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

금속노조가 제기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처리지연 문제에 강순희 공단 이사장은 근본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보다는 공단의 노력을 알아 주지 못하는 것에 볼멘소리를 했다. 강 이사장이 공단의 노력과 성과로 제도들이 개선된 것마냥 치장했던 보험가입자 의견서를 신청인에게 제공하는 절차, 산재용 소견서 대신 진단서로 갈음할 수 있는 절차 등은 공단이 자발적으로 개선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켜켜이 쌓여 왔던 병폐로 고통받았던 노동자들의 투쟁과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일부를 수용을 한 것이다. 여기에 강순희 이사장은 5월3일자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공단의 산재 지연처리가 마치 노동자들이 산재를 무분별하게 신청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의 어이없는 주장을 했다. 이는 산재보험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발언이자, 근로복지공단의 존재 이유와 책임을 몰각한 발언이다. 산재업무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의 수장으로서 할 말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의 폐쇄성

산재 지연처리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다. 질병판정위 회부부터 결정까지의 기간은 고무줄처럼 기간이 늘어지면서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산재보상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된 질병판정위의 현재 구조로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보장하기는커녕 신속성에도 역행한다.

지금의 질병판정위는 어느 것 하나도 공개되지 않고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거나 이의를 제기할 기회조차 박탈된다. 위원에 대한 기피·제척하는 제도가 있지만, 위원회에 참여하는 위원 명단조차 공개되지 않아 해당 제도가 발현될 수도 없다.

조사 과정에서 공단은 산재신청인의 상병 및 업무관련성 여부를 임상자문의와 직업환경자문의에게 의뢰한다. 그리고 자문 결과 상병이 확인되고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평가하더라도 질병판정위에서 ‘상병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하거나 ‘업무관련성, 업무부담 정도가 적다’는 것으로 불승인 처분을 한다. 하지만 해당 결정에 대해서 재해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근거나 설명은 거의 없다. 산재 승인 여부에 대해서는 질병판정위에서 심의·의결하고, 결정은 해당 지사에서 하는 이중적 구조로 인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제는 새롭게 판을 바꿔야 한다

산재보험 제도에 대한 몰지각한 인식과 태도로는 근로복지공단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으로서 사회적 요구와 책임에 의해서 보상 범위와 기준이 확대돼 왔다. 또한 보상은 재해자에 대한 치료와 생계를 보장하는 것을 넘어서 노동자들이 노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예방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사회적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예방과 보상을 책임지는 고용노동부는 산재 지연처리 문제를 단지 인력이나 몇 가지 절차를 개선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낡은 제도와 절차로는 바뀔 수 없다. 과감하게 낡은 제도를 버리고 새롭게 산재보험의 사회적 책임을 확대하기 위해서 새로운 판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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