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택배종사자 과로사대책 사회적 합의기구가 분류작업 인력투입 시기를 포함한 2차 합의문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전날부터 분류작업을 거부했던 전국택배노조는 9일 파업을 시작했다. 15일 예정된 사회적 합의기구 회의에서도 의견접근이 안 되면 파업과 갈등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2차 택배 사회적 합의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할까.


약속은 안 지키고 이익만 챙기는 택배사들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
▲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

“오늘은 택배노동자들이 분류작업으로부터 해방된 감격적인 날입니다.”

올해 1월28일 1차 사회적 합의안이 발표되는 자리에서 한 발언이다. 그 후 5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현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택배노동자의 85%가 여전히 분류작업을 하고 있고, 장시간 노동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올해만 다섯 분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두 분의 택배노동자는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차 사회적 합의기구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2차 사회적 합의기구는 1차 사회적 합의안의 구체적 이행계획을 논의하는 자리다.

두 가지 핵심 의제에서 이견이 크다. 택배사는 분류인력 투입시기를 내년 7월까지 1년 이상 유예해 달라고 주장한다. 그간 택배사는 ‘분류작업은 택배사의 책임이고 택배사는 개인별 분류된 택배를 인계해야 한다’는 1차 합의문을 이행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택배기사 처우개선’에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택배요금을 일제히 인상하는 꼼수를 동원했다. 모 택배사의 경우 택배요금이 150원 인상됐지만, 택배기사들의 배송수수료는 평균 8원 인상되는 데 그쳤다. 이로써 택배사는 올해 1천억원 이상의 초과 영업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증권사들은 일제히 주식매수를 추천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택배노동자들이 죽든 말든 분류인력 투입 시기를 1년 유예해 배만 불리겠다는 심보’다.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논의도 택배노동자의 물량을 줄여야 한다는 의무만 남고 수입보전 논의는 사라졌다. 내 몸이 힘들어도 가족 생계를 위해 더 많은 물량을 배송할 수밖에 없는 택배노동자에게 ‘노동시간을 줄여야 하니 물량을 줄이라’고 할 것인가.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사기에 불과하다.

택배노동자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기구가 출범했다. 택배노동자들은 사회적 합의기구가 택배사 이윤 창출의 놀이터로 전락하는 현실을 묵과할 수 없다.


분류인력 투입·택배비 인상 미룰 수 없어
김종철 협동조합 CJ대한통운택배대리점연합회장

김종철 협동조합 CJ대한통운택배대리점연합회장
▲ 김종철 협동조합 CJ대한통운택배대리점연합회장

일부 택배사는 회사마다 여건이 달라 분류인력 투입을 미루자고 주장한다. 노조는 고용노동부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업무시간이 줄면 물량이 감소해 수입을 보전하는 방안을 찾자고 한다.

대리점연합회는 분류인력 투입을 미루자는 택배사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지난 1월 체결한 1차 사회적 합의에서 분류작업의 책임은 사업자가 지기로 했다. 대리점연합회도 택배 과로사를 막기 위해 2차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시행시기 논의를 완료할 때까지 분류인력 투입에 일부 책임을 지겠다고 동의했다. 그런데 최근 택배사나 국토교통부는 8월 말까지 지난해 약속한 인력의 절반을 투입하자고 제안했다. 이들 주장대로라면 약속한 대로 4천여명을 투입한 CJ대한통운은 절반의 인원을 빼라는 말인가. 분류인력 고용책임을 대리점주에게 전부 떠넘겨서도 안 된다.

택배비 인상 역시 서둘러야 한다. 분류인력 투입을 미루겠다는 것은 택배비 인상 시기를 늦추자는 의미다. 이 같은 택배사의 주장은 택배 현장의 혼란만 가중할 가능성이 높다. CJ대한통운은 이미 지난 4월 택배단가 인상을 완료했다. 가격에 따라 물량 경쟁이 심한 택배시장에서 택배비 인상을 일부 회사만 할 순 없다. 또한 고용보험 적용과 분류작업 투입에 따라 결정되는 택배비 인상분은 부담 주체에게 비용이 고스란히 전해져야 할 것이다.

분류인력 투입과 택배비 인상을 늦추자는 것은 1차 사회적 합의 논의로 돌아가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1년간 택배기사가 분류인력 부담을 다시 져서는 안 된다. “화주들과의 계약기간 때문에 단가 인상이 어렵다”는 택배사 주장은 택배사업자 간 이윤·물량 경쟁의 불리함을 주장하는 것일 뿐 과로사 방지를 위한 합의기구 목적과도 맞지 않다.

다만 노조가 지난 8일 사회적 합의기구 논의가 완료되기 하루 전인 7일부터 분류작업 거부를 선언한 것은 아쉽다. 택배사업자도 과로사 방지를 위해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행정부와 국회도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야 한다.


처음 설정한 방향을 기억하라
조강현 전국연대노조 택배산업본부 조직국장

조강현 전국연대노조 택배산업본부 조직국장
▲ 조강현 전국연대노조 택배산업본부 조직국장

지금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분류인력 투입 시점임은 분명하다. 다만 모든 이슈가 여기로만 빨려 들어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필요하지만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지점들을 놓칠 위험이 있어서다.

