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유지했다.(후략)”

T.S. 엘리엇이 지은 <황무지>라는 제목의 이 시는 난해하다. 그런데도 해마다 4월이 되면 사람들은 이 시구를 입에 올린다. 그 난해한 뜻을 이해하고 공감해서라기보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이 시의 첫 구절이 1960년의 사월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생을 비롯한 중고생과 대학생 같은 꽃다운 나이의 청춘 수백명이 경찰의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산화했다. 그런데도 이승만 친미반공파쇼 1인 독재가 물러간 자리에 친미반공보수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서 혁명을 배반하더니 뒤이어 박정희 친미반공파쇼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서서 군홧발로 4월 혁명을 짓밟았다. 그것은 이승만 반공체제를 재정비·강화하는 반혁명 쿠데타였다. 이 반혁명을 그들은 혁명이라고 강변했다. 이렇게 4월 혁명은 지배계급 두 분파에 무참하게 배반당하고 짓밟혔다. 그래서 4월 혁명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해마다 4월이 되면 이달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느끼고 그 느낌을 표현하고자 엘리엇의 시를 소환한 것이리라.

1960년대 대한민국 최대 사건은 4월 혁명이었다. 필자는 고등학교 1학년 봄소풍을 수유리 4·19묘지로 갔다. 우리를 이곳으로 인솔한 선생님들 가운데는 4월 혁명에 직접 참여한 분들이 있었다. 1970년 4월 고려대에서 열린 4월 혁명 10주년 토론회에서 4월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 아니라 미완의 혁명이라고 주장했던 기억이 난다. 해마다 대학가에서는 4월 혁명을 기념했다. 4월19일이면 학교에서 토론회와 마라톤대회 같은 기념행사가 열렸다. 교수님들 가운데 4·26 교수데모에 참여한 분들이 있었다.

4월 혁명 61주년이 됐다. 그 이후 숱한 투쟁과 항쟁·혁명이 있었음에도 1960년 4월 영령들의 핏값은 제대로 치러지지 않았고 4월 혁명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4월 혁명은 무엇인가. 4월 혁명은 이승만 정권을 물러나게 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1960년 당시에 이미 완성됐다. 4월 혁명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라 이승만 체제를 타파하는 것이었다. 이승만 체제는 분단·예속과 반공파쇼 체제였고 민생을 파탄 낸 체제였다. 이승만은 하와이로 쫓겨나 그곳에서 죽었지만 그가 만든 체제는 지금도 의연히 건재하다. 대한민국의 주류는 여전히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고 있다. 그 썩은 체제하에서 민생파탄은 자살률 세계 1위, 노인빈곤율 세계 1위로 계속되고 있다.

4월 혁명은 어떻게 완성할 수 있을까. 1960년대에 ‘옆으로부터의 혁명’이라는 말이 있었다. 피지배계급이 아닌 소시민계급 지식인과 예비지식인인 대학생들이 사회혁명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참여문학이니 앙가주망이니 하는 말이 무성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들이 끼친 공로는 지대하다. 그러나 그 한계도 분명하다. 그들은 4월 혁명을 완성할 수 없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군사파쇼가 퇴진하고 이만큼 민주화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그들은 예속과 분단은커녕 반공파쇼조차 해체시키지 못했다. 국내최대 재벌 총수가 프로포폴을 상습적으로 투약한 환자로 밝혀졌는데도 수사와 기소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나라, 이런 것조차 바로잡지 못하는 이들이 군사파쇼를 민간파쇼로 바꾸는 것 이상의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누가 4월 혁명을 완성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4월 혁명 과정에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80년 5월에 그랬듯이 이들이 없이 4월 혁명을 말할 수 없다. 이들이 주목돼야 할 차례다. 더구나 지금 노동계급은 국민의 절대다수다. 노동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궁핍하다. 지식인들이 체제내화 됐다면 노동자는 체질상 반체제적이다.

이들을 대표하는 노동운동은 어떤가. 노동운동은 탈혁명화 됐다. 언제부터인가 개혁은 현실적이고 혁명은 비현실적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노동운동을 지배하고 있다. 자본세력은 4차 산업혁명이니 촛불혁명이니 하며 혁명이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데 그에 맞서 싸워야 할 노동계급의 대변자들은 촛불혁명도 혁명이 아니라 항쟁이라고 하면서 혁명이라는 단어를 기피한다. 마치 박근혜가 빨간색을 자기 정당의 색깔로 삼는데 노동계급을 대변한다는 정당은 주황색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노동운동이 혁명운동화 하지 않는 한 4월 혁명은 계속 미완성일 것이다. 자유주의든 파시즘이든 부르주아계급이 노동자·민중을 위해 큰 일을 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착각이다. 썩은 권력을 몰아내기만 하고 그 권력을 민중이 아닌 타 계급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이점은 4월 혁명과 촛불혁명이 분명하게 증명했다. 피지배 민중세력이 국가권력의 주인이 돼야 한다. 이때에도 민중을 대표하는 특정 집단에게 전적으로 권력을 맡겨서는 안 되고 민중 스스로가 권력의 주인이 돼야 한다. 그게 민중권력이다. 또 소수의 이름 있는 명망가들이 대중을 대리하는 의회주의도 금물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중개하는 자가 언제나 주인 노릇하게 된다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느님과 민중 사이에 하느님의 아들이 하느님 역할을 하고, 예수님과 어린 양들 사이에 목자인 사제가 예수님의 역할을 한다고.

세상 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고통이 쌓이다 보면 민중봉기가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을 성공한 혁명으로 전화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4월 혁명이 왜 지금까지 완성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민중이 국가권력의 주인이 되는 것, 민중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절대적 조건이다. 그것이 실현돼야만 4월 혁명은 완성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사월은 더 이상 “가장 잔인한 달”이 아니게 될 수 있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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