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30년을 맞벌이했는데도 40대 중반까지 집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이 들고 아이는 커 가는데 2년마다 이사 다니는 게 고역이었다. 10년 전 빚을 내 집을 샀다. 그나마 서울이 아닌 부산이라 가능했다. 그 집은 10년 동안 딱 10% 올랐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내린 셈이다. 이게 정상이다. 어떤 상품이든 일단 사면 감가상각되는데 집만 유독 별나다. 대한민국 제2 도시라는 부산이 이런데, 언론은 집값 오른다고 난리다. 집값 걱정은 사실 수도권만의 고민이다. 부산이나 광주 같은 광역시도 일부 투기 바람이 불지만 극히 일부다.

20년 전 주말부부로 혼자 서울살이를 시작할 땐 부산 집 팔면 서울 강북에 평수를 약간 줄인 집을 살 수 있었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부산 집 2채를 팔아도 서울은 고사하고 서울 외곽 집도 못 산다. 한국일보 창간 67년 기획 ‘21세기 난쏘공’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6월9~12일까지 4편에 나눠 실린 기사는 79세 세입자 할머니 사연으로 시작한다. 50년 넘게 경기도 광명에서 산 할머니는 전세살이 두 번을 재개발 철거로 뺏겼고, 지금 사는 세 번째 전셋집마저 재개발로 뺏길 판이다.

한국일보는 집이 일확천금의 수단이 된 수도권에서 세입자·농민·상인에게 ‘재개발’ ‘뉴타운’ ‘신도시’라는 단어는 ‘재난’이라고 진단했다. 유주택자의 재산세 인하에는 정치권과 정부 모두가 죽자고 매달리면서 개발로 갈 곳을 잃은 이들은 왜 정책 대상조차 되지 못할까. ‘21세기 난쏘공’에는 한국 사회를 집어삼킨 ‘집’ 욕망 저편에 내팽개쳐진 삶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경기도 최대 뉴타운이 들어설 ‘광명’은 지금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이다. 철산역 주변 35만평을 밀고 고층 브랜드아파트를 짓는 ‘광명 뉴타운’ 공사가 한창이다. 노동자 시인 김용만이 80년대 말 <철산리·7>에서 노동의 새벽을 노래했던 바로 그곳이다. 시인은 구로공단 폐수를 뒤집어쓴 채 흐르는 안양천 뚝방 위에 지어진 쪽방촌에서 희망을 노래했지만, 그곳에도 어김없이 사람을 몰아내는 재개발이 한창이다.

한국일보 기획기사는 “집과 땅을 가진 자가 이익을 독식하는 40년 곪은 민간 주도 재개발을 바꿔야 한다”며 “폭력적 대규모 신도시 개발은 그만하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종부세 타령만 하고 자빠졌다.

통계청은 우리 인구가 2029년부터 감소하고, 40년 뒤엔 인구가 4천만명 아래로 떨어질 거라 했다. 그러나 벌써 2년째 인구가 줄었다. 닮은꼴 두 정당이 독식하는 정치지형에선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어렵다. 결국 인구 정점은 예상보다 빨리 올 것이다. 어쩌면 벌써 왔는지도 모른다. 불과 한 세대 뒤엔 남아도는 수도권 콘크리트 아파트는 애물단지가 되고, 서울은 SF 영화에 나오는 거대한 디스토피아가 된다.

나는 욕망을 내려놓는 편을 택했다. 60살이 되면 서울살이 대신 통영으로 내려갈 참이다. 내 고향 통영엔 지금도 매매가가 3천만원 이하 아파트가 즐비하다. 그날이 멀지 않았다.

통영만 그런 게 아니다. 수도권만 벗어나면 모든 게 해결된다. 문제는 수도권이 점차 확대되는 거다. 춘천까지 출퇴근이 가능해졌고, 조만간 원주까지 그렇게 된다. 경기 남부로는 이미 천안까지 일일생활권이 됐고, 이젠 충남과 세종으로 마구 확장한다.

‘LH 투기’로 폭발한 민심에도 정치권은 되레 종부세 인하와 대규모 아파트 공급으로 투기를 더 부채질하는 쪽으로 역주행한다. 정치인들 말대로 보유세 낮추고, 양도세 낮추고, 아파트 공급 늘리면 한국일보에 나온 할머니 같은 세입자가 살 만한 세상이 올까. 천만의 말씀이다. ‘영끌’해서 집 사겠다는 2030보다 자금이 풍부한 5060 정치인과 관료 등 86세대가 새로 공급될 아파트 대부분을 차지해 불평등만 더 키울 게 뻔하다. 주택보급률이 100% 넘는 나라에서 공급 확대가 웬 말이냐. 새 아파트를 차지할 2030이 얼마나 된다고.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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