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유니온센터 이사장)

지방정부라는 표현을 애써 사용한다. 지방자치단체라는 행정적 용어 자체가 ‘권한의 부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10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노동정책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하고 있다. 광역과 기초 지방정부 몇몇 곳에서 실험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혁신정책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고용안정(비정규직 정규직화), 소득향상(생활임금·공정수당), 경영참여(노동이사제), 노동안전(산업재해 예방, 감정노동, 유급병가), 일과 삶의 균형(노동시간단축, 특수고용·비정규직 휴가비 지원), 사회보장(저임금 노동자·특수고용직 사회보험 지원), 성평등 노동(성별임금공시제), 사각지대 노동조건(아파트 시설·경비, 건설 일용직, 셔틀버스·돌봄 노동자 등) 개선이다.

노동정책부서조차 없는 지방정부

현재 243곳 지방정부 중 서울·광주·충남·경기·부산·경남 같은 광역과 아산·안산·성남·수원·대덕·강동 등 기초에서 조례 제정 및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다양한 노동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국가 영역으로 인식됐던 한계를 탈피해, 지방정부에서도 가능한 노동정책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지역 차원의 노동정책이 전무한 실정에서 서울시나 경기도와 같은 사례는 보기 드문 일이다. 물론 지방정부 200곳은 아직도 행정조직 내에 노동정책 부서(팀)조차 없다. 그나마 경제·산업정책과나 일자리정책과의 한 팀에서 다루는 곳이 대부분이다. 노동문제가 경제나 산업정책의 하위 영역 혹은 고용의 한 파트로 인식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20세기 이후 몇몇 유럽지역에서는 진보정당이 집권하면서 지방정부가 적극 개입해 많은 노동정책을 수립했다.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 주택·의료·교육·보육·환경 등 시민들의 생활세계가 전적으로 ‘사적 시장’에 맡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오스트리아 빈의 대표적인 사회정책은 시영주택, 공공교통, 직접적인 고용 창출인데 시 정부는 실업구제·보건·교육·주거·사회보장 같은 공공정책을 시행했다. 이러한 빈의 개입주의 정책은 ‘붉은 빈’(Red Vienna)으로 불린다. 8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최근 독일 브레멘, 스웨덴 예테보리, 스위스 취리히, 캐나다 퀘벡, 노르웨이 트롬헤임, 미국 캘리포니아, 이탈리아 볼로냐 등 몇몇 지역에서는 실험적 정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중앙정부보다 선제적이었던 서울시

서울시는 국내 최초로 노동정책 관련 조례 제정, 행정조직 설치, 정책과 사업, 지원조직(센터), 거버넌스(위원회 등)를 제도화했다. 지난 10년 서울시는 ‘노동존중특별시’를 모토로 “법·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취약층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는 서울시부터 모범 사용자(good employer) 역할을 강화해, 민간부문의 왜곡된 노동시장이나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의지의 표상임을 엿볼 수 있다. 국내 최초로 지방정부 노동정책의 모델을 수립한 서울시 사례 몇 가지는 중앙정부보다 선제적인 노동 의제를 발굴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펼쳤다. IMF 구제금융 이후 비정규직 증가나 저임금 노동자 같은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일자리를 공공에서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열악한 노동자 문제부터 접근했고, 절박한 현실의 버팀목이 되고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수립하고자 했다. 고용안정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존중받는 노동의 실현이자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고자 하는 정책의 출발이었다. 제도적 사각지대가 실질적 사각지대를 만들었지만, 서울시라는 지방정부 공간에서 구조적 모순과 제도를 바꾸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다. 2016년 5월 발생한 구의역 김군 사고도 마찬가지다. 젊은 노동자의 허망한 죽음 앞에서 시민들은 할 말을 잃었고, 소리 없는 추모의 외침은 ‘위험의 외주화’를 끊자는 사회적 요구였다. 진상규명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여 안전 관련 업무나 위험 업무는 외주화가 아니라 직영화했다. 이윤이 아닌 사람 중심의 철학이 본격화한 계기였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서울시의 ‘노동’
전담조직 법제화가 지속가능성 보장

서울과 경기 사례가 그나마 혁신적이고 보다 현장 의견이 반영된 정책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절반의 성공으로 봐야 한다. 두 곳의 정책은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서 고민하지 못한 노동정책의 ‘실험실’ 역할을 수행한 정도다.

사실 “법·제도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취약층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정책 방향은 모범 사용자(good employer) 역할을 강화한 정도다. 민간부문의 왜곡된 노동시장이나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는 아직도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노동 밖의 노동문제에 중앙정부보다 빠르고 민첩하게 대응했다. 노조 설립신고증 교부·유급병가 지원(서울시)이나 배달노동자 산재보험료 지원·비정규직 공정수당(경기도)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 노동자는 모두 일하는 시민이고 겉모습만 보면 모두 행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보통의 관찰자 눈에 띄지 않는 불충분한 권리들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이곳 저곳의 지방정부 노동정책 수립이나 위원회 참여 등을 통해 느낀 바도 크다. 무엇보다 지방정부의 노동정책 제도화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초기에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부터 행정조직의 벽에 부딪혔지만, 일정 시기가 지난 다음에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 특히 단체장 교체나 부재로 인한 정책의 상실은 중앙정부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지방정부였기 때문이다.

현재 노동존중특별시를 표방한 서울시는 행정조직에서 ‘노동’이 사라질지 모르고, 대부분 정책이 지난 1년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부산·경남·경기와 같은 곳에서도 되풀이 될 개연성이 높다. 결국 정책의 제도화와 지속가능성은 노조와 시민사회진영의 전략적 개입과 노력이 변수가 되는 것 같다.

경험적으로 되짚어 보니 지방정부 노동정책 제도화 요인의 주요 변수가 10개는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 향후 지속가능한 제도화를 위해서는 행정조직 내 노동정책 전담조직의 설치·운영을 법제화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자치법규(조례)나 단체장의 선의에 기대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이 없다. 중앙정부와 달리 지방정부가 지난 70여년 동안 노동정책을 자기 업무(사무)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사회에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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