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주 52시간(연장근로12시간 포함) 상한제를 보완하겠다며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를 확대했다. 정책을 발표한 2019년 12월11일 한국노총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 폐기를 요구했다. <자료사진>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가 다음달부터 5명 이상 사업장에 적용된다. 2018년 3월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사업장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적용하다 3년4개월 만에 전면시행되는 것이다. 장시간 노동을 완화하고 과로사회를 탈출하기 위해 사회적 논의 끝에 나온 결과물이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평가가 벌써부터 나온다. 주 48시간(최대 60시간)을 허용했던 1953년 제정 근로기준법, 주 44시간(최대 64시간)을 허용했던 1989년 개정 근기법, 주 40시간(최대 68시간)을 규정한 2003년 개정 근기법보다 획기적으로 노동시간이 줄었는데 말이다. 무슨 이유일까.

‘업무량 폭증’ 이유로 특별연장근로 사용 폭발적 증가

노동계는 문재인 정부가 시행한 노동시간 관련 정책 중 특별연장근로 인가 확대를 주목한다. 이 제도는 재난·재해와 그에 준하는 사고 수습을 할 때 주당 12시간의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해, 주당 64시간 노동이 가능하게 설계돼 있었다. 1년 동안 최장 90일까지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해 1월31일 △인명보호·안전확보 △돌발상황 수습 △업무량 폭증 △연구개발 등 네 가지 인가요건을 추가했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처할 방안을 달라는 재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제도를 손봤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이뤄지지 않아 한시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기업들이 적극 활용했다. 특히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특별연장근로 인가 기간을 180일까지 허용해 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동부에서 받은 ‘특별연장근로 인가 현황’에 따르면 2019년 인가건수는 908건이다. 사유를 확대한 지난해 4천156건으로 늘었는데 ‘업무량 폭증’ 사유가 1천275건(30.7%)이었다. 노동계는 업무량 폭증은 기업 운영 과정에서 자연스레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인데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면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력충원을 꺼리는 기업을 배려하는 대책으로도 볼 수 있다. 행정조치로 노동시간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시간정책에 대한 정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노동부는 이 제도를 앞으로도 계속 시행한다. 업무량 폭증과 연구개발의 경우는 90일까지 허용하고, 연구개발은 심사를 거쳐 3개월을 초과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기업들은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올해 5월까지 특별연장근로 인가 건수는 2천282건인데 이 중 ‘업무량 폭증’이 1천144건(50.1%)이다. 지난 한 해 전체 업무량 폭증 인가 건수와 비슷한 수준이다. 제도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앞으로 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 52시간제를 지키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기업에 노동부가 특별연장근로 시행을 적극 안내해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부·정치권, 노동자 요구 ‘찔끔찔끔’ 수용

노동시간단축을 사회적 의제로 만든 것은 언제나 노동자였다. 김대중 정부 당시인 1998년 1기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파행으로 끝난 뒤 정부와 노동계는 2기 출범을 성사하기 위해 노정협의를 했다. 당시 정부와 노동계는 2000년부터 주 40시간 노동제 도입 방안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민주노총은 1999년과 2000년 총파업을 하며 정부와 국회를 압박했다. 2000년 총선에서 여야 모두 주 40시간제를 공약했고,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3년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주 40시간제를 명시했다. 그런데 노사가 합의하면 주 12시간까지 연장근무를 할 수 있도록 했고, 정부는 토·일요일은 1주에서 제외해 각각 8시간씩 일할 수 있다는 행정지침으로 1주 68시간 노동제를 고착했다.

주 68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자는 논의는 2008년 경기도 성남 환경미화원들이 “1주에는 토·일요일이 포함된다”며 주말 근무에 대한 가산수당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내면서 다시 촉발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에서 1주 최대 근로시간이 52시간이라는 데 노사가 공감대를 이뤘지만 입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9대 국회에서 유사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됐고, 2016년 20대 국회 개원 직후 당시 김성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주 60시간제 근기법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국회에서 논의가 다시 점화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노동시간단축을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대법원이 2018년 1월 성남 환경미화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하면서 입법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2018년 2월 개정된 근기법은 휴일근로를 포함해 1주 최대 연장근로를 12시간으로 제한하는 장치를 뒀다.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 한도 12시간을 더해 최대 52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도록 했다. 근로시간 제한을 적용받지 않는 특례업종도 26개에서 5개로 축소했다. 그러면서 30명 미만 사업장에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전제로 주당 8시간 한도 내 특별연장근로를 2021년 7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주 60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한다는 얘기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적용시점도 달리했다. 300명 이상 사업장은 2018년 7월부터,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5명 이상 50명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적용한다는 내용을 개정안 부칙에 담았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방안을 2022년 12월까지 마련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우여곡절 끝 법제화한 주 52시간제

국회를 떠난 노동시간단축은,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 확대처럼 정부의 손에서 뒤틀어지기 시작했다. 2018년 11월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에 합의했고, 며칠 뒤 당시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경사노위에서 해당 논의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와 야당의 요구를 받아 든 경사노위는 3개월을 초과해 최대 6개월까지 사용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신설을 이듬해 2월 합의했다.

