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민주노총 서울본부 등 노동·사회단체 6곳은 “방송사들은 드라마 제작현장의 불법적인 계약을 철회하고 근로계약서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정소희 기자>

KBS·CJ ENM(tvN)·JTBC의 8개 드라마 현장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의 계약서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드라마 제작현장의 과로 노동과 불법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근로계약을 맺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계약기간도 없고, 사용자 마음대로 계약해지 가능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민주노총 서울본부 등 6개 노동·사회단체는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CJ ENM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CJ ENM·JTBC 3개 방송사는 드라마 제작현장에 근로계약서를 전면도입하라”고 촉구했다.

서광순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은 “사람들은 드라마를 통해 희노애락을 느끼지만 드라마 제작현장 노동자들은 불법 관행 속에 장시간 노동으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한다”며 “표준근로계약서를 도입하고 법을 이행해야 장시간 노동이 근절된다”고 강조했다.

지부는 이날 3개 방송사에서 방영했거나 방영할 드라마 8개 제작현장의 스태프 계약서에 대한 법률 검토 결과를 공개했다. 계약서는 모두 근로계약서가 아닌 업무위탁계약서·하도급계약서·용역계약서라는 이름이 붙었다. 2019년 고용노동부가 스태프의 근로자성을 인정했지만 현장은 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들은 드라마 전문 제작사들이 제작한 것으로 이 중에는 CJ ENM 자회사나 JTBC 사업부 혹은 KBS·자회사 공동출자사와 계약한 제작사들이 포함돼 있다.

계약서에는 노동관계법을 어긴 항목이 다수 포함됐다. 모든 계약서에는 근로계약 기간이 명시돼 있지 않았다. ‘프로그램 촬영 종료일’ ‘당사자 의무가 모두 이행된 때’ 같은 모호한 표현이 쓰였다. 이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17조에 따라 근로조건을 서면으로 명시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일한 시간을 충분히 계산할 수 있는데도 수당을 포함해 포괄임금 형식의 일당을 지급했다. 임금 지급 시기도 특정하지 않았다. 모든 계약서에는 업무 시작·종료 시간도 없는 데다 촬영 전후의 준비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하지 않았다. 유급휴일이나 연차유급휴가에 관한 내용도 없다. 해고예고(계약해지) 기간도 법이 정하는 30일에 못 미쳤다.

계약서를 검토한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드라마 제작사들은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스태프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며 “7월부터는 모든 5명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가 적용됨에 따라 제작사들도 더 이상 핑계를 대기 어려운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드라마 제작현장 근로계약 전면 도입해야”

노동부는 2019년 7월 드라마 현장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며 “현장 스태프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확인했다. 다만 분야(조명·촬영·연출 등)별 팀장급 스태프에 대해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본인 책임 아래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방송사-외주제작사-분야별 계약’으로 이뤄지는 드라마 제작현장 계약구조를 고려할 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박이 제기된다. 윤지영 변호사는 “감독·팀장급 스태프는 팀 내에서는 일부 재량권을 가지더라도 전체 제작현장에서는 독립적으로 일할 수 없다”며 “과장이 업무를 지시한다고 해서 사용자가 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드라마 현장 근로계약 도입에 관해 2019년부터 논의를 이어 오던 4자 협의체(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지상파 3사·언론노조·방송스태프지부)는 파행된 상태다. 드라마제작사협회가 팀장급 스태프에 대한 근로계약 도입을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부는 올해 7월부터 주 52시간 상한제가 5명 이상 사업장에서도 전면시행되는 만큼 드라마 현장 노동환경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겠다는 입장이다.

김기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은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는 그간 불법적으로 스태프를 고용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노동부도 이를 방관하지 말고 전면적인 근로감독을 통해 불법 실태를 바로잡아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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