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인 제공 및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이재 기자, 강예슬 기자

여성노동자가 주로 일하는 분야는 삶을 사는 데 필수적인 노동인 경우가 많다. 청소노동이나 돌봄노동이 대표적이다. 우리 삶에서 필수적이지만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서 남녀 간 임금과 고용의 격차도 줄지 않고 있다. 일상이 멈춘 코로나19로 이러한 ‘필수노동’의 가치가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 1년이 지난 지금, ‘필수노동자’의 노동가치를 우리 사회는 충분히 인정하고 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113주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노동자의 ‘코로나19 생존기’ 두 번째 이야기를 전한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요양보호사 김지연씨 이야기
“코로나19 감염 이전 삶으로 회복하고 싶다”

“제가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 퇴소를 앞두고 의사선생님께 사정을 했어요. 며칠만 더 있으면 안 되냐고요. 왜냐면 저희 집에서 아흔이 넘으신 시아버지를 모시고 있었거든요.”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김지연(58·가명)씨는 지난 1월19일 코로나19에 확진돼 연세대 생활치료센터에서 격리된 채 치료를 받았던 기억을 꺼냈다. 그는 생활치료센터 입소 기간 연장 불가를 통보받고,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몸 상태가 오히려 나빠질 수도 있다는 말에 포기했다. 결국 시아버지가 다른 친척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야 지연씨는 집으로 돌아왔다.

완치돼 코로나19에서 벗어났지만, 지연씨 삶은 아직 감염 이전처럼 온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1월 말 회사에 복귀했지만 요양보호사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연씨는 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도입된 2008년부터 요양보호사가 됐다. 당시 몸이 편찮았던 부모님 병간호를 하다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것이 계기가 됐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들과 친정 부모님을 함께 돌보면서 다른 노인들도 돌봤다. 지연씨에게 바지런한 삶은 ‘여자의 숙명’ 같은 것이다.

“남자하고 여자하고 참 달라요. 여자는 두세 개는 기본으로 하고 또 하는데 남자는 한 가지 밖에 못하더라고요. 여자들은 눈으로 TV 보면서 입으로는 옆 사람하고 이야기도 하고 손으로는 나물을 다듬면서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하잖아요.”

‘슈퍼우먼’ 지연씨에게도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긴급돌봄 업무는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송파센터로 발령을 받은 지연씨는 책임감 때문에 긴급돌봄 서비스에 자원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 공공돌봄기관으로서 갖는 책무와 사명감은 지연씨의 책임감이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진을 받아 서울 명동 스카이파크호텔 2호점에 입소한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일이 그의 업무였다. 동거하는 가족 등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이들에게 24시간 3교대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다.

“방호복을 입고 하루 9시간씩 일해 보니 의료진이 정말 존경스럽더라고요. 방호복 입으면 비닐하우스에 하루 종일 있는 느낌, 딱 그 느낌이에요.”

그런데 코로나19 진단 받기 이틀 전 지현씨는 옷을 몇 겹이나 껴입어도 한기를 느꼈다. 혹시나 했지만 열은 없어서 감기약을 먹으면서 버텼다. 아침과 저녁마다 체온을 재서 업무용 단체채팅방에 보고하는데 1월5일 입소해서 1월19일 2주 동안 체온은 줄곧 제자리였다. 코로나19 진단검사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후,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촬영하는데 의사가 ‘응급실로 실려 가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라고 했다. 바이러스 수치가 무척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산재 보상을 받은 노동자(2월14일 기준) 중에 가장 많은 직종이 요양보호사(29명)다. 정치인들은 이들을 ‘필수노동자’라고 부르면서 칭송한다. 그렇지만 코로나19 펜데믹 1년이 넘도록 사회적 대우는 달라진 게 없다.

지연씨는 “그래도 당당하게 일하다 보면 내 자리가 빛날 것”이라며 “사회와 주변 눈치 보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일하라”고 여성노동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빌딩 청소노동자 박소영씨 이야기
“코로나19보다 무서운 해고의 고통”

삼성과 LG 직원들이 번쩍번쩍하게 광이 나는 대리석 바닥을 밟으며 출근하고, 깨끗하게 소독한 변기에서 용변을 보는 것은 박소영(66)씨 덕분이다. 소영씨는 서울 종로구 삼성전자 본사 빌딩과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청소를 했다.

