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포털 검색창에 ‘면담’을 입력하니 “서로 마주하고 이야기함”이라고 뜻풀이를 해 준다. 초등학생백과사전 사회 용어사전에서는 이에 더해 “정보를 얻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알고 싶은 내용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 면담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을 통해서 쉽고 빠르게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친절히 설명한다. 그러나 정부·지방자치단체와 같은 행정기관과 어렵사리 성사된 ‘면담’에서 필요한 정보를 들을 수 없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럴 때마다 일반 용어사전이 아닌 정부기관용 특별판 뜻풀이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게다가 질의와 요구사항에 대해 서면으로 답을 받기로 한 상황에서, 며칠을 기다려 겨우 돌아온 회신이 무성의한 경우에는 도대체 ‘면담’을 왜 했는지 토로하게 된다.

지난해 12월20일 경기도 포천 소재 농장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캄보디아 출신의 농업 이주 여성노동자 속헹씨가 사망했다. 속헹씨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며, 이주노동자의 주거 환경과 건강권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속헹씨의 산재사망으로 문제제기가 빗발치자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6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합동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2021년 1월1일부터 고용허가 신청(신규, 사업장 변경, 재입국특례, 재고용 등)시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고용허가를 불허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농어업 분야의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에 필요한 주거시설 기준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노동부의 지침은 비닐하우스만 아니라면, 컨테이너와 조립식 패널 등 주거시설로 합당하지 않은 숙소에 대해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이므로 여전히 한계적이다. 이렇듯 빈축을 사기에 충분한 지침에 항의하며, 전국 각지에서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피켓 연대시위가 펼쳐졌다. 설 연휴를 코 앞에 둔 이달 9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이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한편 전국의 지자체 중 이례적으로 경기도는 노동부·농림부의 대책발표보다 하루 앞선 지난달 5일 이재명 도시자가 직접나서 ‘농어촌지역 외국인 노동자 주거환경 실태조사’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시·군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도내 농어촌지역 이주노동자 숙소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발빠른 경기도의 행보에 시민사회의 환영했다. 경기남부 이주인권단체를 중심으로 경기도 노동국과 지난달 29일 실태조사와 관련한 면담이 진행됐다. 경기도 노동국은 노동부와 도내 시·군의 협력을 바탕으로 전수조사 대상 2천161곳 중 99.1%에 이르는 2천142곳에 대한 점검을 마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면담에 참여했던 민주노총 경기도본부를 비롯한 △단체들은 △실태조사 주요 표준점검표·기준 공개·농어업 이외의 제조업·건설업 등 전반으로 확대 △조사 이후 대책 마련 과정에서 이주노조를 포함한 당사자 참여 보장 △노동부의 기숙사 숙소비 징수지침 폐기에 대한 입장 발표를 요구했다.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발빠르게 경기도가 이주노동자의 기숙사 문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당사자인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거나 형식적인 서류 검토 수준의 실태조사로는 주거시설로 인한 이주노동자의 죽음이 반복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일 면담에 나선 경기도 노동국은 어느 하나도 제대로 확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요 요구에 대해서는 “검토 필요”를 언급하며, 서면으로 답변을 제출하기로 했다. 그렇게 꼬박 일주일이 지난 이달 5일 돌아온 답변은 ‘무성의’하다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한 내용이었다. 특히 경기도 실태조사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표준점검표·기준 공개 요구에 대해서는, 어떤 기준으로 조사했다는 응답 대신 “근로기준법 시행령 55조부터 58조의2까지 규정에 준해 점검”이라고만 답했다.

경기도 노동국이 언급한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기숙사 규칙 안의 게시 등 △기숙사의 구조와 설비 △기숙사의 설치 장소 △기숙사의 주거 환경 조성 △기숙사의 면적 △근로자의 사생활 보호 등이다. 이에 준해서 조사했다는 것이 이 사항을 기본으로 빠짐없이 조사했다는 것인지, 이 중 일부는 제외했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게다가 농어촌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 현실이 제대로 반영됐는지도 알 수 없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에는 언급조차 없지만 가장 중요한 식수와 생활용수는 정수기를 사용하는지, 생수인지, 지하수인지, 상수도인지, 우물물인지. 화장실은 기숙사 내·외부 어디에 위치하는지, 외부라면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그조차도 간이화장실인지, 건물형인지. 변기는 재래식인지, 양변기인지 등 세밀하게 조사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기준 자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으니 실태조사가 구체적인 실태를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는지, 빠져있다면 무엇이 추가돼야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주거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현실이 반영돼야 한다. 이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이를 배제하고 진행되는 실태조사는 생색내기이며, 행정력 낭비다.

딴지를 걸자는 것이 아니다,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하자는 말이다. 그래야만 더 이상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죽음에 이르는 현실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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