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헌법에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규정한 조항이 있다. 바로 헌법 32조와 33조다.

노동법을 좀 안다는 사람들에게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기본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노동 3권을 이야기한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다. 그래서 헌법 33조가 대표적인 노동기본권 조항으로 인식됐다.

그런데 노동기본권이란 무엇일까? 노동자의 기본적 그리고 헌법적 권리는 노동 3권에 다 담겨 있는가? 그렇지 않다. 더 근본적인 권리는 헌법 33조 바로 앞에 있는 헌법 32조에 있다. 33조가 노동자의 시민적 권리, 정치적 권리, 또는 노동 민주주의를 담은 내용이라면 32조는 노동자의 생활권적 기본권, 사회적 권리에 관한 내용이다. 다만 그 조항에 노동의 의무도 담겨 있어 노동자의 사회적 권리 의미가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헌법 33조가 노동기본권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관한 조항이라면, 32조는 바로 그 목적을 나타내는 조항이다. 노동기본권은 이 두 가지가 갖춰져야 가능하다. 그간 노동계의 관심은 주로 33조에 맞춰져 있었다. 이는 당연하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을 통한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 실현이 노동운동의 핵심전략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 3권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는 현실 때문에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33조만으로 노동자의 기본권을 해결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그 권리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훌륭하지만, 그 권리를 활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큰 소외를 낳게 된다. 이 권리에서 배제된 노동자들, 즉 노동자로서의 시민적 권리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위한 장치가 없으면 노동 3권은 반쪽 민주주의에 그치고 만다.

따라서 헌법 32조가 가진 의미를 뚜렷이 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그 의미가 불명료하다면 명료하게 하기 위한 작업을 해야 한다. 현재의 32조는 노동자의 사회적 권리를 전면적으로 담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만약 헌법 개정 논의가 이뤄진다면 노동자의 사회적 권리가 중심적 내용을 이룰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아니 노동자의 사회적 권리를 담을 수 있는 내용으로 헌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이 주장은 추상적인 개념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아주 구체적이다. 근로복지기본법을 예로 들어보자. 먼저 근로복지가 아니라 노동복지기본법으로 이름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름을 차치하더라도 그 내용을 살펴보면 노동복지가 기업복지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은 배제되고 있다. 중소영세 사업장의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그리고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에게는 그 법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존재조차 알 수 없는 거리가 아주 먼 법이다. 그런데 여기에 ‘기본법’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다. 기본법이라고 하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 일부 대기업 노동자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조항으로 구성해 놓고 기본법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대부분의 노동자에게 우리사주조합이나 사내복지기금은 그림의 떡조차도 되지 못하고 아예 그림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2016년 법이 개정돼 공동근로복지기금제도가 만들어졌다. 이 제도로 원청대기업과 원청대기업 사내근로복지기금이 공동근로복지기금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원·하청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물론 그것만이라도 얼마나 큰 진전이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진전이 노동자의 요구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의 공동근로복지기금은 사업주의 입장에서 필요한 제도다.

근로복지기본법은 원하청이라는 프레임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기본복지로 프레임이 바뀌어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노동자의 주체적 참여가 필요하다. 노동자의 사회권·생활권 요구가 노동자의 자주성을 상실하고 혜택이라는 관점에서만 추진된다면 삶의 예속성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예속적 삶의 권리를 기본권이라고 할 수 없으니 그 운영에 동등한 권리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몇 년 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제안해 국회연구단체 헌법33조위원회가 구성된 바 있다. 헌법33조위원회도 헌법 32조와 33조의 내용을 다 다루는 것으로 돼 있지만, 나는 헌법 32조를 더 부각시키는 이름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헌법32조포럼과 같은 이름으로 연구와 활동이 필요하다. 32조포럼은 노동기본권을 근본적으로 재탐구하고 노동자의 생활상 권리·사회적 권리를 포함한 기본적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찾고, 이를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로 실현하기 위한 작업을 한다. 헌법33조위원회가 국회 차원의 포럼이라면, 이와 달리 32조 포럼은 국회 바깥에서 사회의 진보적 역량을 모아 내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

노동자의 기본권은 헌법적 권리다. 이른바 노동헌법, 즉 노동기본법을 만드는 작업을 하자. 노동문제를 고민하는 활동가·학자·국회의원·공인노무사·변호사라면 한번 의지를 내어 볼 만한 일이 아닌가. 아직 개인적 제안이지만 머지않아 이 흐름이 형성될 것으로 믿는다.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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