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직장갑질119

직장내 괴롭힘 피해 노동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가 1심 재판에서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직장내 폭력 사건을 형법으로 처벌하는 사례는 있어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해 징역형을 선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사 관리자, 노동자에게 화장품 강매·회식비 지급 강요

27일 음성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청주지법 충주지원(형사1단독 임창현 부장판사)은 최근 근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구내식당 위탁운영업체 대표이사 A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했다. 보호관찰과 12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했다.

충북 음성군 소재 병원 구내식당에서 일한 피해자 B씨는 2019년 7월 관리자 C씨에게 갖가지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다. 입사 신고식 명목으로 회식비 지급을 강요당하고 욕설·폭언을 들었다. C씨는 화장품을 강매하거나 자기에게 우호적인 직원에게 시간외근무를 몰아주는 등 권한을 남용했다. B씨를 포함해 괴롭힘을 당한 동료 4명이 이 같은 사실을 구내식당 운영업체 관리이사(대표이사 A씨의 배우자)에게 호소한 뒤 사태는 더 악화됐다. 관리자는 B씨 등에게 “벼락 맞아라, 자식도” “눈알들 다 빠져라” 같은 폭언은 물론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험한 말을 쏟아 냈다.

회사가 가해자 C씨에게 언행을 조심하라는 취지로 견책에 해당하는 경징계를 하자 피해자는 다음날인 같은해 7월24일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달 27일 센터를 통해 회사 대표이사에게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했다. 그에게 돌아온 조치는 해고였다. 회사는 직장내 괴롭힘 신고 이틀 뒤인 7월29일 무단결근을 이유로 피해자를 퇴사처리했다.

회사의 이상한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센터는 B씨가 해고당했던 시기인 2019년 8월20일 구내식당 운영업체 전·현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직장내 괴롭힘 실태를 살피기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30여명이 피해를 호소하며 모였다. 이 자리에는 대표이사와 회사 관계자도 참석했다. 회사쪽은 이날 간담회 증언을 녹취해 가해자 C씨에게 전달했다. 가해자는 녹취를 근거로 피해자 B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가해자는 경징계, 피해자는 사실상 해고

1주일 뒤인 8월27일 열린 인사위원회는 가해자에 대한 견책 징계를 그대로 유지했다. 피해자와 관련해서는 자진퇴사 처리를 철회하고 무급휴직으로 변경했다. 그런데 대표이사 A씨는 독단으로 피해자를 다른 사업장으로 전보조치했다. 거듭된 피해를 당한 B씨는 그해 9월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충주지청에 회사를 직장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근기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는 사이 충북지방노동위원회는 같은해 11월 B씨의 부당전보 구제신청을 인정하는 판정을 했다. 회사는 이를 수용했다.

충주지청에서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이첩받은 검찰은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A씨는 벌금 명령을 불복하고 지난해 4월 재판부에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대표이사 A씨 입장에서 정식재판 청구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근로기준법은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조항이 없다. 다만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 조치를 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복직해 피해가 복구됐다고 주장했다. 회사 차원의 불이익 조치가 사라졌기 때문에 근기법 위반이 아니라는 얘기다.

재판부 생각은 달랐다. 검찰 구형보다 높은 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 근로자가 본사를 찾아가 관리이사에게 피해를 호소한 이래 부당전보 구제심판이 확정될 때까지 일련의 단계에서 피고인 회사가 취한 개개의 조치를 살펴보면 근로자에 대한 배려를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며 “이는 피고인의 경영마인드라는 것이 현행 규범에 못 미치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근로자를 대상화하고 인식하는 것에 기인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의 근로자에 대한 낮은 수준의 인식은 언제든지 또 다른 가해자를 용인하고 또 다른 다수의 피해자를 방치할 것”이라며 “재범 예방을 위해 특별준수사항을 담아 보호관찰을 부과하고, 피고인에게 노동의 의미를 일깨우기 위해 사회봉사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A씨는 1심 재판 결과가 나온 다음날 곧바로 항소했다.

한편 센터는 대표이사 A씨를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로 조만간 경찰에 고발한다. 2019년 8월 간담회를 녹취해 피해자에게 전달하는 불법행위를 했다는 이유다. 현재 피해자 B씨는 회사측과 합의해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가해자 C씨는 2020년 7월 직장내 금전거래 등을 이유로 해고됐다가 징계절차가 정당하지 않아 복직했으나, 이후 자진 퇴사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