택배노동자의 일은 집화와 배송이다. 집화란 화주들로부터 물건을 받고 터미널까지 운반하는 일이다. 택배노동자들은 가죽지갑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자영업·소기업 등에 영업을 하고, 그들의 택배를 전담해 건당 수수료를 받기도 한다. 대기업 집화를 담당하는 CJ대한통운을 제외한 한진·롯데·로젠택배 대리점에서 일하는 택배노동자들은 수수료의 절반 정도를 집화를 통해 번다. 현재 대화기구에서 주 5일제 적용이 이야기되는데, 주 5일제가 되면 작업시간은 줄어들지만 화주들이 거래를 끊을 수 있다. 화주들은 주말에도 관계없이 받은 주문을 처리해 줄 곳을 찾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택배 배송물량이 줄어들어 건당 수수료 감소가 예상되는데, 이 역시 논의에서 제외됐다. 건당 수수료 감소로 택배노동자의 임금이 적어지면 노동시간을 줄이는 의미가 없다. 줄어든 수입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일을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택배노동자의 수수료는 지난 30년간 계속 떨어졌다. 건당 수수료 인상이 논의에 포함돼야 한다.

길을 잃으면 처음 가려 했던 방향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합의가 방향을 잃을 것 같으면 어떤 방향으로 합의를 이루려 했는지를 떠올려야 한다. ‘모든 택배노동자’의 임금 저하 없는 노동조건 개선을 마음에 새기며 모든 택배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 나가자.


정당한 택배파업, 집배노동자 대체투입 중단해야
최승묵 공공운수노조 민주우체국본부 공동위원장

▲ 최승묵 공공운수노조 민주우체국본부 공동위원장
▲ 최승묵 공공운수노조 민주우체국본부 공동위원장

코로나19로 인해 택배물동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 때문에 택배노동자는 1년 넘게 목숨을 건 노동을 해오고 있다. 노동자는 정부·택배사와 함께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어 인력충원 등 대책을 요구했지만 또다시 묵살됐다.

우정사업본부와 택배사가 한데 모여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정사업본부는 정부를 대표하고 국가 행정기관·공공기관임에도 계속해서 질 나쁜 일자리, 특수고용 노동자를 만들고 있다.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집배노동자는 일반통상 우편물·등기 우편물을 매일 같이 배송하는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택배까지 얹어 배달을 하라고 한다. 현장은 아수라장이다. 집배노동자는 대형 고부피 고중량 택배를 이륜차로 나르고 있다. 과로사와 안전사고에 노출돼 매년 20명 이상 목숨을 앗아갔던 과거 행태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무료노동과 과로사에 내몰린 택배노동자가 노동권을 행사하는 것을 또 다른 노동자가 대신해 막아서는 것은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미봉책에 불과한 대책을 내놓는 우정사업본부를 규탄한다.

집배노동자는 택배노동자를 포함해 물류노동자의 완전한 배달권과 생존권을 확보하는 그날까지 투쟁할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1만6천명의 집배노동자를 파업 대체인력으로 투입하는 것을 당장 중단하라.


택배요금 인상분, 과로사 방지 대책에만 사용해야
이조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선임간사

▲ 이조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선임간사
▲ 이조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선임간사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21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했다. 파악하지 못한 과로사는 더 많을 것이다. 우리의 택배 물건이 누군가를 착취하고, 누군가의 생명과 건강을 갉아먹으며 배송되길 원하는 시민은 없다. 많은 시민이 과로사가 멈춰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지난해 말 출범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사회적 합의기구’에 큰 기대를 가졌다.

그런데 택배사들은 과로사 문제를 외면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윤 추구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올 초에는 1차 합의문에서 약속했던 분류작업 인력투입분을 택배노동자에게 떠넘기려고 해 지탄받더니, 최근에는 택배노동자 처우 개선과 상관없이 택배비를 인상했다. 그래 놓고 올린 요금을 과로사 방지에 어떻게 사용할지 아무런 계획도 내놓고 있지 않다. 과로사 방지와 상관없는 택배비 인상은 택배사의 추가 이윤만 늘리고 소비자의 부담을 가중할 뿐이다. 심지어 택배사는 과로사 방지대책 적용 시점을 1년 유예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상 택배노동자 과로사를 방치하겠다는 말이다.

2차 합의문 도출이 결렬된 책임은 전적으로 택배사에 있다. 택배사가 과로사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사회적 합의를 이윤 추구의 도구로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택배사는 인상한 택배비를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에 어떻게 사용할지 즉시 밝혀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기구의 2차 합의안에 택배사가 실질적이고 즉각적으로 분류작업을 책임지는 방안을 포함해 노동시간 단축 방안, 택배산업 내 불공정거래 문제 개선방안 등 제대로 된 과로사 방지책이 들어가야 한다. 택배비 인상분을 온전히 택배노동자 과로 방지 비용으로 사용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 사회적 합의가 택배노동자의 지속가능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확실한 계기가 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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