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 계획이 밝혀지면서 금융가는 저마다 예상 시가총액을 떠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55조원까지 예측하고 있으니 수 년간 누적된 적자 구조를 상쇄하고도 남는 수준이다. 게다가 쿠팡측은 2년 이상 일한 모든 노동자들에게 약 200만원 가량의 주식을 분배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1년에 걸쳐 절반씩 나눠 준다는 이야기니 계약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 돈을 모두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 높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대단한 성공과 정의가 눈앞에 닥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하지만 정작 쿠팡 사업구조의 밑거름 역할을 하는 물류창고로 눈을 돌리면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파티인지 의문이 남는다. 지난해 10월 쿠팡 물류창고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기 무섭게 쓰러져 목숨을 잃은 고 장덕준 씨는 쿠팡에 입사한 이후 1년6개월 동안 줄곧 야간 근무만 했다. 그는 무기계약직으로 올려준다는 희망고문에 사로잡혀 ‘죽음을 부르는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처음에는 장씨의 죽음과 업무 간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하던 쿠팡 사측은 근로복지공단 조사 결과 장씨의 사망원인이 ‘급성심근경색’과 하중이 높은 물건을 오랜 시간 옮기다가 발생한 ‘근육 파열’이라고 밝혀지자 이내 사과했다. 그의 나이 28살이었다.

지난 8개월 동안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만 5명에 이른다. 이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쿠팡의 장시간 야간 노동, ‘속도’로 평가받는 평가지표로 짜인 고통스러운 노동조건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 4년간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신청한 산업재해는 2017년 50건, 2018년 150건, 2019년 191건, 지난해 239건으로 매년 급증해 왔다. 더구나 노동자들이 ‘산재 신청’이 아닌 ‘공상 처리’를 요구받는 만연한 조건을 고려했을 때, 실제 노동자들이 직면하는 재해는 이보다 훨씬 빈번할 것으로 보인다. 죽은 장덕준 씨는 동료들과의 카톡방에서 쿠팡 물류센터의 이런 지옥도를 “세기말 7층”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쿠팡의 상황은 지난 21일 MBC <스트레이트> 심층보도를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됐다. 현장에서 직접 일하며 이런 상황을 몸소 겪은 기자는 쿠팡 물류노동자들이 말해 온 현실을 직접 마주하며 그들의 증언이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쿠팡 물류창고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시간당 물량처리 개수(UPH) 지표로 집약된다. 3개월짜리 일용직부터 모든 노동자의 작업은 UPH로 측정되고, 지표상 수치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즉각 관리자에게 불려 나가 꾸지람을 듣는다. 노동자들은 인간적인 모멸감과 강도 높은 업무 압박을 느끼지만 이에 항의할 여지는 거의 없다. 산재신청만 해도 계약이 연장되지 않아 파리 목숨인 노동자들은 무권리 상태에서 노예처럼 일할 수밖에 없다. 이런 피라미드형 노예노동이 가능한 이유는 쿠팡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95%가 계약직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 주변에서 쿠팡 가입을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 역시 쿠팡의 우수 고객 중 하나였지만, 최근 들어 쿠팡에서 무언가 구매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곤 했다. 쿠팡의 노동조건이 눈에 띄게 개선되지 않는 한 앞으로 쿠팡에서 물건을 살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실천은 아무래도 자족적이라는 생각을 벗어날 수 없다. 과연 우리가 한국 사회를 망치고 있는 블랙기업으로 전락한 쿠팡을 이용하지 않고, ‘좋은 소비자’로 남아 있는 것만이 최선일까. 그것이 나의 노동과 항상 무관하기만 할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여러 궁리를 해 봤다. 가령 물건 구매시 배달노동자에게 남길 수 있는 메시지란에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가지시길 기원합니다”라고 남긴다. 고객이 남기는 메시지가 “빠른 배송 부탁합니다”가 아니라, “당신의 노동을 응원하며 권리를 쟁취하길 바란다”가 될 때 조금이라도 용기 낼 여지가 늘지 않을까 싶어서다. 최근 들어 배달노동자들의 노조가입과 단체행동은 조금씩 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메시지는 물류창고까지 닿지 않고, 그 힘은 너무 미미하다. 쿠팡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되찾고 인권을 회복하려면 ‘로켓배송’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강도 높은 노동 감시와 고용 구조는 노조가입을 어렵게 하는 장벽이다. 총연맹이나 산별 차원의 전폭적인 투자가 필요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쿠팡이 그토록 따라하고 싶어하는 미국 아마존에서도 획기적인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다음달 30일 미국 앨라배마주 베세머에 위치한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6천여명의 노동자들은 노조 가입 투표를 앞두고 있다. 델라웨어주 물류창고 노동자들이 노조 결성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이래 7년 만이다. 회사는 노조 결성을 막기 위해 퇴사하는 노동자들에게 2천달러를 주겠다는 등 적극적으로 회유하고 있지만, 노조 결성 성공을 예측하는 분석이 많다. 만약 아마존 물류창고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게 되면 이는 빅테크들이 점령한 최근 미국 사회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계기가 된다.

미국의 유통산별노조인 도소매·백화점 노동조합(the Retail, Wholesale and Department Store Union)은 아마존 물류창고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운동과 적극 조응했다. 물류창고 노동자 대부분이 가난한 흑인 및 소수 인종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노동자들의 분노를 결집하는 주요한 통로가 됐다. BLM의 한 줄기가 아마존이라는 시가총액 세계 4위의 빅테크 산하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 목전까지 다가온 것이다. 아마존 물류창고 노동자들의 단결이 죽고 다치고 착취당해 온 쿠팡 노동자들에게도 한 줄기 희망이 될 것이라고 용기를 낼 작은 근거가 될 수 있음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한국의 노동조합들이 가장 밑바닥에서 피눈물 흘리는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물류창고로 달려갈 때다.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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