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환 시인
▲ 박일환 시인

어떤 분야의 기술자를 일러 장인(匠人)이라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거나 활동하는 데 필요한 물건이 많은 만큼 각 분야 장인도 무척 많다. 국어사전 안에 그런 장인을 가리키는 낱말이 꽤 실려 있는 편이지만 누락된 장인도 상당수다. 누락된 장인 명칭을 제시하자면 한이 없고, 풀이가 이상한 장인 이야기부터 해 볼까 한다.

마조장(磨造匠) : <역사> 조선 시대에, 선공감(繕工監) 및 지방 관아에 속해 연자매를 만드는 일을 맡아 하던 사람.

연자매란 말이나 소의 힘을 빌려 돌리는 커다란 맷돌 혹은 방아를 말하는데, 마조장은 연자매만 만들던 사람이 아니다. 한자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쇠나 나무 혹은 돌을 깎아서 각종 물건을 만들던 사람이 마조장이다. 조선 시대에 선공감에 속해 있기도 했지만 군사용 물품을 만들던 군기감(軍器監) 혹은 군기시(軍器寺)에 소속된 마조장 숫자가 더 많았다. 이들은 주로 화살촉을 깎거나 화살촉을 끼우는 구멍 만드는 일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도자기를 만드는 사옹원(司饔院)에도 속해 있었으며, 이들은 흙으로 빚은 도자기를 굽기 전에 불필요한 부분이나 굽을 깎아 내는 일을 했다. 우리말로는 굽대정이라 불렀다.

마조장을 가리키는 말로 마장(磨匠)을 사용했던 적도 있다. 이 낱말을 표준국어대사전은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마장(磨匠) : 예전에, 망돌을 만들던 장인.

망돌이 뭘까? 맷돌을 이르는 방언이다. 낱말 풀이에 왜 방언을 가져다 놓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마조장 풀이에 연자매라고 한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마장(磨匠)은 고려 시대에 중상서(中尙署)라는 기구에 소속돼 있었으며, 맷돌만 만든 게 아니었다. 중상서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으면 ‘고려 시대에, 임금이 쓰는 그릇과 진보(珍寶)의 관리를 맡아보던 관아’라고 풀이하고 있다. 마장이라는 명칭은 조선 시대에 들어 마조장으로 개칭됐으며, 깎고 다듬는 작업이 필요한 웬만한 일에는 모두 동원됐다. 그런 만큼 숫돌이나 줄칼 등 가지고 다니는 연장들이 많았으며, 그중에는 줄우피牛皮)라는 낯선 명칭의 물건도 있다. 줄우피는 소가죽을 가늘게 잘라 만든 줄을 뜻하는 용어인데 국어사전에는 오르지 못했다.

도자기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장인을 이르는 말 중에서 몇 개만 보자.

조기장(造器匠) : <공예> 도자기의 형태만을 만드는 사람.

착수장(着水匠) : 도자기의 몸체에 잿물을 올리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남화장(覽火匠) : <공예> 도자기 가마에 불을 땔 때, 불의 세기를 지켜보고 조절하는 사람.

마조장(磨造匠)을 우리말로 굽대정이라 불렀듯 조기장은 도자기의 틀을 잡기 위해 물레를 돌리는 사람이라고 해서 물레대정 혹은 사발대정이라 하며 착수장은 잿물대정, 남화장은 불대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자어 외에 우리말로 된 이름은 국어사전에서 찾을 수 없다. 대정을 대장이라고도 하는데, 대장장이에서 온 말로 보인다.

마조장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장인 하나를 더 살펴보자. 조선왕조실록에 다음과 같은 짤막한 기록이 실려 있다.

사헌부에 전교하기를 “이달 13일에 거울 가는 장인[磨鏡匠] 15명을 이미 데려오도록 했는데 곧 데려오지 않았으니, 공조와 상의원(尙衣院)의 해당 관원을 국문하라” 했다.(연산군일기 52권)

표준국어대사전에 구리거울을 만들던 사람을 뜻하는 경장(鏡匠)이라는 말이 표제어에 있다. 하지만 거울 가는 장인을 뜻하던 마경장(磨鏡匠)은 찾을 수 없다. 그나저나 연산군은 왜 마경장을 15명이나 불러들이라고 했을까? 연산군은 채홍사와 채청사를 전국으로 풀어 젊은 여인들을 궁궐로 모아들인 다음 각종 연회에서 가무를 담당하거나 자신의 수발을 들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여인들의 치장과 화장을 위한 물품들이 필요했고, 그중에서도 거울은 필수품이었다. 인원이 늘수록 새 거울도 장만해야 했지만, 기존에 쓰던 거울을 잘 갈고 닦아서 새것처럼 만들기도 했다. 옛날 거울은 백동이나 청동으로 만들어서 녹이 잘 슬었기 때문에 거울을 갈고 닦는 기술자가 필요했다. 연산군이 마경장을 불러들이라고 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마광장(磨光匠)이라 불리는 장인도 있었다. 마광장은 옥새부터 악기·칼날 등 온갖 물건을 잘 닦고 문질러 광택이 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마광장은 국어사전 표제어에 없다. 조선왕조실록에 화살통을 만드는 시복장(矢服匠), 물건에 칠하는 들기름을 만드는 명유장(明油匠), 짐승의 털가죽을 제거하는 거모장(去毛匠) 등도 나오지만 국어사전 표제어에 오르지는 못했으니 너무 아쉬워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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