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근 언론사 두세 곳에서 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한 ‘재해조사 의견서’의 문제점을 분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필자는 변호사일 뿐이고 안전 분야 전문가는 아니어서, 비전문가 수준에서 내용을 검토할 수는 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를 분석할 능력은 없다고 일러 두고 자료를 받았다. 그러나 필자의 예상과는 달리, 너무도 명백한 문제점이 보였다.

필자가 지금까지 사건을 하면서 봤던 몇 건의 재해조사 의견서는 다음의 목차로 이뤄져 있었다

1항 개요, 2항 재해자 인적사항, 3항 재해발생 경위, 4항 재해조사 내용, 5항 조사자 의견(원인과 대책), 6항 기타.

그런데 필자가 언론사로부터 받은 문건 대부분(수백 건)은 4항까지만 있고, 가장 중요한 내용인 5항 조사자 의견(원인과 대책)이 빠져 있었는데 이것이 심각한 문제로 보였다.

왜 문제인가. 추락사고를 예로 들면 4항까지는 재해가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기술적으로 설명해 준다. 전체 공정 70% 진행 중에서 어떤 작업을 하다가 바닥이 열려 있는 곳(개구부)에 발을 헛디뎌 10미터 아래로 추락했다는 식의 설명이 4항에 담겨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 있어서 현장 노동자와 노조·유가족이 강조하는 부분이 잘 담기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은 별론으로 한다.

재해조사 ‘의견서’에 5항이 없다는 것은 곧 ‘조사자 의견’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재해조사 의견서를 쓰는 이유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하여금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 규명 또는 산업재해 예방대책 수립을 위해 그 발생 원인을 조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56조1항). 간단히 정리하면, 재해의 원인을 밝히고 예방대책을 세우기 위해서 재해조사 의견서를 쓰는 것이다. 여기서 조사자의 의견이 빠졌다는 것은 곧 법원의 판결문에서 ‘판단’이 빠졌고, 검찰의 공소장에서 검사의 의견이 빠진 것과 같다. 왜 썼는지 목적을 잃어버린 문서인 것이다.

그러나 산업재해를 예방하자는 전문가의 집단인 안전보건공단에서, 의견서의 핵심인 원인과 대책에 관한 의견을 공백으로 두는 것은 스스로 역할을 방기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혹은 재해조사 의견서가 나중에 수사자료로 쓰일 경우 자신의 ‘의견’이 들어가면 재판과정에서 작성자가 연루될 수 있어서 그 의견을 빼 버린 것일 수도 있다.

정리하면 ‘어떻게’ 추락하게 됐는지가 4항의 재해조사 내용 부분이고, ‘왜’, 다시 말해 무엇이 원인이고 대책인지가 5항의 조사자 의견 부분에 정리돼 담겨야 한다.

위의 예시로 돌아가면, 5항의 원인 부분에는 1) 바닥이 열려 있는 곳 근처에 위험 표지가 없었다 2) 안전모 또는 안전대가 지급되지 않았다 3) 평소에 안전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 등이 담겨야 한다. 그리고 대책으로 1) 개구부 위험 표지를 설치할 것 2) 안전모 또는 안전대를 지급할 것(불가능하다면 방호망을 설치할 것) 3) 안전교육을 실질적으로 할 것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문가인 필자로서는, 4항의 조사내용이 상세하고 꼼꼼하게 정리돼 있음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원인과 대책에 관한 5항의 조사자 의견이 없는 재해조사 의견서는 그 자체가 문제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기술적인 부분이 상세하게 기재돼 있어도, 결국에 그것을 통해서 도출되는 원인이 무엇이고 대책이 무엇인지에 관한 결론이 없다면 상당수 재해조사 의견서는 자기완결성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재해조사의 목적이 ‘원인 규명 또는 산업재해 예방대책 수립’에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또한 향후에 재해조사 의견서가 공개될 것임을 고려한다면, 안전전문가가 아닌 유족이나 동료노동자가 이 의견서를 봤을 때 무엇이 원인이고 대책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으려면 조사자 의견은 모든 의견서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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