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공장을 돌리려면, 건물을 올리려면, 교통수단을 이용하다 보면 사고는 나고 사람은 죽고 다치기 마련이라고들 했다. 수십 년을 그리 지내다가 세월호 참사를 눈앞에서 지켜본 이후에 우리는 달라졌다. 다치고 죽기 마련이었던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살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죽고 다치게 되는 데는 이유가 다 있었고, 살리지 못한 것은 구조적인 무능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압축적인 산업화와 경제성장 과정에서 잇따르던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재해를 오늘에 와서는 더 이상 수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무책임한 기업의 이윤추구에 따른 산업재해와 사회적 참사로부터 노동자와 시민을 지켜 내지 못한 국가 행정과 사법의 무능에 대해 기존의 법·제도를 넘어서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국민적 정서가 됐다.

다양한 법·이론적 논란에도 사회운동 차원으로 전개된 입법과정을 통해 산재와 시민재해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묻고 실질적인 기업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쟁점이 형성됐다. 그 결과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이다. 혹자들이 영미법이니 대륙법이니 사법적인 관행이니 운운하면서 절대로 도입될 수 없는 법리라고 주장해 왔던 쟁점 중 상당 부분이 법률로서 국회를 통과했다. 중대재해에 대한 경영책임자 의무와 처벌 도입, 사내·외 하청과 특수고용직 재해에 대한 원청 처벌 적용 및 확대, 하한형 형사 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피해자의 권리 보장 및 전문가 심리절차 참여 제도가 중대재해처벌법에 담겼다. 국민동의청원, 산재 피해 유가족의 헌신에 따른 여론 집중 등을 통해서 부족하지만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법이기에 가능했다.

운동으로서의 성과는 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나타났다. 먼저 산업안전보건법 양형의 변화가 있었다. 법안이 통과된 직후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상당히 상향된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의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경총 등에서 발빠르고 노골적인 대응이 나오고 그로 인해 쟁점이 형성되는 것도 역시 운동의 성과다. 광주에서 벌어진 철거 중 건물 붕괴로 인해 무고한 인명이 죽고 다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자마자 중대재해처벌법을 대입해 보게 되는 것도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제정 운동의 성과다.

중대해재처벌법은 여전히 부족하다. 법이 시행됐다 해도 광주의 붕괴 사고는 대상이 되지 않았을 수 있다. 적용대상 및 포괄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비판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포괄성을 중심으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고려하면서 당장은 주어진 조건에서 하위법령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확장성에 주력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과정에서 확인했듯이 향후 법 개정이나 시행령 제정 역시 법리적 완결성 여부보다는 사회적 여론과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을 통해서 그 포괄성 범위가 결정될 것이다. 이후 과제는 중대재해와 관련한 입법뿐 아니라 행정·사법의 전 과정을 면밀하게 살피고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사회적 감시와 이를 위한 역량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은 사회적 운동에 기반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넘어서는 과제와 목표가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은 상당한 부분에서 법리적 장벽을 부수고 진전했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이 ‘개념과 가치’가 아닌 ‘사건과 사례’에서 발휘하게 될 효과는 당장에 법을 적용해서 악질 사장들을 손쉽게 엄벌에 처하는 것으로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다양한 혼선과 혼란을 통해 노동자들의 목숨을 다뤄 오던 기존의 행정·사법 행태를 여실히 폭로하는 것에서 출발하게 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독자적 완결성을 갖춰서 얻는 효과라기보다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및 관련 법제의 문제를 포함해 규제 당국·특별사법경찰을 포함한 경찰의 조사·기소, 판결과 양형의 문제를 낱낱이 드러내고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얻는 효과가 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만큼이나 집중해야 할 사안은 중대재해처벌법 4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영책임자의 의무와 관련한 형법적 판단 기준이 될 산업안전보건법을 포함한 관련 법제 개정과 정상화라고 할 것이다. 영국의 산업안전보건법 1조1항에서 밝히는 법 제정 목적은 첫째가 ‘노무 중인 사람들의 건강·안전·복지를 보장’하는 것이고, 둘째는 ‘노무 중인 사람들의 활동 중 (혹은 그 활동과 관련해) 발생하는 건강 혹은 안전에 대한 위험에서 노무 중인 사람들 이외의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다. 국회 통과 과정에서 변형되기 전 애초에 산해와 시민재해를 구분하지 않고 포괄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운동본부 국민동의청원 법안이 담고 있었던 정신이다.

광주 철거현장 붕괴 사고에 대한 조사가 더 진행돼야 확인되겠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적용할 수 없을지라도 현재 드러난 사실 만으로도 현행 산업안전보건상 적용대상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업주의 안전조치 위반 조항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기업과 법인, 원청 사업주에게 내리는 처벌이 미약하기만 하다는 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해서 기업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라도 그 준거로 삼을 수밖에 없는 산업안전보건법을 포함한 관계 법령을 실질적 차원에서 정비하고 보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특수고용직 고용사업장 등 각각의 수준에서 책임지고 수행해야 할 안전·보건상 조치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과 하위법령에서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기업이 책임을 미루고 규제와 처벌을 우회하는 편법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시켜 줘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을 견인차로 산업안전보건법과 하위법령이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고, 나아가서는 시민을 지키는 근간이 되는 법으로 제대로 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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