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두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창원지방법원 2021. 5. 20. 선고 2019가합53986 판결

1. 사건의 배경

현대엔지니어링(피고)은 주로 전국 각지의 현장에서 이뤄지는 토목·건설공사를 도급받아 수행하는 회사다. 공사현장에는 관리공무·공사·품질·안전 등의 각 업무 담당자들이 현장마다 약 10여명(큰 공사현장은 2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토목·건설공사는 각 공사마다 사업 기간이 정해져 있고 공사현장도 사업에 따라 매번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사업구조는 공사의 수주량이나 기간에 따라 필요인력이 상시로 변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 때문에 피고는 인력운용의 편의를 위해 관행적으로 정규직 외에 기간제 근로자를 다수 채용해 사용해 왔다. 이들을 PJT(프로젝트 계약직)근로자라 부른다. PJT근로자는 계약기간이 있을 뿐 현장에서 다른 정규직과 혼재해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다.

피고는 PJT근로자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더라도 해당 공사현장의 공사가 종료될 때까지 계속 사용했고, 공사가 종료되더라도 다른 공사현장에 다시 이들을 투입해 왔다. 이 경우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라 2년 초과 근무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된다. 하지만 피고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존 기간제 때의 차별적 임금 수준을 유지했다.

한편 피고는 2014년경 승진과 보상·임금 등 인사제도를 전면적으로 개정했는데, 이때 근로기준법상 법정수당을 제외한 나머지 수당들을 모두 ‘임의수당’으로 정한 뒤 “지급일 현재 재직자 중인 자로 출근일수가 소정근로일수의 70% 이상인 자에 한해 지급한다”는 소위 재직자 요건 및 근무일수 요건을 삽입해 판례상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도록 했다.

2. 당사자의 주장

PJT근로자인 원고들은 기간제법 취지에 따라 동일·유사 업무를 하는 정규직 근로자의 취업규칙을 적용받아야 함을 주장하며 이에 따른 호봉 승급 및 승진, 임금 차액을 청구했다(제1쟁점). 이에 피고는 이미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됐으므로 기간제법이 적용될 여지가 없고, 차별의 합리적 이유가 있으므로 청구는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원고들은 임의수당에 부가된 재직자 요건 등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 위반으로 무효이고, 근로기준법상 임금 보호 및 강제근로 금지 조항 위배로도 무효라고 주장하며, 각 수당들을 통상임금에 산입해 재산정한 법정수당 차액을 청구했다(제2쟁점). 이에 피고는 취업규칙 변경 절차가 적법하고 이 사건 재직자요건 등은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3. 대상판결의 요지

가. 제1쟁점 :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에게 적용될 근로조건

대상 판결은 다음의 이유로 원고들이 구하는 바와 같이 PJT근로자에게 정규직 취업규칙이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① 기간제법 4조2항은 사용자가 기간제 근로자를 2년을 초과해 사용한 경우의 효과에 관해 그 근로계약 기간을 정한 것만이 무효로 된다거나, 또는 근로계약 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기존 근로조건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식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② 기간제법 8조1항은 문언상으로는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만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규정 취지와 공평의 관념 등을 함께 고려하면, 기간제법 4조2항에 따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되는 근로자의 근로조건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동종 또는 유사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보다 불리해서는 아니된다고 해석된다.

③ 기간제법의 목적, 관련 규정 체계와 취지, 제정 경위 등을 종합하면 사용자의 사업 또는 사업장 내에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가 있다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이 기간제법 4조2항에 따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되는 근로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대법원 2019. 12. 24. 선고 2015다254873 판결).

④ 피고의 취업규칙에 의하면 피고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인 일반직·운영직 근로자와, ‘기간제 근로자’인 계약직 근로자로 구분해 위 취업규칙을 적용하고 있는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의제되는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은 별도로 마련하고 있지 않다.

⑤ 피고의 같은 현장에서 일반직과 PJT직원이 각 수행하는 업무가 서로 완전히 일치하지 않고 업무의 범위 또는 책임과 권한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주된 업무의 내용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나. 제2쟁점 : 각 수당의 통상임금 해당 여부

대상 판결은 각 수당 중 기술자격수당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만, 나머지 현장교통비·식대수당·통신보조금 등은 적법한 취업규칙 변경 절차에 따라 삽입된 재직자 요건 등이 유효하므로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대상 판결이 재직자 요건 등이 유효하다고 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피고는 2014년 7월께 본사·서울사무소에서 14회에 걸쳐 인사제도 설명회를 개최했고, 국내 35개 공사현장을 순회하며 인사제도 설명회를 개최했다.

