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22일은 광주 폐기물종합재활용처리공장에서 혼자 일하다 파쇄기에 몸이 빨려 들어가 숨진 고 김재순(사망 당시 26세)씨 1주기다. 고인의 아버지 김선양씨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해야 했고, 가해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재판은 28일에야 선고공판이 열린다. 그 1년간 현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살아남은 산재 노동자는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호소한다. 산업재해 후유증으로 2차 질병을 앓고 있는 노동자는 추가상병 요양급여가 불승인돼 자비로 치료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한 제철소는 안전담당 부서를 확충했지만 현장 인력은 되레 감소하고 있다. 감시자는 개선 요구를 쏟아 내고 있는데 그 이행 책임은 오롯이 현장 노동자의 몫이다.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고 귀담아듣는 산재예방·보상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동자 생명 스스로 지키자’

광주·전남 노동안전 보건지킴이(준)는 지난 21일 오후 광주시청에서 “노동자의 건강이 위험하다”를 주제로 현장 노동자 증언대회를 개최했다. 김선양씨를 비롯해 광주·전남지역에서 일하는 산재 피해노동자·노조활동가들이 자리에 함께했다.

버스노동자는 사고 재해 피해자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교통사고를 내거나, 사고를 당하더라도 직접적인 신체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면 이들은 산재 피해와는 거리가 먼 노동환경에서 일할까. 증언대회에 참가한 김광석씨에 따르면 전남의 한 지자체는 3일 일하고 하루 쉬는 근무체계를 버스노동자에 적용한다. 버스노동자는 하루 10~11시간 운전한다. 김씨는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어기지는 않지만 노동강도가 높아 매우 피로한 상황에서 운전한다”며 “승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이 같은 노동환경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산업안전보건법이 강화해도 개선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버스 현장에 맞는 산재예방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원창씨는 현대삼호중공업에서 26년간 일했다. 그의 몸은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다. 지난해 3월 요추 추간판 탈출증이 발병해 산재를 신청했지만 퇴행성이라는 이유로 불승인됐다. 다시 요추염좌 진단명으로 신청하고 3개월 휴양을 했다. 올해 초 척골충돌증후군으로 다시 수술하고 4개월째 요양하고 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요양기간을 종결하려 하자 요양결정기간 연장을 신청했다. 그는 “몸이 다 회복하지 않았는데도 공단은 요양기간을 종결하려 한다”며 “산재 피해 노동자가 제대로,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공단은 요양기간을 줄이는 데에만 혈안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ㄱ씨는 “몸이 아파도 산재인지 모르고 계속 일하다 근골격계질환으로 손목·팔목·어깨를 3개월 단위로 수술받고 요양 중”이라며 “담당 의사와 공단은 계속 아프다는 호소를 ‘꾀병’ 취급하며 직장에 복귀하라고 했고, 대학병원에서 다시 진단을 받고서야 연장 승인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노동자 편인 줄 알았던 공단과 요양기간 연장을 위해 씨름하는 과정이 치료받는 기간보다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산재예방대책 기업에 맡겼더니
“재해자 징계하는 포스코, 산재신청 말라는 얘기”

포스코 노동자 문현찬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설명하며 한숨을 쉬었다. 포스코는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아 올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재청문회에서 질타를 받았다. 안전 비용 1조원을 투입하고 전담조직을 신설하겠다는 예방대책을 밝힌 바 있다. 대책은 어떻게 이행되고 있을까. 문씨는 “별도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예산으로 설비나 시설물 개선을 할 때 ‘안전’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집행하는 식”이라며 “현장은 작업자가 부족해 위험작업에 2인1조도 꾸리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안전담당부서 인력을 증원하며 현장인력을 계속 빼 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안전담당자들은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자기들이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을 현장 노동자에게 떠넘긴다”며 “산재가 발생하면 재해자와 상급자를 징계하는 시스템을 운용하는데, 이는 산재신청을 하지 마라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2만2천900볼트 전기선을 다루는 배전 전기원은 한국전력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다. 이들은 근골격계질환 이외에도 최근 뇌심혈관질환·피부암·백혈병 등 새로운 질병들이 속속 발병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도마에 올라 다음달께 한전과 노동자들이 협의체를 꾸려 배전노동자 실태조사를 한다. 전기원 노동자 이용철씨는 “특수건강검진을 받았으면 좋겠고, 전자기파 발생과 노동자 건강 이상의 연관성 등이 밝혀지면 좋겠다”며 “정부와 여당이 위험한 현장을 반드시 바꾼다는 각오로 현장 노동자 피해 목소리를 새겨들었으면 좋겠다”고 증언했다.

2018년 진해-거제 해저 가스관공사에 투입됐던 아르곤 용접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비소에 중독돼 논란이 일었다. 당시 피해자 2명이 증언대회에 나왔다. 비소중독 치료를 하다 우울증과 적응장애까지 겪게 돼 추가상병 승인을 받아 3년째 치료를 받고 있다. 최근 가려움과 두드러기 증상이 심각해져 추가상병을 신청했지만 공단은 불승인했다. 그는 “과거 발톱무좀 문제로 피부과 진료를 세 번 정도 본 적이 있는데 이를 이유로 과거 유사 증상이 있었다고 불승인했다”며 “우울증과 가려움 등으로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고통받고 있는데도 치료를 종결하라고 해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증언대회를 참관한 고 김재순씨의 아버지 김선양씨는 “여러분과 동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현장이 개선할 수 있도록 강하게 싸워 달라”며 “안전한 일터를 위해 노동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광주·전남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산업현장 노동실태를 점검·감시하고 예방대책을 제안하는 목적으로 노동안전 보건지킴이(준)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7월 공식 출범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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