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와 8개 노동·언론단체는 지난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을 촉구했다. <방송스태프지부>

드라마 제작현장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을 논의해 온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공동협의체’가 출범 2년 만에 해산 위기를 맞았다. 협의체는 지난 2019년 “방송사·제작사와 스태프는 계약 시, 표준근로계약서를 적용한다”는 기본 원칙에 합의한 뒤 세부적인 노동조건을 논의해 왔다. 하지만 참여단체 간 갈등으로 드라마 현장에 표준근로계약서를 도입한다는 기본 원칙에 대한 논의도 원점으로 돌아갈 상황에 놓였다.

논의 내용 공개 놓고 제작사협회·지부 간 ‘책임공방’

19일 협의체에 따르면 협의체는 2019년 12월부터 약 4개월간 논의를 중단한 데 이어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다시 멈춘 상태다.

2019년 6월 출범한 협의체에는 지상파 방송사인 KBS·MBC·SBS와 언론노조,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지부장 김기영)가 속해 있었다. 출범 한 달 뒤 SBS가 지상파 산별협약에서 탈퇴함에 따라 협의체에 불참했고, MBC도 올초부터 불참 의사를 밝혔다. 두 지상파 방송사는 협의체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지금은 지상파 방송사를 대표한 KBS·언론노조·제작사협회와 방송스태프지부가 논의에 참여한다.

표면적인 갈등은 제작사협회와 지부 간 ‘파행 책임 공방’이다. 방송스태프지부가 조합원들에게 논의 중인 내용을 공개하자 제작사협회가 문제 삼았다.

제작사협회측은 “논의 중인 내용을 확정된 것처럼 공개한 희망연대노조에 귀책 사유가 있다”며 “지난달 지부는 (드라마 제작현장 장시간 노동에 대해 비판한) 기자회견에서도 협회에 책임을 물었지만 협회가 (협의체) 중단을 먼저 선언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부는 제작사협회가 그간 주요한 논의 시점마다 시간만 끌어 왔다고 반박한다. 김기영 지부장은 “내부적으로 표준근로계약서 초안에 대해 의견접근을 이룬 상태였는데 (노조가 조합원과 내용을 공개했다고) 제작사 협회가 책임을 떠넘기며 논의를 보이콧했다”며 “협의체를 먼저 파기하는 데 부담을 느낀 제작사협회가 시간만 끌다가 기자회견 내용 등을 꼬투리 잡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조 “근로계약 전면도입이 싫은 사측”
제작사협회 “기술스태프 사용자는 팀장”

언론노조와 방송스태프지부는 근본적인 갈등은 2019년 합의된 기본 원칙을 협회가 번복한 데 있다고 주장한다. 협의체는 2019년 △드라마 제작현장 노동시간단축 △방송사·제작사와 스태프가 계약시 표준근로계약서 적용 △제작 현장별로 종사자협의체 운영에 합의해 출범했다. 여기서 스태프는 제작·연출·촬영 스태프뿐 아니라 기술 스태프 등을 모두 포함한다.

하지만 제작사협회는 일부 스태프에 한해서만 제작사·방송사와 근로계약을 맺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제작사협회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2019년 7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근로감독 결과에 따라 조명·그립·동시녹음 스태프들의 사용자는 팀장급 스태프라는 입장”이라며 “법적으로 하도급이 허용돼 있는데 기술 스태프까지 방송사와 제작사한테 근로계약을 맺자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협의체 간사 역할을 해 온 최정기 언론노조 총무국장은 “제작사협회가 본합의에 이를 상황이 되자 협의체 존속 이유인 ‘근로계약 전면 적용’ 원칙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혀 사실상 협의체 논의를 무산시켰다”며 “팀장급 스태프는 제작사와 방송사의 요청에 따라 팀원을 꾸려 사용자가 돼 계약을 체결(턴키)하게 되는데, 이는 재벌 대기업이 인사노무관리 책임을 회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협의체 내 갈등은 잦아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올해 7월1일부터 5명 이상 사업장에도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가 전면 도입됨에 따라 지부는 제작현장 내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에 대해 법적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김기영 지부장은 “드라마 제작을 많이 하는 주요 방송사와 제작사를 중심으로 근로계약 도입을 요구할 것”이라며 “불법적인 장시간 노동에 대해서도 법적인 권리를 주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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