“청소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노동인데 청소노동자를 아주 천한 직업으로 여기죠. 청소하다가 엘리베이터를 타잖아요. 사람들이 뒷걸음질 쳐요. 더럽다고. 그러면서 우리더러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니래요. 자기네들이 더럽게 쓰고 우리가 깨끗하게 치우는데 왜 우리를 보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거죠?”

공공운수노조 LG트윈타워분회장인 소영씨는 1년 전 노조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인권’이라는 말을 배웠다. 돌이켜 보면 소영씨는 인간답게 대접받은 기억이 없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9남매 막내로 태어나 천대받고 사랑이라는 단어조차 기억할 수 없는 삶을 살아서 그런지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먹고사는 것만 생각했지, 여성이자 인간으로서 대우받고 산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죠.”

소영씨는 몇 년 전까지 새벽 4시에 일어나 ‘스리 잡’을 뛰었다. 서울역 앞 연세빌딩에서 우유배달을 하고 주변 식당에서 5시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빌딩 청소를 했다. 10년 동안 하루 3~4시간 자면서 그렇게 일해 수억 원대 빚을 갚았다. 그는 “내 또래는 다 그렇게 살았다”며 “한국 사회에서 여성 청소노동자로 산다는 건 남성 관리자 밥상도 차려 주고, 숟가락도 놔주고 해야 하는 삶”이라고 힘겹게 말했다.

그런데 노조를 만드니 삶이 달라졌다. ‘갑질’이라는 말도 노조를 만들고 알았다.

“살면서 늘 눈치만 봤어요. 관리자들이 청소노동자 걸음걸이까지 흉내 내며 ‘일도 못하는 것들’이라고 욕할 때도, ‘늙은 년들이 무슨 노조를 만드냐’며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면전에서 소리칠 때도 그랬죠.”

노조를 만들고 인간다운 삶을 외친 청소노동자에 게 돌아온 건 해고였다. 소영씨는 “코로나19보다 무서운 게 해고의 고통”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청소 일이 갑절로 늘었죠. 쓸고 닦고 소독까지 해야 하니까요. 야간조는 문고리란 문고리는 다 닦고 다녔어요. 마스크 같은 쓰레기를 줍는 것도 다 우리 몫이고…. 그런데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도 못 듣고 해고를 당하니 너무 고통스러워요.”

청소 일을 할 때는 비록 ‘투명인간’이었을지라도 일이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는데 해고는 그런 자부심을 빼앗아 갔다. 소영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며 “날마다 비참함을 느낀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주저앉을 소영씨가 아니다. 그는 “밑바닥에서 더 밑바닥으로 내려와 보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며 “이것이 내 자산”이라고 말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콜센터 상담원 채정수씨 이야기
“둘러보면 다 여성인데, 왜 모성보호 제도는 없을까요?”

콜센터 상담원 채정수(40)씨는 코로나19로 업무가 폭주했다. 정수씨는 서울신용보증재단 고객센터에서 일한다. 재단은 작은 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신용보증서를 발급해 저금리로 은행에 대출을 받게 해 주는 서울시 출자·출연기관이다. 유용자금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대출자금을 상담해 주고 창업하는 이들에게 컨설팅 절차를 안내한다.

코로나19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정수씨의 상담도 늘었다. 마스크를 쓰고 상담전화를 받다 보면 숨이 차고 어지러웠다. 또박또박 말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했던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할 때가 많다. 정수씨는 일하면서 보람도 느꼈지만 종종 힘이 빠지기도 한다.

“우리의 노동이 저평가 받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새로운 보증사업을 실시하면 정책 시행문을 받아 꼼꼼하게 학습하거든요. 코로나19 전에는 매달 한 번씩 보증상품에 대한 시험도 봤다니까요. 그런데 종종 전화기 너머 반말이 들리거나 ‘상담원이 뭘 아냐, 재단 직원을 바꿔라’고 할 때 기운이 빠지죠.”

고객센터 관리자부터 상담원까지 30명 모두 여성이지만 임신과 출산, 육아를 위한 모성보호 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2017년 정수씨와 함께 회사에 들어온 동기는 임신 중 일하다 하혈을 했고 결국 1년도 안 돼 퇴사했다. 임신기간 단축근무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이나 출산휴가를 설명해 주는 관리자는 없었다. 생리휴가를 쓸 수 있냐는 질문에도 관리자는 그저 ‘알아보겠다’고만 답했다.