② 피고가 위 각 인사제도 설명회에서 근로자들에게 제시한 자료들에 임의수당의 지급조건과 관련한 취업규칙 변경사항들에 관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③ 입·퇴사가 빈번한 계약직 근로자들이 성과급과 관련한 재직자 요건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④ 취업규칙의 변경에 동의하는 근로자들이 동의서 양식에 자신의 소속과 사번·성명을 직접 기재하고 서명하는 방식으로 동의의 의사를 표시했다.

⑤ 피고의 전체 근로자 중 과반수인 약 61.9%가 취업규칙의 변경에 동의했다.

⑥ 피고는 변경된 2014년 8월1일자 취업규칙에 관해 2014년 8월8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신고했다.

4. 평가

가. 제1쟁점

기간제법은 기간제 근로자를 동종·유사업무 수행 근로자와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사용자들은 근속 2년을 초과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가 되면 더 이상 기간제법 적용대상이 아니라며 기존의 근로조건 차별을 계속 유지했다. 소위 무기계약직·중규직의 탄생 배경이다. 사실 기간제일 땐 차별이 금지되다가 2년을 초과하면 차별이 정당화된다는 논리는 선뜻 이해하기도 어려운 궤변에 가깝다. 그러다 대전MBC 판결(대법원 2019. 12. 24. 선고 2015다254873 판결)에서 대법원은 2년을 초과한 기간제 근로자에게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동종·유사업무를 하는 정규직의 근로조건(취업규칙)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판결해 논란을 종결시킨 바 있다.

대상판결은 위 대법원 판결 이후 최초로 하급심에서 구체적으로 정규직의 취업규칙에 따른 임금액을 인정한 사례로 보인다(대전MBC 사건은 파기환송심에서 소취하로 종결). 그런데 비정규직 사건에서 정규직 취업규칙을 적용하는 경우 각종 정액수당들의 적용은 특별히 쟁점이 되지 않으나, 평가에 따라 그 여부가 불확정적인 승진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가 주로 문제된다. 이 사건에서 원고들은 취업규칙에 따라 일정한 직급으로의 승진도 형평의 원칙상 당연히 추단돼야 하고, 이때 기준은 ‘표준승진연한’에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피고도 원고들을 ‘과장’이라고 불렀던 점 등을 고려해 과장까지의 승진은 인정하면서도, ‘차장’으로의 승진은 정규직들도 쉽지 않다면서 불인정했다.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려 한 결론으로 보이나 대상판결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형평성만을 따지고 정작 비정규직과 사용자 간, 즉 이 사건 원고와 피고 당사자 간의 법익균형은 간과했다.

원고들이 승진을 하지 못한 것은 피고의 부당한 차별로 인사평가 등 승진대상 자체에서 배제돼 있었기 때문이고, 또 표준승진연한조차 인정하지 않게 되면 수십년간 위법하게 비정규직을 차별해 온 사용자에게 아무런 손해가 없게 된다. 즉, 대상판결의 결론대로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것이 동등하게 대우하는 경우보다 언제나 이익이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측면에서 대상판결은 부당하다고 생각된다.

나. 제2쟁점

대상판결은 어쨌든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인사제도 변경과 관련된 설명회를 진행했고, 근로자 과반에게 변경 동의를 받았다며 이 사건 재직자 요건을 삽입한 것도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사건 재직자 요건 등의 삽입은 2013년 12월께 나온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각 수당들을 통상임금에서 배제시키기 위한 부당한 의도임이 명백하고 △인사제도 설명회 때 재직자 요건 등이 통상임금을 축소하는 의미라는 설명은 없었고 당연히 누구도 그 법률적 의미를 알 수는 없었던 점 △판례상 근로자들간 상호 회의방식을 통한 집단적 동의 절차를 거치지도 않았던 점 등의 사정을 고려하면 이 사건 재직자 요건 등은 무효로 봄이 타당함에도 대상판결은 이런 점에 관해 아무런 설명이 없는 점은 아쉽다. 나아가 근래 서울고등법원 2018. 12. 18. 선고 2017나2025282 판결 등 하급심에서는 재직자 요건 등이 근로와 무관한 사정으로 소정근로의 대가인 임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조건이어서 무효라는 판단이 나오고 있는데, 이 부분 주장에 대해서도 대상판결은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은 점에서도 부당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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