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비스일반노조 한국장학재단지회는 27일 오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한국장학재단은 노사전협의회 재구성하라”고 촉구했다. <서비스일반노조 한국장학재단지회>

“대통령은 취임사로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고 말했잖아요. 노동자가 참여하지 못해 기회와 과정이 공정하지 못한 정규직 전환 논의가 어떻게 정의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나요.”

염희정 서비스일반노조 한국장학재단지회장이 “노·사·전문가 협의회 논의 결과를 당장 바꾸자는 게 아니다”며 한 말이다. 그는 “현장에서 일하는 당사자인 콜센터 노동자들이 적어도 자기 고용에 관한 논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이지만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불안하다. 출범 직후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지만 아직 노동현장 곳곳에는 불안정한 신분을 유지한 채 정규직 전환을 외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기관이 정규직 전환을 논의하는 논의기구에조차 참여하지 못했다. 정부가 가이드라인 등으로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을 강조했지만 기관들은 ‘노동자 패싱’으로 일관한다.

“정규직 전환 논의는 간접고용 노동자 처우 문제”

27일 오전 한국장학재단 대표번호 콜센터 노동자들로 구성된 한국장학재단지회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회는 이달 말 콜센터 용역업체 계약갱신을 앞두고 재단에 노·사·전 협의회 재구성을 촉구했다. 고용안정을 꾀하고, 업계 최저수준인 임금을 높이려면 원청인 한국장학재단과 정규직 전환 논의를 해야 한다고 봤다.

지회는 지난해 3개월간의 파업·천막농성 끝에 천막을 거두는 조건으로 재단과 합의서를 썼다. 재단은 “처우개선을 위한 구조적 대책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콜센터 위탁업체와 지난해부터 시작한 임금협상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못했다. 위탁업체는 원청 예산을 이유로 임금인상 대신 다른 복리후생제도를 깎겠다고 제안했다.

간접고용 노동자라 교섭은 한계에 부딪혔다. 고용불안도 문제다. 염 지회장은 “2년마다 위탁업체가 바뀌면서 이삿짐 싸는 데도 이골이 났다”며 “10년 일해도 다시 신입 수준이 된다”고 토로했다.

2019년 12월 결성한 지회는 지난해 9월 파업 중에 재단이 이미 1년 전에 민간위탁 유지 논의를 끝냈음을 알게 됐다. 2019년 3월 열린 노·사·전 협의회에는 센터장 바로 아래 직급인 용역업체 관리자가 참가했다. 정부가 2017년 7월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는 파견·용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논의하는 협의기구 구성을 “이해관계자 입장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구성하고, 사업장 내 전체 직원에게 협의기구 구성 계획을 공지하라”고 했지만 콜센터 노동자들은 노사전협의회 구성 여부도 알지 못했다.

협의회에 참석한 17명 중에는 재단 정규직이 8명, 재단이 인사노무 자문을 구하는 노무법인의 노무사 1명, 7개 직종 근로자대표 각 1명씩이었다. 지역 체육학과 교수도 1명 있었다. 결국 7개 직종 중 4개 직종만 정규직 전환이 결정됐고, 300명의 콜센터 노동자들은 민간위탁이 유지됐다.

노조 있어도 정규직 전환 논의에서 배제

장학재단 위탁업체에는 노·사·전 협의회 구성 당시 노조나 노사협의회조차 없었다. 노조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문제가 불거진 것은 그만큼 협의회가 폐쇄적으로 운영됐다는 증거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달랐을까. 실제 간접고용 노동자가 정규직 전환 논의에서 배제되는 일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공단고객센터지부는 최근 심층사무논의협의회 재구성 과정에서 “지부는 협의회 참여를 요구했지만 공단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노동자 패싱’은 일어난다. 경북도청은 지난 3월 ‘행복콜센터 운영 민간위탁 검토보고서’를 통해 2016년부터 실시한 도내 콜센터 민간위탁을 유지하기로 했다. 심층논의 필요사무였던 콜센터 운영과 관련해서 도청은 지난 3월15일 내·외부 관계자 간 회의를 개최했다. 검토보고서에는 “하루 콜수가 가장 적은 상황에서 직영 운영이 시기적으로 이르기 때문에 민간위탁이 타당하다”고 밝히고 있다.

행복콜센터 노동자들은 회의 결과는커녕 개최 여부마저 알지 못했다. 심지어 행복콜센터 노동자들은 지난 1월부터 도청 앞에서 8개 의제를 놓고 천막농성 중이었다. 의제 중에는 콜센터 노동자 정규직 전환 요구도 있었다. 노조 경북지역지부(지부장 송무근)는 농성 중에도 도청과 대화를 계속했지만 민간위탁 유지 결정에 관해서는 듣지 못했다.

송무근 지부장은 “천막농성을 하며 도청과 실무협의를 해 왔지만 회의 등은 일언반구도 없었다”며 “보고서 존재 조차 다른 노조를 통해 알았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는 경북도청에 타당성 검토를 다시 하라고 전달한 상태다. 지난달 30일 노동부가 경북도청에 보낸 공문에는 “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에 따라 콜센터 등 심층논의가 필요한 사무는 이해관계자(위수탁기관 노동자, 사업주 등)의견 수렴을 거쳐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며 “절차를 거쳐 타당성 검토를 완료하고, 경북도청은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는 민원이 제기된 상황을 고려해 충분한 의견 수렴이 이루어지도록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명시됐다.

정부 가이드라인의 한계, 기관 의지 부족이 원인

‘노동자 패싱’은 정부 가이드라인의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희철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은 “가이드라인은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의견수렴을 보장하지만, 근로자대표단 구성 관련 세부 지침이 없다 보니 전환 대상자인 콜센터 노동자 대표들의 참여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노동부도 이 같은 한계를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상 이해관계자 범위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의견수렴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며 “사실상 기관이 ‘수탁기관의 의견을 들었다’고 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민간위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구속력 있게 추진하지 못한 한계가 있지만,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려는 기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며 “노조가 있는 사업장이라면 노조가 기관의 협의기구 추진을 잘 감독하고, 동일·유사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의 정규직 전환 여부를 비교해 기관과 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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