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선 변호사(법무법인 마중)

4월16일이 지나고, 4월19일이 지나고, 5월1일을 앞두고 있는 지금. 지난해 이맘때 ‘2020년 4월29일’이라는 제목으로 썼던 칼럼이 생각난다.

지난해 4월29일 경기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로 서른 여덟 분이 돌아가셨다. 유족들은 진짜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길 바랐다. 1년 사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고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양형기준을 상향했다. 유족분들은 법률 제정에 기뻐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이 이름에 미치지 못하고 정작 자신들의 사건에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고용노동부는 지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만들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4조1항4호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를 이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알려진 시행령안에 따르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의 기준이 되는 안전보건 관계 법령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게 설정돼 있다.

우선 화학물질관리에 대한 제반 법률과 근로기준법이 빠져 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조건의 최소 기준을 정한 기본법이다. 예를 들면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시간·휴게시간·휴일을 규정하고 있다. 근로시간은 단순히 임금 계산을 위한 숫자가 아니라 근로자의 건강·생명·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다.

근로시간 위반은 안전보건 문제이기도 하고, 과로사나 과로자살 역시 중대재해에 포함돼야 한다. 그럼에도 노동부가 근로기준법을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서 제외시킨 것은 중대재해를 사고성 재해로만 한정하는 시각에서 출발한 것 같아 우려된다. 중대재해처벌법에 중대시민재해까지 포함시키고, 입법 목적을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중대재해처벌법 제1조)”으로 한 취지는 폭넓게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 2조2호다목에서는 사고뿐 아니라 직업성질병으로 인한 사망도 중대재해에 포함하고 있다. 화학물질로 인한 사고와 질병이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화학물질관리에 관한 제반 법률들이 빠져 있는 것도, 노동부가 익숙한 법률만 한정해 살피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위와 같은 우려 지점들을 이해한다면 관련 자료를 5년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장기간 보관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하리라 믿는다. 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의 경우 수십 년 후에 나타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수많은 산재노동자의 죽음과 유족의 아픔을 딛고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이다. 그 목적에 부합하도록 시행령을 만들길 바란다.

지난해 4월29일 대법원은 선천성 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한 여성노동자에게 산재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2세의 업무상재해를 입법적으로 분명히 하고, 이 경우 아이가 최소한의 치료를 받고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산재급여를 지급하며, 아픈 아이의 돌봄 등을 위해 유급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고, 이에 더해 2세의 건강 손상과 관련해 근로기준법 및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의 직업병 목록 및 재해인정기준을 추가하고, 근로기준법 및 산업안전보건법의 임신노동자 금지업종을 실질화하길 바란다. 더 나아가자면, 남성노동자의 업무로 인한 재생산건강 손상, 2세의 건강손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고 주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훌륭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후속 입법조차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2022년 4월29일 즈음에는, 기쁜 마음으로 사건 경과를 알려 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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