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오랜만에 세차했고,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흙먼지 잔뜩 머금은 빗방울 자국이 온 데 선명했다. 익숙한 일이었다. 하루걸러 먹구름이 짙었고, 장마철인 듯 비가 잦았다. 기온은 큰 폭으로 널뛰었다. 이게 다 기후위기 때문이냐고, 날씨가 대체 왜 이러냐고 투덜대던 사람들이 틈틈이 마스크를 고쳐 썼다. 김 서린 안경을 티셔츠 아랫단으로 쓱쓱 닦아 다시 썼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이 맑았다. 꽤 반가운 일이었다. 햇볕 따라 불쑥 찾아든 한여름 더위는 반갑지 않았다. 꼭꼭 챙겨 쓴 마스크는 바이러스와 미세먼지를 막았지만 흐르는 땀과 열기엔 속수무책이었다. 집에 들어가 에어컨을 켜고 그 앞에 서면 세상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지구를 보호해야 한다며 에어컨을 끄자던 아이와 리모컨을 두고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인버터라던가 하는 최신의 모터 기술과, 전기 사용량과 그 옛날 냉매로 쓰인 프레온가스 따위 얘기를 나누는 동안 다행히 땀은 식었다. 쓰지 않는 전원 콘센트 정도를 꺼 두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보냉재를 모으고 플라스틱 병뚜껑과 우유 팩 따위를 따로 정리하는 데에 관심 많은 아이가 또 무슨 잔소리를 할까 싶어 자꾸만 눈치 보게 된다. 그래, 지구를 지켜야지, 먼일 같았고, 남 일만 같았는데,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다. 날이 개니 그동안 오랜 비에 미뤄진 공사와 작업을 하느라 곳곳이 분주하다. 저기 도심 대형 광고판에도 보수 작업이 한창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은 대기업의 스마트폰 광고였다. 충전기를 기본 구성품에서 뺀 걸 두고 지구환경 보호를 위한 결정으로 포장해 뒷말이 많았던 회사의 제품이다. 시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기업의 광고에 다 나오는 걸 보니, 개인정보 보호도, 지구환경 보호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 된 것 같다. 한편 저기 매달려 일하는 노동자 목숨을,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미룰 수 없는 최우선의 일일 텐데. 영 이쪽으로는 대응이 미지근해 오늘 또 사람이 일하다가 죽고 다친다. 돈이 되는 일과 돈이 드는 일 차이 때문이라니, 한여름 더위 속 마스크처럼 숨이 턱 막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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