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인천항만공사가 자회사 인천항보안공사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임금개편안을 내놓았지만 이를 두고 임금후퇴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1일 <매일노동뉴스>가 공공운수노조 인천항보안공사지부를 통해 입수한 ‘인천항보안공사 임금체계 개편을 통한 분쟁 해결안’에 따르면 공사는 최근 청원경찰, 정규직·무기계약직·계약직 특수경비원 등 네 종류로 나눠져 서로 다른 처우를 받아야 했던 상황을 개선하려 무기계약직·계약직 특수경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동일한 호봉표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렇게 설계된 호봉표는 정규직 특수경비원이 받아온 임금보다 축소된 안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시정이 아닌 하향평준화안이라는 지적이 인다.

“무기계약직, 정규직 전환한다더니
임금은 기존 정규직과 차등”

‘인천항보안공사 임금체계 개편을 통한 분쟁 해결안’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여파로 작성됐다. 당시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감에서 2016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특수경비원이 598명 입사해 509명 퇴사한 인천항보안공사의 노동조건과 노사분규 상황에 대해 모회사인 인천항만공사 책임을 물었다. 이에 인천항만공사는 임금체계 선진화 용역을 진행해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취업규칙 등을 개정해 노동분쟁 근원 해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4월 공사가 내놓은 임금개편안의 핵심은 근로체계 단순화와 임금체계 일원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청원경찰·정규직 특수경비원·무기계약직 특수경비원·계약직 특수경비원 등 네 개 신분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처우를 받아온 것을 청원경찰과 정규직 특수경비원으로 단순화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고용형태나 업무장소에 따라 임금이 크게 차이 났다. 내항에서 일하는 정규직 특수경비원이 중식비 12만원과 연간 기본급의 180%를 명절휴가비로 받았지만 내항 무기계약직 특수경비원은 중식비 12만원, 명절휴가비 110만원을 수령한다. 외항 무기계약직 특수경비원은 명절휴가비가 없다.

인천항만공사가 설계한 임금체계를 구체적으로 살피면 1호봉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설정했다. 매년 조금씩 임금이 오르도록 설계했지만 원래 정규직 특수경비원이 받아온 임금보다 적다. 2018년 기준 정규직 특수경비원은 1호봉 기준 192만9천840원을 받았다. 낮은 임금으로 노사분규의 주요 당사자였던 외항 특수경비원은 퇴사나 이직이 잦은 탓에 138명 중 133명이 1~3호봉을 적용받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 처우개선 효과는 거의 없다.

지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비교 기준이 되는 정규직 특수경비원 임금을 하향해 내항무기직, 외항무기직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소송 이슈를 제거하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배경이다. 특수경비원 임금은 3년째 동결 상태다. 지부는 2019년부터 매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반영해 기본급을 지급하고 중식비(월 12만원)와 명절휴가비(연 110만원)를 추가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인천항보안공사는 최저임금에 중식비 명절휴가비가 산입돼 최저임금 인상률을 적용해 임금을 인상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지부가 주장하는 임금인상안에 따르면 1호봉은 221만5천860원이지만 공사가 설계한 호봉표를 적용하면 1호봉은 최저임금인 182만2천480원 수준이다.

소송 취하 합의서 서명 요구

인천항만공사는 소송과 진정에서 패소할 것을 감안한 대책도 마련했다. 인천항만공사는 ‘분쟁 해결안’에서 “외항무기직 특수경비원은 차별 처우와 관련해 약 9억6천만원의 임금 소송이 진행 중이나 대부분 패소가 예상된다”며 “소송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노조 노조원이 추가 참여할 경우 소송 가액은 2배 이상 증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9년 지부는 2016~2018년 특수경비원들이 받지 못한 시간외근로수당 2억9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인천지법에 소송을, 지난해에는 2018년부터 2020년 9월까지 인천항보안공사가 미지급한 휴일수당 18억원을 달라며 중부지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모두 7건 넘는 소송·진정이 진행 중이다.

인천항만공사는 “전 조합원이 입사일 이후 잔존하는 임금체불을 포기·향후 부제소 특약 합의서에 개별적으로 서명”하도록 하는 안을 고안했다. 현재 진행 중인 7건의 진정·고소·소송건 일괄 취하하는 대가로 합의금 5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인천항보안공사는 인천항만공사가 고민이 녹아든 합의서에 직원 서명을 받고 있다. 합의서에는 “갑(공사)을 상대로 제기한 일체의 신청·진정·고소·소송을 전부 취하하고, 갑에 대해 어떤 처벌도 원치 않는다” “합의서 작성일 현재 잔존하는 체불금품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다” 같은 내용이 담겼다.

외항 운영사의 부담은 크게 줄였다. 노동자 처우개선보다 비용 최소화에 방점이 찍혔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인천항만공사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협약에 근거해 외항운영사가 지급해야 할 액수를 5년으로 환산하면 13억6천만원인데, (외항)운영사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산출한 임금 개편(안)은 5년간 7억8천500만원으로 5억7천500만원을 절약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며 임금개편안을 설명했다. 외항에서 일하는 특수경비원은 138명으로 항만보안공사에 소속돼 일한다. 대주중공업·CJ대한통운·동방·선관 등 항만운영사가 인천항보안공사에 보안업무를 맡기는 위탁계약을 체결한다.

외항 운영사가 부담해야 할 최대 인건비는 인천시 생활임금(월 212만1천350원) 수준으로 맞췄다. 근속기간이 누적돼 8호봉(214만4천340원) 이상 급여를 받는 특수경비원은 내항과 국제여객터미널에 이동배치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외항은 민간부두로 항만운영사들이 관리해 인천항보안공사에 보안업무 위탁을 맡기는 반면, 내항은 인천항만공사가 관리해 인천항보안공사에 직접 업무를 위탁한다.

“능력 없는 자회사에 멈춰선 노사 대화”

차별을 좁히기 위한 노사 대화는 도돌이표다. 지부는 올해 2월까지만 해도 교섭대표노조로 원·하청 업체와 교섭을 했지만 “명절휴가비와 중식비는 기본급에 포함된다”는 입장이 확고해 대화는 멈춰 섰다. 노동자 처우를 개선할 여력 없는 인천항보안공사는 “모회사에서 예산을 주지 않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오정진 지부장은 “장기적으로 볼 때는 당연히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소송·진정의 원인이 된 차별은 인정하지 않고 해결하지 않으면서 100만원 수준으로 합의를 하자고 하고 있다”며 “정규직 특수경비원의 임금을 하향평준화해 소송을 취하시키려는 생각밖에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석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3년째 임금을 사실상 동결하면서 차별을 없애는 방법을 위에 있는 사람(정규직 특수경비원)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새로운 임금체계를 도입해 낮은 기준에 임금을 맞추면서 차별해소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공공기관이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해 자기가 직접고용하지 않고 자회사를 설립한다고 할 때는 그 나름의 합리적 명분이 있어야 한다”며 “서비스 역량 강화 같은 명분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인천항만공사 관계자는 “민간 항만 운영사에서 최저임금만 주겠다는 것을 찾아다니며 설득해 호봉제로 전환하자고 했던 것”이라며 “현재 최저임금만 받는 외항 특수경비원은 (임금개편안을 적용하면) 장기적으로 임금이 인상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인천항보안공사가 임금을 개편했다고 하더라도 외항 운영사에서 위탁비를 늘려줄 수 없다고 하면 의미가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또 “소 취하의 경우 화해 차원에서 제안했던 것”이라며 “(인천항만공사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공공운수노조에서 중재안을 만들어 해결하라고 요구해 중재를 시작한 것으로 권유를 할 뿐이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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