2019년 12월 정부는 2020년 1월부터 적용하려던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제의 적용을 유예했다. 행정부 권한으로 처벌을 하지 않는 계도기간을 부여하는 방식을 택해 1년간 시행시기를 늦췄다.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 확대도 재계 요구를 정부가 수용하면서 이때 이뤄졌다. 당시 노동부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데 따른 보완조치”라며 한시적으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한번 후퇴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일까. 지난해 말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 논의가 국회에서 이뤄질 때 재계와 야당은 노동시간 문제를 끌어들였다. 6개월 단위 탄력근로제 신설과 연구개발 업무의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3개월로 확대하는 근기법 개정이 같이 이뤄졌다. 선택근로제는 일정 기간 단위로 정해진 총 노동시간 범위에서 하루 노동시간을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제도다. 정산 기간의 평균 연장근로시간이 1주 12시간을 넘지만 않으면 무제한 노동을 할 수 있다. 선택근로제 적용 대상인 ‘신상품·신기술 연구개발’ 업무에 대해 노동부는 “재료, 제품, 생산·제조공정 등의 개발 또는 기술적 개선 등을 말하며, 제조업에서의 실물제품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게임, 금융상품 등 무형의 제품 연구개발 등을 포함”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전기·전자·통신·반도체·자동차 등 대기업이 사용하기 좋다. 경사노위 논의 과정에서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을 정도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제도다. 국회 입법 논의 과정에 삼성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장시간·과로노동 유발 노동정책 잇따라

정부는 노동시간단축이나 과로노동 해소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4월부터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6개월로 확대됐는데도 “특별연장근로는 이미 현장에서 사용하는 제도가 됐기 때문에 과거로 되돌리기 쉽지 않다”는 게 노동부 설명이다.

재계 등은 주 52시간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반발하고 있다. 노동부는 1월 올해 근로감독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52시간제 시행 여부에 대한 근로감독은 300명 이상 사업장을 중심으로 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니 반발은 생뚱맞다. 감독을 대기업 사업장으로 제한하면 노동시간 위반으로 사업주가 처벌받을 가능성이 작아지므로 계도기간을 주는 것과 유사한 효과가 있다.

노동시간 특례업종에 대한 관리·감독도 손을 놓고 있다. 지난해 2월 노동부가 발간한 ‘특례업종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특례업종 사업장에서 노사 서면합의가 없는데도 주 52시간을 넘겨 일하거나 11시간 연속휴식시간 의무를 지키지 않는 사업장이 상당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례업종은 육상운송업(노선여객자동차 제외),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기타 운송 관련 서비스업, 보건업인데 이 중 일부 업종은 최근 장시간 노동·과로사 문제가 심각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권기섭 노동정책실장은 지난 16일 주 52시간제 현장안착 관련 브리핑에서 특례업종 노동시간·휴식시간 실태조사 결과를 묻는 기자 질문에 “특례업종 관련 실태조사는 갖고 있지 않다”며 “하반기 이후에 적정한 시점에 실태조사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노동부는 ‘기업 편의 봐주기’에 힘을 쏟고 있다. 주 52시간제 전면 시행에 따라 노동부는 ‘노동시간단축 현장지원단’을 설치·가동한다. 지원단은 탄력근로제·선택근로제 등을 기업이 적절히 활용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한다. 교대제 개편이나 유연근로제 도입 등 주 52시간제 시대를 헤쳐 나갈 비법을 알려 주겠다는 얘기다.

정경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주 52시간제를 도입했지만 정부는 예외구간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노동시간단축 취지를 훼손했고, 그 과정은 재벌이 요구할 때마다 수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노조를 조직한 현장은 단체협상을 통해 대응할 수 있겠지만 노조가 없는 곳은 사용자 입김 아래 놓인 허울뿐인 근로자대표를 통해 무방비로 노동시간 유연화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계가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일단 유연근로제 도입부터 하고 보자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노동부는 근로감독 대책 등 관련 조치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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