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지난달 26일 국제노동기구(ILO)의 87호 협약(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협약), 98호 협약(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 29호 협약(강제노동 협약) 비준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가 협약 비준서를 ILO에 기탁한 날부터 1년 후부터 이들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게 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형법·국가공무원법 등을 통해 노동 3권을 억압해 왔던 국내 법령들과 ILO 협약 상충 문제가 다시 쟁점이 될 것이다.

1991년 ILO 가입 이후 약 30년 동안 우리의 노조법 등은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서 여러 측면에서의 개정을 권고받아 왔다. 앞으로 ILO 협약과 국내 법령의 상충 문제가 제기될 때 그 해결의 방향성이 이미 제시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우선,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이 ‘근로자’가 아니라며 노조 설립신고서를 반려하거나 노조의 규약 변경을 명령하는 정부의 행위는 ILO 협약을 직접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는 ILO 협약 비준을 위한 법 개정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막상 설립신고와 관련된 규정들은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해 9월 대법원이 법외노조 통보에 활용되는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이 위헌적 규정으로 무효라고 판결했음에도, 이 시행령조차 고치지 않고 있다.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노동 3권이 보장돼야 할 노동자인지 판단할 때 고용관계의 존재 여부는 판단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특수고용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노동 3권을 보장받아야 하며, 단체교섭이 실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다양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권고했다. 그동안 정부는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 낸 답변서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노조가 아닌 이익단체를 만들 것을 권고했으므로 결사의 자유 원칙 위반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ILO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단체교섭권을 포함해 노동기본권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노조 결성을 방해하는 어떠한 조치도 삼갈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특수고용 노조에 설립신고증 교부를 지연시키거나, 특수고용 조합원을 노조에서 내보내라고 시정명령을 하거나,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은 노조가 아닌 단체를 만들도록 하는 플랫폼종사자 법안 추진 등은 모두 ILO 협약 위반에 해당한다.

또한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의 실제 사용자인 원청을 상대로 한 단체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결사의 자유 위원회의 지속된 권고 사항이다. 2000년대 이후 지역건설노조와 원청의 단체교섭, 사내하청노조에 대한 원청의 부당노동행위,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대한 탄압 등이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 제소됐고, ILO는 이 사건들을 “ILO 이사회의 특별한 주목을 요청하는 심각하고 위급한 진정건들”로서 다루어 왔다.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원청은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고용관계가 없다면서 교섭을 거부하고, 하청업체 역시 자신이 노동자의 고용 기간과 노동조건을 통제하지 않는다면서 교섭을 거부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노동자가 빠져 있으며,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진정 내용에 관해서 정부의 답변이 없는 점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결론적으로 ILO는 적절한 조치를 통해 노동 3권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하도급이 사용되지 않도록 하고,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생활·노동조건의 개선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실제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원청과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것이 한국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결사의 자유 위원회의 권고가 나온 지 10년이 지나도록 원청을 상대로 노동 3권을 실현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ILO 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이라고 2년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국회에서 논의할 때에도 이 문제는 의제에 올리지조차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코레일 자회사 노동자들이, 하이트진로 하청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수십 년간 일한 일터에서 쫓겨나 고용과 노동조건을 실제로 결정하는 원청을 상대로 힘겹게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그러나 원청의 이런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현 상황을 지지하고 있다.

이번 비준을 계기로 ILO 협약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정부와 법원의 법 적용·해석을 촉구한다. 그리고 국회는 ILO 협약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노조법의 ‘근로자’ ‘사용자’ 정의를 개정해야 한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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