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귀화한 지 9년 됐고, 입사할 때 한국어 능력도 인정받고 보수교육도 받아 왔는데 언제까지 시험 성적을 계속 갱신해야 하는지….”

서울 성동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5년간 통번역사로 일해 온 A씨가 17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말 복직하고 싶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A씨는 이달 초 센터장 요구로 사직서를 썼다. 2017년 입사하며 제출한 한국어능력시험(TOPIK) 성적 유효기간이 2019년 8월에 만료했는데 갱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시험은 성적 유효기간을 성적발표일로부터 2년으로 제한한다.

입사 때 한국어 시험보고 등급도 올렸는데…
여성가족부 “시험 성적은 최소한의 자격 요건”

2013년 귀화한 A씨는 2017년 4월부터 이 센터 통번역사로 일했다. 통번역사는 결혼이민자로, 한국어능력시험이 4급 이상인 자를 채용한다. A씨는 입사 당시 한국어능력시험 성적 4급증명서를 제출했고, 같은해 8월 최고등급(6급) 바로 아래인 5급 시험에 합격했다.

문제는 이달초 불거졌다. 센터장이 지난 1일 성적 갱신 여부를 물었고, 바로 다음날 소속 팀장이 사직서 제출을 요구했다. A씨는 ‘시험 점수 만료로 인한 사직’이라고 적은 사직서를 냈고 이후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에 가입했다.

A씨 해고에 관한 논란이 불거지자 통번역사들은 성적 갱신 제도를 폐지하라며 정부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A씨는 “이미 한국에 귀화를 한 한국인이고 한국어나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 귀화 면접심사를 통과한 것”이라며 “한국인에게 한국어 능력을 2년마다 계속 평가받게 하는 것은 차별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건강가족·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10년 넘게 통번역사로 일한 B씨도 “2008년에 국적을 바꿔 한국어능력시험 최고등급을 3번이나 받았다”며 “선주민 직원과 달리 호봉제도 적용받지 못하는데 고급 수준에 이르고도 여러 번 시험을 반복하게 하는 것은 다소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B씨는 “나도 지난해 말 시험 성적이 만료됐는데 센터와 논의해 3개월의 유예기간을 얻었다”며 “다른 센터에도 지난해 코로나19로 시험을 못 봐 갱신하지 못했는데도 계속 일하는 사례가 많다고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복지지부 관계자는 “이미 귀화해 한국인이고 언어 능력이 퇴화할 수 없는 현직 통번역사에게 2년마다 시험 성적 갱신을 요구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이번 사례는 임면권을 가진 센터장이 재시험 기회를 주면 해결될 문제”라고 주장했다.

여성가족부 다문화가족과 관계자는 “한국어능력시험은 종사자들의 언어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 요건”이라며 “원래 매년마다 언어권별로 한국어 능력을 평가해 하위 평가자에 재계약을 보류하기도 했으나 종사자 의견을 받아들여 자발적으로 성적을 갱신하도록 제도를 바꾼 것”이라고 밝혔다.

책임 떠넘기는 기관·여가부

A씨가 사직서를 내기까지 절차상 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A씨는 “시험 성적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센터가 성적 갱신을 요구한 적이 없다”며 “갱신하지 못한 것은 불찰이지만 절차를 무시한 해고통보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지난해 예정돼 있던 6번의 한국어능력시험 중 2번의 시험이 코로나19 때문에 전국적으로 취소돼 시험 응시도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센터 운영 지침으로 쓰이는 ‘2021년 가족사업안내’에는 통번역사의 임용과 관련해 “통·번역 전담인력은 한국어능력시험 자격 유효기간 만료시 지속적으로 갱신해 자격을 유지해야 함”이라고 안내하지만 면직과 관련해 별도의 조항을 두고 있지는 않다. 센터측은 “여성가족부에 문의했을 때 면직사유가 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입장이다.

센터장은 직원 임면권을 갖는다. 지침은 “직원의 의사에 반해 해고·휴직·정직·전직·감봉 등 징벌을 할 경우 인사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하고, 당사자가 원할 경우 위원회에 참석해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밝힌다. A씨는 그만두길 원하지 않았는데도 인사위원회 참석 등 본인 의견을 피력할 창구가 주어지지 않은 셈이다.

A씨는 “1년 넘게 성적을 갱신하지 못한 것은 부주의했지만 지난해 과로로 임신과 유산을 겪으며 건강에 어려움이 있었고 시험이 취소되는 문제도 있었다”며 “센터에서 해고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 사직서를 강요한 것 같아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김은정 성동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업무일지 확인 결과 올해 초 담당자가 지속적으로 A씨에게 시험 응시를 확인했다”며 “면담할 때 A씨가 시험 성적을 유지하지 못한 것은 본인 책임이니 사직서를 받아들이겠다고 인정해 인사위원회를 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센터는 17일 지부에 “일정기간 유예를 두고 자격 갱신 사항에 대해 여성가족부가 공문을 통해 (고용을 유지해도 된다는 내용의) 답변을 주면 복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가 “정부는 임면권자가 아니라 개별 사안에 대해 판단하기가 어렵고 개입할 수 없다”고 밝혀 공은 센터로 넘어간 상태다. 센터측은 A씨 복직 여부에 대해 “센터는 지침대로 행동했다”며 “관리기관에 문의하고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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