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1997년부터 경기아트센터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고 있는 이정진(56·가명)씨는 지난 3일 해고예고 통보를 받았다. 해고 사유는 “2년마다 실시하는 종합평정에서 2회 연속 기준점수를 미달했고 3개월 후 실시하는 재평정에서도 기준점수에 미달됐다”는 것이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10차례 넘는 평정(시험)을 무사히 넘겼던 그가 기준 미달 점수를 받게 된 시기는 경기문화의전당에 노조를 만들고 활동한 이후부터다. 노조활동을 못 하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했지만, 정량적 평가기준보다 평가자 주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예술단 평정제도 특성상 이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6월4일 해고일를 앞두고 현재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준비 중이다.

업무능력을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평가지표를 근거로 예술노동자를 해고하는 평정제도가 논란이다. 국공립예술단은 대부분 매년·격년 단위로 평정(오디션)을 실시해 일반해고를 가능하도록 하는 내부 규정을 가지고 있다. 예술노동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여기는 평정해고를 막을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부 점수 확인도 못했는데, 해고”

17일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이정진씨가 일하는 경기아트센터 평정제도는 상시평정과 정기평정으로 나뉜다. 1년에 두 차례 실시되는 상시평정은 성실도·참여도·예능도, 세 개 지표로 부지휘자와 악장이 평가한다. 악장은 1바이올린 리더로 오케스트라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2년에 한 번 시행되는 정기평정은 실기평가로 상임지휘자 한 명과 외부전문가 3명이 평가한다. 경기아트센터는 2년에 한 번 상시평정(60점)·정기평정(40점) 점수를 합산해 종합평정 점수를 낸다. ‘경기도예술단 운영규정’에 따라 종합평정에서 2회 연속 75점 미만의 점수를 받으면, 재평정을 한 차례 받을 수 있고 이 시험에서도 기준 점수를 미달하면 경기아트센터는 노동자 해고가 가능하다.

언뜻 객관적인 평가절차가 마련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해고노동자 당사자는 상시·정기평정 점수를 확인하지 못한다.

이정진씨는 “평가자에게 상시평정 점수가 나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연습시간에 휴대전화를 보지 않았느냐, 하품을 하지 않았느냐 같은 이유를 댔다”며 “정기평정 평가자가 자신과 음악스타일이 맞지 않아 점수를 낮게 준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사측이 마음만 먹으면 자를 수 있는 평정제도를 고쳐야 한다”며 “과거에 손가락 관절염에 걸렸던 바이올리니스트도 평정 기준점수에 미달돼 해고된 적이 있는데 열심히 해 온 사람을 내쫓는 것이 옳은 제도냐”고 되물었다.

경기아트센터쪽은 “부당해고라는 주장은 노동자 개인 의견으로 286명의 모든 경기도 예술단원의 평정 기준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고 밝혔다. 또 “종합평정 내규에 따라 본인이 신청하는 경우 최종 평정 내역의 총점만 열람한다는 규정이 있다”며 “이에 따라 총점을 열람해 줬고, 이 모든 규정은 노사합의에 의해 결정된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전남도립국악단 부당노동행위 의혹”

평정해고로 논란을 빚고 있는 곳은 경기아트센터뿐만이 아니다. 전남도립국악단 소속으로 2006년 광주임방울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김철(57·가명)씨도 지난 3월31일자로 해고됐다. 2년 연속 정기평정 결과 ‘가’등급을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전남도립국악단 복무규정 21조는 정기평정 점수 60점 미만(정원 5% 이내)의 경우 가등급을 부여하고 ‘가’등급을 연속 2회 이상 받으면 재위촉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했다.

김철씨는 “2006년 대통령상을 받고, 지금까지 40년 동안 국악 생활을 해 왔다”며 “아직 활동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제가 왜 이런 일(해고)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박씨의 해고 과정을 살펴보면 부당노동행위 정황이 적잖다. 박씨의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대리하는 홍관희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광주사무소)는 “연속 가등급이 나온 발단은 2019년 평정제도에 항의하는 쟁의행위로 오디션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당시 오디션을 거부한 조합원의 경우는 승급보류에 해당하는 점수(양·가)를 줬지만, 비조합원은 승급보류를 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홍 노무사는 “또 당시 병가·휴가 등 사유로 오디션에 참가하지 못한 이들은 오디션 기회를 추가로 제공했지만, 쟁위행위를 철회한 조합원들이 오디션 기회를 달라고 요구해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씨 징계는 전남도립국악단 복무규정에도 위배된다. ‘가’등급을 주려면 60점 미만(5%)이어야 하지만, 김씨는 85.1점을 받았다. 국악단원과 고용계약을 맺는 당사자인 전라남도쪽은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이 돼 있어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부가 지침 마련하라”

공공운수노조는 “10년, 20년 근속한 단원이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평정제도는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물론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노동법에도 어긋나는 제도”라며 문화체육관광부에 가이드라인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예술단 중 노사합의로 평정제도에 따른 해고 조항을 삭제한 곳도 있지만, 적잖은 곳이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서용진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예술인의 실기평정은 대개 평가항목이 추상적이고 세부항목이 없어 평정자의 주관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법원은 예술단 기량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평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예술단과 교향악단 역사가 깊은 유럽에서도 평정제도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정제도는 단원이 평정권한을 가진 이들에게 잘 보이려 줄서기를 강요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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