회사는 월요일에는 상담이 많다는 이유로 월요일 연차휴가 사용을 전면제한했다. 지난해 6월 새로운 센터장이 오면서 20분이던 오전 휴식시간을 10분으로 단축했다. 안전보건공단이 산업안전보건법 5조에 따라 만든 ‘콜센터 근로자의 직무스트레스 관리 지침’에는 고객센터 노동자에게 1시간마다 5분 또는 2시간마다 15분의 휴식을 권장한다. 정수씨와 동료들은 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워야 했다. 지난해 10월 노조를 결성하고 사측과 협상해 오전 20분, 오후 20분 휴식시간을 확보했다. 월요일에는 1명씩이지만 연차를 쓸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노조를 만들고 한 달 뒤부터 갑작스럽게 고객센터 업무가 재택근무로 전환됐다. 정수씨의 동료들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집안일도 도맡으면서 1인 3역을 수행한다. 집에서도 회사에서처럼 눈코 뜰 새가 없다.

여성노동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정수씨는 “기다리면 바뀌는 것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출산과 육아 고민 없이 회사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돌봄휴가·육아수당이 생겼으면 해요. 더 이상 임신이 퇴사의 이유가 되지 않도록 여성노동자들의 가정과 일 모두가 지켜지기를 소망합니다.”

공공도서관 사서노동자 이소리씨 이야기
“여성 관리자가 많아진다면 분명, 세상은 나아질 거예요”

대학에서 4년간 경제학을 전공한 이소리(28·가명)씨가 2년 더 공부해 문헌정보학 학사를 딴 것은 사서가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국가자격증을 요하는 전문직이다 보니 경력단절여성이 되더라도 다른 직종에 비해 복귀가 용이하고 나이를 먹어도 계속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사서는 불안정 일자리다. 주변 대부분 사서가 비정규직이었다. 함께 일하는 오랜 경력을 가진 30대 중반의 사서도 정규직은 아니었다. ‘9급 사서직 공무원에 준하는’ 기본급을 받으면서도 각종 수당은 받지 못하는 ‘중규직’이었다.

지방자치단체 간판이 달린 공공도서관인데도 사회복지재단이 수탁해 운영했다. 사서들은 재단 행사에 동원돼 김치를 담그고 밥도 하고 설거지도 했다. 오전 6시에 열리는 재단 회의에 불려가 실적을 발표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회의시간이 꼭두새벽이잖아요. 회의장소에 미리 도착해 발표 준비를 하려고 전날 근처 모텔을 잡고 잘 때도 있었어요.” 몇 년 전 한 사서가 퇴사하면서 이런 사실을 고발한 뒤 상당 부분 개선됐지만 여전히 재단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코로나19로 모든 공공도서관이 휴관에 들어갔다. 도서관은 문을 닫았지만 사서 업무는 오히려 늘었다. 도서 방역 업무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내부 이용자를 받지 않는 대신 외부 도서대출 서비스는 확대됐다. 하루 1천권이 넘는 책들을 감당하는 날이 늘었다.

“사서 두 명이 하루 1천300권의 책들을 일일이 옮기고 소독해요. 12권씩 자동 방역해 주는 기계가 있지만 대출권수가 폭증해서 감당이 안 돼요.”

코로나19로 불편해진 도서관 이용자들의 불만은 사서에게 쏟아졌다. “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부 공문에 따라 문을 열고 닫는데 가끔 ‘니들(사서) 편하려고 도서관 문 닫는 거냐’고 따지는 사람들도 있고, 도서관 앞에 차를 세우고 차까지 책을 배달해 달라는 사람도 있어요.”

소리씨는 “지금은 그저 버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소리씨의 희망은 “여성 관리자가 지금보다 늘어나는 것”이다.

“사서는 도서관 위탁운영 기관인 재단과 도서관을 이용하는 민원인 양쪽에서 휘둘려요. 여성 비정규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서들은 힘이 없죠. 전문직이지만 그만한 대우도 받지 못하고 하루 천 권의 책을 들고 날라야 할 정도로 육체노동 비중이 크지만 감정노동도 심하죠. 열정적으로 일하는 분들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사서 출신 여성관리자가 지금보다 많아져서 여성의 목소리를 낸다면 분명히 도서관은 지금보다 나아질 거예요. 세상도 달라지겠죠.”

공동취재 : 김미영·이재·강예슬·정소희·임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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