변론종결일 당시 피고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는 판시 부분도 파견법은 파견근로자인 원고들에 대해 피고 근로자로 고용할 의무를 피고에 부과하고 있을 뿐, 피고 근로자로서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적절한 표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또한 이 사건 판결에서는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지침에서도 자회사 설립을 통한 방식도 인정하고 있다며 이를 내세워 피고는 원고들에 대한 “고용의무를 이행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지침에 따랐다고 해서 파견법상 고용의무를 피고가 이행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정부 지침이 법도 아니고, 법을 위반한 정부 지침에 따랐다고 해서 적법한 것이라고 판단될 수 없는 것임에도, 이 사건 판결에서는 엉뚱하게 판단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로 정리해서 말하겠다. 자회사로의 전적동의는 피고에 대한 직접고용 반대의사 표시가 아니고, 정부 지침에 따랐다고 해서 파견법상 고용의무를 위반한 피고 행위가 적법한 것으로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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