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24일 오후 전북 군산에 소재한 노조에서 찾아왔다. 서울남부지법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나 방문 목적을 듣게 됐다. 노조위원장은 통상임금이 문제라고 했다. 위원장으로 당선한 직후 찾아와 통상임금 문제 해결의 강한 의지를 밝히던, 그의 당당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노조가 강력하게 협상을 요구해도, 사측은 승리를 자신하며 협상할 뜻이 없다면서 꿈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법원에서 패소할 것을 걱정하는 조합원들은 근래 들어 노조에 사측과의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노조는 더 부담을 갖고 사측에 협의를 요청하지만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한 사측의 태도가 완강해 어렵다는 말을 했다. 이렇게 노조가 풀어 보려는 데도 풀리지 않는 사업장은 바로 세아베스틸이다.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된 후 논란이 됐던, 재직자 조건의 정기상여금이 문제였다. 한동안 하급심에서 엇갈렸지만 최근 대법원에서 고정성이 결여됐다며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잇달아 판결하면서 이제는 다들 만만치 않다고 인식하고 있는 그 문제, 재직자에 한해 지급하도록 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를 두고서 세아베스틸의 노사는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그래서 세아베스틸에서는 통상임금이 문제인 것이다.

지난 노조 선거에서는 후보마다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주된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시 후보였던 위원장은 다른 어떤 후보보다도 더 그러했다고 내게 말을 했다. 그러니 해결하려 아무리 시도해도 사측이 꿈적하지 않아 답답해서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고자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세아베스틸의 통상임금 사건을 위임한 변호사에게 이렇게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도움을 얻을까 해서 찾아온 것이다.

2. 세아베스틸 사건은 대표자 몇 명의 소송 결과를 전 직원에 적용하기로 노사가 합의해 대표소송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 소장을 서울서부지법에 제출했던 것이 2015년 4월이니 벌써 6년이 다 됐다. 서울서부지법에서 1심 판결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해서 다시 다투었는데, 서울고법은 재직자 조건의 세아베스틸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사측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부에서 진행하다가 전원합의체 재판부로 회부해 이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세아베스틸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해당성을 판단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서 사측은 원심 서울고법 판결을 파기하게 될 거라 자신만만하고 있으니, 일부 조합원은 걱정되는 것이다.

재직 중 고정적으로 지급하던 임금을 ‘지급일 전 퇴직한 경우에는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정했다고 고정성이 결여된 것으로 보고,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법적으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를 허용하면, 사용자로 하여금 재직자 조건을 부가해 법정수당 등 임금 지급을 면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게 된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2013년 12월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된 뒤 이 나라 사업장들에서 수도 없이 벌어졌다. 재직자조건만 부가하면 되는 것이었으니, 사용자에겐 그 방법은 너무도 쉬웠다. 대다수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손쉽게 할 수 있었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이라도 임금 인상이나 성과급 지급과 연동해 압박하면 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이 나라에서 통상임금에 관한 노동자 권리는 무너져 버렸다. 세아베스틸 사건은 이렇게 무너진 노동자 권리를 다시 세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세아베스틸에서 재직자 조건의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선고하게 된다면 세아베스틸과 유사한 사업장의 정기상여금의 경우는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3. 세아베스틸에서는 사측이 통상임금 문제의 해결에 소극적이지만, 이와 달리 적극적인 경우도 있다. 내가 통상임금 소송건을 대리했던 기아차, 현대제철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런데 이 사업장들은 모두 정기상여금에 관해 법원에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받았다. 기아차는 서울고법에서, 현대제철은 인천지법에서 이미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노동자 청구를 인정했다. 이렇게 법원 판결로 인정받게 될 경우에는 사용자들은 임금인상이나 성과급 지급, 혹은 임금체계 개편 등과 연동해 노동자측을 압박하고 나온다. 이 과정에서 노사합의를 통해 정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통상임금 소송은 노동자가 이미 제공한 근로에 대한 임금권리를 찾기 위한 것이다.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함에도 사용자가 이를 제외한 통상임금 기준으로 연장, 야간, 휴일 근로수당 등 법정수당을 지급해 노동자의 임금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그 침해된 권리를 구제받기 위한 것이 통상임금 소송이다. 이처럼 내가 대리하는 통상임금 사건들은 어디까지나 사용자가 침해한 노동자의 임금권리를 법원에서 법적으로 확인받고 되찾기 위한 것이다.

이 나라 사용자들이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위한 내세우는, 임금인상이나 성과급 지급, 혹은 임금체계 개편 등은 장래의 것이고, 아직 노동자의 임금권리를 확보된 것이 아니다. 이는 통상임금 문제가 없었어도, 그와 별개로 임단협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할 것들이다.

사실 원칙적으로 보자면 침해된 노동자 권리는 법적으로 구제받으면 되는 것이지, 이를 노사협상의 대상으로 삼을 것은 아니다. 양자는 엄연히 권리의 구제와 협상의 대상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에서는 오늘도 그렇지가 않다. 노동자 권리를 양보의 대상으로 삼는데 사용자들은 너무도 태연하다. 아니 이 나라에선 사용자들은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것인 양 당당하다. 그러나 결코 당연할 수 없다. 아무리 변명해도 그것은 노동자권리를 짓밟는 짓이고, 노동자 권리를 빼앗는 짓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태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임금에 관한 노동자 권리를 침해하는 사용자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하도록 국가권력에 권한을 부여하고 있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이런 일이 태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대로 사용자에 국가권력을 행사했더라면 이 나라에서 사용자들이 임금인상이나 성과급 지급, 혹은 임금체계 개편 등을 내세워 자신이 침해한 노동자 임금권리를 삭감하도록 노동자측을 압박하는 일이 당연하게 행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는 사용자는 쉽다. 노동자 권리를 침해하기가, 그 침해를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 사용자에겐 너무도 쉽다. 다른 무언가를 주지 않겠다고 압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4. 이렇게 쓰고 보니, 오늘 노조에게 통상임금 문제 해결이 어려운 것은 사용자의 압박에 대응해 명확히 구분해 낼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노동자, 노조에게는 아직은 그럴 힘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사용자가 침해한 노동자 권리에 관해서는 사용자로 하여금 노동자에 권리 포기를 압박할 것이 아니라, 사용자로서 의무를 즉각 이행하도록 하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새로운 노동자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권리를 양보하고 있는 것이 이 나라에서의 엄연한 노동현실이다.

세아베스틸에서도 노조는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지만, 그 요구란 이렇게 침해된 노동자 권리 양보까지도 염두해 두고 있다고 보인다. 혹시라도 대법원에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오게 되면, 노사합의를 통한 해결조차도 어렵게 될 수 있으니 양보하더라도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일부 조합원들이 요청하고 노조는 요구하고 있다고 짐작된다.

통상임금 문제를 이 나라에서 노동시간과 임금에 관한 노동자 권리에서 중요한 문제라며 2010년대 초 기아차와 현대차, 그리고 현대제철 등에서 집단적으로, 대표자로 소송을 제기할 당시에는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무언가 잘못을 고백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잔업·특근 수당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임금제도를 통해 장시간의 초과근로가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는 노동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제, 노동제가 기능하지 못하고 있으니, 통상임금 문제로 돌파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덩치 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게 되면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이렇게 절감하고 있다. 권리의 대상과 협상의 대상이 뒤섞인 현실에서 노동자 권리만 떠들어대는 내 목소리는 그저 법정이라는 허공을 떠돌고 있는 듯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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