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지혜 서울청년유니온 위원장

2016년 10월,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 피디가 드라마 제작현장의 부조리한 노동실태를 고발하며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 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대한민국이 온통 대선으로 떠들썩하던 2017년 상반기,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는 한빛 피디에게 문제가 있었다며 책임을 전가하고 고인을 모독하는 CJ E&M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청년유니온은 대책위의 선두에서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고, “원래 그런 것은 없다”고 드라마 제작현장의 장시간 노동, 폭력적 환경을 알려 냈다. 개인적으로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못했고 회사에 공식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에 참여한 것이 전부였다. 후에 CJ E&M에게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받아 내고 한빛 피디의 명예를 회복했다는 결과를 접했어도 과정을 함께하지 못했기에 그 시간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지난했을 과정을 짐작하며 ‘아무튼 세상은 나아지긴 한다’하는 메시지를 흡수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2019년에 청년유니온 집행부로 합류하고 한 달 남짓 지났을 때, 한빛 피디 어머니이신 김혜영 어머님이 집행부들 저녁을 사 주신다고 해서 얼떨결에 식사를 했다. 다들 바쁜 것 알지만 건강 챙기라고 여러 번 당부하셨던 것이 어머님을 처음 뵌 날 남은 인상이었다. 지난해 여름에는 가수분이 음악을 들려주는 공연을 어머님이 사무실로 신청해 주셨다. 맨날 붙어 일해도 함께 노래 한번 들을 일 없는 사무실 식구들에게 귀한 순간을 선물해 주셨다. 지난해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청년단체 기자회견을 진행했을 때는 이용관 아버님이 단식 농성을 지속하고 계셔서 애가 많이 타셨을 텐데도, 오히려 우리에게 추운데 고생한다고 몇 차례나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한빛 피디를 알게 된 건 아무래도 어머님을 뵙고 난 다음부터인 것 같다. 대응을 함께하지도 못했는데, 주시는 마음을 받고만 있으려니 쌓이는 부채감에 어쩔 줄 모르던 중 어머님이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홈페이지에 글을 연재하고 계신 것을 알게 됐다. ‘빛이 머문 자리’ 탭에 들어가서 글을 읽다 보면 대응 당시의 상황과 어머님의 단어와 문장으로 그려진 이한빛 피디를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2021년, 어머님은 그간 쓰신 글을 엮고 새로운 글들을 더해 에세이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를 내셨다.

한빛 피디가 좋아한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졸업’이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 착취당하지 않길 바랐던 한빛 피디의 뜻을 기리며 설립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방송업계에 많은 변화를 만들고 있다. 장시간·폭력적 노동환경이 만연해 가히 미친 세상의 일부라고 볼 만한 노동실태를 가진 방송업계에서, 센터는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그들을 지키는 보루가 된 것이 아닐까. 미친 세상 속에서 나보다 취약한 환경의 사람들을 보며 괴로워했던 청년. 그와의 약속으로 사회에 메시지를 남기는 어머니의 말에 세상이 귀 기울여 주기를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 출간에 맞춰 바라본다.

김혜영 어머님을 떠올리면 연대라는 단어를 돌아보게 된다. 어머님은 책의 들어가는 글에 “한빛은 그렇게 내게 연대에 대해 가르쳐 주고 홀로 떠났다”라고 쓰셨는데, 소위 운동진영에서 입버릇처럼 말하는 ‘연대’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연대는 어떻게 하는 걸까, 받는 마음이 어느 순간 주는 마음이 되도록 마음먹게 하는 것이 연대의 힘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 이는 어머님이 사무실 식구들에게 주신 마음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백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