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갑질119

경기도 파주의 한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했던 배아무개(28)씨는 100여명의 캐디를 지휘하는 캡틴인 성아무개씨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성씨는 모든 캐디들이 들을 수 있는 무전으로 배씨에게 “뛰어라, 뚱뚱하다고 못 뛰는 거 아니잖아” “너 때문에 뒷사람들 (골프 게임) 다 망쳤다” 등의 말을 수시로 했다. 해명하려 하면 “어디서 말대답이냐”는 질책이 이어졌다. 배씨는 입사 1년2개월 만인 지난해 9월14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회사는 배씨의 죽음에 조의도 표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회사의 책임을 묻고 사과를 받기 위해 골프장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회사 관계자는 개인 간 갈등으로 일어난 일이라고만 답했다.

유가족은 그해 10월 중부고용노동지방청 고양지청에 직장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올해 2월9일 고양지청은 “직장내 괴롭힘이 맞지만 관련 규정 적용은 곤란하다”고 답했다. 골프장 캐디는 특수고용 노동자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고양지청은 사용자에게 사건 조사와 조치, 실태조사 등을 권고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직장갑질119가 21일 발표한 특수관계인에게 직장내 괴롭힘을 당하는 노동자 사례 중 하나다.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직

현행법은 특수고용 노동자가 당한 직장내 괴롭힘을 보호하지 못한다. 직장내 괴롭힘 관련 근로기준법 규정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제3자인 원청이나 사용자의 가족, 고객 같은 특수관계인에 대한 규제도 없기 때문이다. 배씨와 같이 사실상 사용자인 특수관계인과 같은 공간에서 직원처럼 일하는 이들은 직장내 괴롭힘에 노출돼도 호소할 곳이 없다.

자동차 대리점 소속 특수고용직 영업사원이나 용역업체 소속으로 원청에서 일하는 이들이 직장내 괴롭힘에 노출되는 사례도 있다. 자동차 대리점에서 근무하는 특수고용직 영업사원 A씨는 대리점 소장에게 사무실 퇴근 같은 일정을 수시보고할 것을 요구받았다. “네가 그러니까 차를 못 파는 거야” 같은 말도 자주 들었다. 대리점 소장은 직원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심한 욕을 하고, 이를 버티지 못해 그만둔 이들의 취업을 방해하기도 했다.

용역업체 소속으로 한 제조업체에서 일한 노동자는 원래 맡기로 한 것 외에도 많은 업무지시를 받자 문제제기했다.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특수관계인에 의한 갑질은 적지 않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2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직장내 괴롭힘을 겪은 이들 중 9.3%는 ‘갑’의 지위에 있는 특수관계인에게 갑질을 겪었다.

“2월 임시국회서 근기법 개정해야”

현행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 적용 범위 확대와 처벌조항 신설, 노동부 신고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갑질119는 “새해에도 직장갑질이 멈추고 있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해 7월9일 같은 내용을 노동부에 권고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관련법이 계류돼 있다. 환노위원장인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해자가 사용자 또는 사용자 친인척일 경우 과태료 1천만원 △의무사항 불이행 과태료 500만원의 처벌조항을 뼈대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환노위 야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도 △제3자(도급인·고객·사업주 친족) 법 적용 △의무사항 불이행 과태료 1천만원 부과를 뼈대로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외에도 15건의 직장내 괴롭힘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환노위에 계류 중이다.

직장갑질119는 “더 이상 입법이 미뤄져서는 안 된다”며 “23일 환노위 고용노동 법안심사소위, 25일 전체회의를 거쳐 26일 본회의에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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