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

지난 1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안전과 생명이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라는 점이 확인됐다. 법안 명칭을 비롯해 제정법에 담겨 있는 내용의 아쉬움과 앞으로의 과제는 차치하더라도, 법이 논의되고 제정에 이르기까지 10만명의 입법청원이 이뤄졌다. 국민입법청원안의 조항 하나하나에 담겼던, 그동안의 수많은 참사에서 확인된 우리 사회의 과제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논의되고 있던 지난해 11월12일, 국회에서는 ‘생명안전기본법’이 발의되었다. 대형참사와 안전사고의 반복 속에서, 안전사회로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제도적 토대로서 ‘생명안전기본법’에 대한 논의는 오랜 시간 시민사회에서 계속돼 왔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시 대표는 교섭단체 연설에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소관 상임위에서 빨리 처리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마련한 기본법안을 국회의원 29명이 공동으로 발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생명안전기본법. 말 그대로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본권으로서 안전하게 살 권리(안전권)를 향유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켜야 할 원칙과 핵심 제도를 다루는 ‘기본법’이다. 헌법에는 국민의 ‘안전권’이 기본권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법에서 ‘안전권’이 국민의 기본적 권리임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국가와 지자체에서 이를 보호하고 보장하기 위한 방향으로 정책을 고민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사고의 예방과 대응·복구 과정에서 피해자와 시민의 참여를 보장한다. 그리고 신속하게 구조를 받을 권리, 사고와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등 당사자인 피해자가 참사 발생 시부터 그 원인을 밝히고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어떤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지를 법률에 명시하고자 한다. 재난과 참사 피해자에 대한 모욕행위에 관한 처벌규정도 마련했다. 안전한 삶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차별이 없도록 하는 것 또한 법이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이다. 안전약자에 대한 지원, 피해자에 대한 지원의 원칙을 정하고 참사 이후 이를 기억하고 추모하면서 개인이 아닌 공동체가 참사를 어떻게 함께 극복해갈 것인지 정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와 지자체가 안전기준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계획, 사업을 마련할 때 안전영향평가를 실시할 것을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현재 ‘안전’과 관련한 기본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 재해구호법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 기본법으로 작용하는 법률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행법은 정부와 지자체가 재난 상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의 관점에서, 국가나 지자체가 재난이 발생하면 어떤 체계를 갖추고 무엇을 추진해야 할 것인지를 다루고 있는 것에 그친다. 재난·참사가 발생하면 관련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특정 사안에 대한 조사기구가 만들어질 수 있다. 피해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고 피해를 회복하는 데 전념하지 못하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해야 하는 현실은 되풀이되고 있다. 자연재해를 중심으로 ‘이재민’을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한 재해구호법은 자연재해 이외의 참사에 있어서 피해자를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는 담지 못하고 있다.

생명안전기본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곧바로 많은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를 ‘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근본적인 관점,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정책 운용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재난과 참사가 발생한 후 이를 수습하는 것에 국한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국민이 주체가 아닌 객체가 돼야 하는 현실은 달라질 수 없을 것이다. 재난과 참사가 발생하면 현행 제도와 체계의 문제점이 지적되는 현실이 되풀이되지 않고, 생명과 안전이 우리의 삶과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가치임을 다시금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도, 발의돼 있는 생명안전기본법이 제정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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