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

대상판결: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2020. 12. 19 선고 2020고단802

1. 사안의 개요 및 쟁점

지난해 4월29일 경기 이천시 모가면 ‘한익스프레스 남이천 물류센터’ B동 공사(이 사건 공사)현장에 화재가 발생해(이 사건 화재) 50명이 사망 또는 상해를 입었다.

검찰은 이 사건 화재가 이 사건 공사현장 지하 2층 냉동·냉장창고 관련 용접작업 중 화기가 우레탄폼에 닿아 연소됨으로써 발생했다고 보고 냉동·냉장창고, 즉 시설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① 감리업체 ② 시공사 ③ (하)수급인 관련자를 기소했다. 또한 검찰은 이 사건 공사현장에 대한 일반적 책임을 지는 자로서 ① 감리업체측의 감리단장 ② 시공사측 현장소장 및 안전관리자를 기소했다. 마지막으로 검찰은 발주처 소속으로서 이 사건 공사를 담당하는 자를 기소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① 화재발생의 원인 ② 피고인들의 업무상 주의의무의 존재 ③ 발주처 행위와 사상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다.

2. 대상판결의 내용

대상판결은 검찰이 제시한 화재원인에 대한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전제하에서 시설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피고인들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이 사건 공사현장에 대한 일반적 책임을 지는 피고인들의 경우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및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전부 유죄를 선고했으며 발주처 소속인 피고인에게도 유죄를 선고했다.

대상판결은 발주처의 공사기간 단축 요구로 인해 이 사건 공사현장에서의 안전조치의무 위반이 야기됐다거나 더 증가했다고 볼 증거는 없다고 봤다. 그러나 발주처가 공사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감독행위를 했으므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 정하는 비상구 설치에 관한 업무상의 주의의무를 부담하고, 비상구를 폐쇄하려면 대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가사 통로 폐쇄행위가 위법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로 인해 화재 발생시 위험이 증가함으로써 사상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바, 발주처에게 선행행위로 인한 보증인지위가 발생함에도 대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사상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봤다.

대상판결은 대법원 판례를 들어 건설공사 발주자가 공사의 시공이나 개별 작업에 관해 구체적으로 지시·감독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그러한 선행행위로 인해 수급인의 업무와 관련해 사고방지에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할 주의의무를 부담한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대상판결은 발주처의 형사책임을 인정했으므로, 이 사건에서 발주처가 이 사건 공사의 시공이나 개별 작업에 관해 구체적으로 지시·감독했다는 사정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3. 평석

시설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피고인들에 대한 내용은 결국 화재발생 원인에 관한 다툼으로 귀결될 것인바 법리적인 사항이라고는 보기 어려우므로 본 평석에서는 발주처의 업무상 주의의무 및 인과관계의 존부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가.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의 근거 관련

먼저 대상판결이 드는 대법원 판례는 전부개정되기 전의 구 산업안전보건법에 기초했다. 구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의 전부를 도급한 도급인에게는 산업재해 예방에 관한 업무상 주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이 사건에 적용되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차이가 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원칙적으로 도급인에게 사업주와 유사한 수준의 산재 예방책임을 부과한다. 다만 도급인 중에서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지 아니하는 자’는 ‘건설공사 발주자’로서 형식적 절차를 준수하는 정도의 산재 예방책임만을 진다. 사업주와 유사한 산재 예방책임이 부과되는 도급인의 기준이 ‘도급되는 사업의 범위’에서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지 여부’로 변경된 것이다. 그리고 규정형식상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호칭과 상관없이 건설공사를 도급한 자는 원칙적으로 사업주와 유사한 산재 예방책임을 지는 도급인으로 봄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발주자에게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먼저 발주자가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 발주자에 해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보고, 그렇지 않다면 발주자는 도급인이므로 부작위범의 보증인지위 이전에 산업안전보건규칙 위반 여부 및 그로 인한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여부를 곧바로 따져 보면 충분할 것이다. 대상판결은 발주처의 구체적인 지시·감독 사실을 인정했는바, 발주처가 이 사건 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였다는 점 또한 인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대상판결은 특별한 설시 없이 발주처를 건설공사 발주자로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업무상 주의의무의 범위 관련

이 사건에서 대상판결이 인정한 발주처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은 비상구 관련에 한정되는 바, 발주처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 피해자는 대피로 폐쇄로 인해 대피하지 못한 사상자 8명에 그친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발주처의 공사기간 단축 요구는 이 사건 공사가 착공됐을 즈음부터 2019년 내내 지속됐고 감리업체에서 위험요인으로 발주처의 공사기간 단축 요구를 명시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에 따르면 이 사건 공사가 진행되는 내내 시공사와 감리업체, 나아가 하수급인 및 관련 근로자들의 의식에는 공사기간 단축이라는 구체적인 목적이 형성돼 있었을 것이라고 봄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주처가 2020년에는 구체적인 공사기간 단축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은 감리업체나 시공사에 대한 구체적인 공사기간 단축 요구가 없었다는 부분을 강화하는 사정이 아니라, 2019년의 요구에서 변경되거나 철회된 것이 없다는 사정으로 고려돼야 한다. 그렇다면 대상판결에서는 발주처의 공사기간 단축 요구가 이 사건 공사 관계자들 행위의 원인이 돼 안전조치의무 위반행위의 책임을 발주처에 귀속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야 했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 정의규정에 비춰 볼 때, 도급인이 건설공사 발주자가 아닌 경우 도급인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책임은 구체적인 지시·감독 행위보다도 시공을 주도하면서 공사를 ‘총괄·관리’하는 행위로부터 비롯된다고 새기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만약 이 사건 공사현장에서의 안전조치의무 위반행위들이 공사기간 단축을 목적으로 하지 아니한 경우 쉽게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다면, 발주처 책임은 대피로 폐쇄행위라는 구체적인 행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사기간을 안전히 총괄하고 관리할 의무를 해태한 것에 관해서도 인정해야 한다.

나아가 도급인에게 총괄·관리행위에서의 의무위반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에서의 의무위반을 요하는 법리가 확립된다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사건에서는 더욱 커다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비록 구체적인 관리상의 조치에 관한 시행령이 제정되지는 않았으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처벌을 예정하는 자연인은 이 사건처럼 도급인의 담당 업무수행자도 아닌 그보다 배후에 있는 경영책임자이므로 구체적인 의무위반 행위의 존재를 드러내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법인을 처벌대상으로 해 큰 권한을 가진 자가 큰 책임을 지게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가 몰각할 우려도 있다.

따라서 발주처 소속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결과가 이 사건 화재발생 자체에 미쳐 50명의 사상자 발생이라는 결과의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다만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재해에 관해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건설공사를 발주한 도급인을 처벌하는 사례 자체가 찾기 어려운 일이므로, 도급인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대상판결은 큰 의미가 있다.

다만 본 평석의 핵심은 건설공사를 발주한 도급인이 해당 공사에 대해 지는 안전조치 의무 발생 근거와 그 의무의 성질에 대한 것이다. 본디 근로자에 대한 보호의무는 근로계약에서 인정되는 것이므로 도급계약에서 수급인에 대한 보호의무는 성질상 인정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인에게 ‘관계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일종의 보호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 볼 때 도급인에게 요구되는 의무수행은 구체적인 안전조치 의무를 수행하는 것보다도 총괄적인 견지에서 사업장에 안전조치 의무 위반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의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진행될 항소심 재판에서 이러한 점이 고려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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