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대상판결 : 부산고등법원(창원) 2021. 1. 21. 선고 2020나11097 판결

Ⅰ. 사건 개요

한국항공우주산업 주식회사는 1999. 12. 14. 삼성항공산업 주식회사, 대우중공업 주식회사, 현대우주항공 주식회사가 통합하여 설립된 방위산업체이며, 원고들은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통상직(사무직) 근로자로 재직하고 있거나 재직하다가 퇴직한 사람들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2018. 6. 30.까지 원고들의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하여 교통비 일부를 지급한 것을 제외하면 근로기준법에 따른 시간외근로수당을 별도로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원고들은 2015년 4월께부터 2018년 7월께까지 사이에 실시한 연장근로에 대한 시간외근로수당을 청구했으나, 피고는 시간외근로수당의 지급에 갈음해 기본급의 20%에 해당하는 자기계발비를 지급하기로 하는 ‘포괄임금제 합의’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거부했다.

Ⅱ. 쟁점

이 사건의 청구원인은 간단하다. 시간외수당을 지급받은 사실이 없으므로 이를 지급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피고는 ‘유효한 포괄임금제 합의’가 존재하므로 추가로 지급할 법정수당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포괄임금제 항변을 제기했다. 구체적으로는 1) 포괄임금 합의 유무 2) 포괄임금 합의의 유효성(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렵고, 근로자에게 불이익하지 않을 것) 3) (포괄임금 합의가 무효라 하더라도) 시간외수당 명목으로 지급됐다는 ‘자기계발비’ 공제 여부 4) 시간외근로시간 증명이 이 사건의 주요 쟁점<1>이었다.

Ⅲ. 법원의 판단<2>

1심은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인용했으며, 피고가 항소했으나 항소심은 이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법원의 판단은 위 1)~4) 쟁점 중 1) 포괄임금 합의의 유무와 관련된 부분에 집중돼 있다. 1) 쟁점에서 포괄임금 합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 경우 2) 포괄임금 합의의 유효성이나 3) 합의가 무효라 하더라도 고정 OT(이 사건에서는 ‘자기계발비’)로 지급된 부분 공제에 대한 판단까지 나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먼저 밝히면 법원은 이 사건에서 포괄임금 합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포괄임금 합의의 존재를 매우 엄격하게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포괄임금제에 관한 약정이 성립했는지 여부는 근로시간, 근로형태와 업무의 성질, 임금 산정의 단위,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의 내용, 동종 사업장의 실태 등 여러 사정을 전체적·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하며, 비록 개별 사안에서 근로형태나 업무의 성격상 연장·야간근로가 당연히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기본급과는 별도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을 세부항목으로 명백히 나누어 지급하도록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급여규정 등에 정하고 있는 경우는 포괄임금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고, 단체협약 등에 일정 근로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시간에 대한 합의가 있다거나 기본급에 수당을 포함한 금액을 기준으로 임금인상률을 정했다는 사정 등을 들어 바로 위와 같은 포괄임금제에 관한 합의가 있다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8다57852 판결 등)”는 기존 법리를 설시하고, “① 피고의 단체협약·취업규칙·급여규정 등에는 시간외근로수당에 관한 포괄임금제 합의가 존재한다고 볼 만한 명시적인 규정은 없는 점 ② 피고의 단체협약 25조는 근로기준법 56조에 준해 통상임금에 일정 가산율을 적용해 산정한 금액을 시간외근로수당으로 정하고 있는 점 ③ 원고들의 근로형태나 업무의 형태에 비추어 볼 때 실제 근로시간을 산정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보이지 않는 점” 등을 이유로 포괄임금 합의의 존재를 부정했다. 특히 항소심에서는 피고가 추가로 복지후생 합의서의 효력이 문제됐다. 동 합의서에는 “공통직 연장근로시 공통직 기본급에 포함돼 지급하던 소정근로시간의 20%에 해당하는 연장·휴일·야간근로수당은 기본급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서 언뜻 포괄임금제 합의로 읽힐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위와 같은 문언에도 불구하고 포괄임금 합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Ⅳ. 검토

근로기준법은 기본임금과 소정근로시간을 근로계약의 필수적 기재사항으로 정하고 있다(근로기준법 제17조). 따라서 기본임금·소정근로시간의 경계를 흐리는 포괄임금제는 본질적으로 근로기준법에 반하는 임금지급 제도다. 그럼에도 포괄임금제는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오·남용)됐는데, 그 대부분은 근로기준법의 원칙과 판례가 허용하는 범위를 넘는 것이었다.

본 판결에서 피고가 고정 OT라고 주장했던 자기계발비는 소정근로시간의 약 20%에 해당한다. 포괄임금 합의 존재가 인정되는 경우, 무효인 포괄임금 합의라 하더라도 시간외수당 명목으로 기지급된 수당(자기계발비)을 공제하면 원고들이 지급받을 수 있는 시간외수당 차액은 거의 남지 않았을 것이다. 항소심에서는 피고 주장에 일견 부합하는 것으로 보이는 노사합의서까지 제출돼 포괄임금 합의의 존재 및 공제 주장이 받아들여질 여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포괄임금제 합의는 개별 노동자들의 장래 임금(시간외수당) 포기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기에 그 유무는 매우 엄격하게 판단돼야 한다. 따라서 일응 포괄임금 합의로 보이는 문구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와 상반되는 단체협약의 다른 규정들의 존재, 개별 노동자들의 합의 여부 등을 고려해 포괄임금 합의의 성립을 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참고로 고용노동부의 2017년 10월 포괄임금제 사업장 지도지침은 단체협약에 포괄임금제 적용에 대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도 개별 근로자의 명시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지 3년6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노동부가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을 내겠다고 발표한 것도 2년 전이다. 국회에서도 포괄임금제 폐지 법안이 다수 발의됐으며, 지난해 11월에는 포괄임금제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형사처벌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지금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다.

본 판결은 정부나 입법부에 의해 포괄임금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포괄임금제 합의 유무 자체를 매우 엄격한 기준하에 심사함으로써 잠정적이나마 문제를 해결할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각주>
1) 피고가 제기한 신의칙항변 등 기타 쟁점은 지면 관계상 다루지 않는다.
2) 대상판결은 1심 판결 이유 대부분을 인용하고, 포괄임금 합의와 관련해 항소심에 이르러 피고가 주장하고 제출한 증거에 대한 판단과 시간외근로시간 증명과 관련한 판단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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