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저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지냈어요. 휴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고병원성조류독감(AI) 시료를 채취하고, 초동방역 현장에서는 낮에는 통제, 밤에는 차량에서 교대로 새우잠을 잤습니다.”

박찬연씨는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에서 방역업무를 7년째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26일부터 지난 4월6일까지 고병원성 AI가 109건 발생하면서 박씨는 숨 고를 새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일한 만큼의 대가는 받을 수 없었다. 고병원성 AI 발병이 확인된 농가에 24시간 혹은 48시간씩에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초동방역업무를 수행하지만 대가로 돌아오는 것은 최저임금이다. 초과근로수당도 없다.

박씨만 이런 처우를 받는 게 아니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에서 일하는 방역직·위생직·예찰직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처우를 호소한다. 기관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댄다.

“히터 틀고 차에서 새우잠”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지부장 김필성)가 13일 오전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업무는 산더미인데 월급은 형편없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논란은 초동방역업무에서 시작됐다. AI나 아프리카돼지열병 같은 가축질병이 발생했을 때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방역직 노동자가 투입된다. 이들은 초인적인 노동시간을 버티고 버틴다.

방역직 노동자 한정수(26·가명)씨는 “질병 전파를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이라서 규정상 48시간 동안 그 장소에 들어오는 차량·사람을 통제한다”며 “살처분업무나 통제업무는 밤에도 계속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밖을 나갈 수 없으니, 가기 전 개별적으로 도시락을 사 가거나 사무소 동료들끼리 모은 돈으로 산 간식을 가지고 간다”고 증언했다. 제대로 쉴 휴게공간도 마땅찮다. 지부에 따르면 과거 텐트를 지급하기도 했지만, 겨울에 주로 발생하는 AI 특성상 텐트만으로 야외취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부분 노동자는 차량에서 히터를 틀어 놓고 돌아가며 잠을 청한다.

수당 지급체계는 엉망이다. 연장근로수당은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 48시간 현장근무를 한 다음날은 하루 동안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데, 평일인 경우 유급으로 처리되지만 주말에는 별도 보상이 없다.

인력이 부족해 2인1조 근무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필성 지부장은 “2019년 안전 문제를 제기한 뒤 2인1조 근무 수행을 위한 안전직을 충원했지만 이들이 인력이 부족한 행정지원 업무를 보느라 정작 2인1조 근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관계자는 “일반적인 시간외근로는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는데, 초동방역의 경우 휴게도 취하면서 근무도 하다 보니 근무시간을 특정 짓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노사합의로 2018년에는 8천원으로 정해 지급했고, 2020년에는 해당 연도 최저임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주말근무에도 예산부족 이유로 수당 안 줘”

2018년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정책으로 기간제로 일하던 248명의 예찰직 노동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지만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다. 예찰직은 농가에 전화를 걸어 사육현황과 질병현황을 수집한다.

예찰직 노동자 김지선(가명)씨는 “휴일에 근무하지만 휴일 수당을 받지 못하는 예찰직이 수두룩하다”며 “매일 실적을 보고하지만 업무성과로 인정되지 않고 10년을 일해도 승진할 수 없다”고 귀띔했다. 예찰직은 기존 무기계약직에게 지급하는 교통비·가족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가축질병이 크게 늘어 주말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본부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대체휴무를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부는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직원 1천268명 중 행정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49명을 제외한 노동자 96%가 모두 무기계약직인 기형적인 구조를 바꾸고 국비 100%로 초동방역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라고 요구했다.

김필성 지부장은 “업무의 중요성이나 강도에 비해 임금이 너무 적다”며 “온전한 정규직화를 요구해도 본부나 농림축산식품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본부 관계자는 “노조 요구에 따라 초동방역예산 증액을 상급기관에 요청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요구사항에 대해 이제 검토를 하고 있는 중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농림부 관계자에게 요구사항을 담은 정책질의서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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