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코로나19 이후 디지털·뉴노멀 시대로 전환이 가속화하고 있다. 전환 시기에 한국 사회에 내재된 구조적 문제는 심화하고 새로운 위험 또한 가중되는 양상이다. 여성·비정규직·저학력 등 노동 취약계층은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고용구조 충격을 더 크게 받고 있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디지털뉴딜·그린뉴딜·안전망 강화)’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전환 시기에 대응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 대응에는 “노동이 안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에게 디지털·뉴노멀 시대는 위기일까 기회일까.

<매일노동뉴스>는 디지털·뉴노멀 시대 산업구조 변화 과정에서 나타날 일자리 변화와 노동운동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기획좌담회를 열어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매일노동뉴스 회의실에서 열린 기획좌담회에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과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이 참여했다. 연윤정 매일노동뉴스 선임기자가 사회를 봤다.

“일과 생활 경계 무너져, 장시간 노동 주목해야”
“플랫폼 경제 이행 과정에서 불평등 문제 심화”

사회 :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며 비대면·온라인 서비스가 비약적으로 확대했다. 생활 속 변화를 비롯해 현재 상황을 진단해 달라.

이문호 : 재택근무가 활성화하면서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사회적으로 교통량 감소 같은 긍정적 요소들도 발견된다. 하지만 노동자가 자신의 집기를 사용해야 하고, 사무공간이 아닌 집안에서 일을 하다 보니 사무환경이 나빠지는 요소도 나타난다. 재택근무를 하다 사고가 났을 때 누구의 책임인지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분명하게 규정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과 생활의 경계가 없어지면서 오히려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전반적으로 시간적·공간적 유연성이 증가하고 있는 데 대해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개입해 가야 하지 않을까.

김성희 : 코로나19로 인해 플랫폼 경제로 이행이 가속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기술 변화에 의한 산업과 경제의 변화, 그로 인한 노동의 변화라는 게 급격히 단절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대전환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변화는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 시대와 디지털 경제로의 이행 과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불평등 문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산업과 고용의 변화 양상을 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불평등 구조가 심화될 우려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원래 불평등한데 더더욱 불평등해질 우려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사회 : 코로나19로 항공·여행·숙박을 비롯한 서비스업이 직격탄을 맞고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한 제조업도 타격을 받았다. 산업구조에 미친 영향을 평가한다면.

김성희 : 지난해 3월부터 취업자수가 전년 동월 대비 감소하기 시작했고 고용률도 같이 떨어졌다. 그런데 산업별 편차가 있다. 농업·전기가스·운송 등 영역은 고용이 늘어났는데 도소매·음식·숙박과 여행관련 업종은 물론이고, 취업자 증가에 일조했던 교육서비스업도 줄어들고 있다. 산업별 양극화가 심해질 우려가 있다. 연령별로 봤을 때는 감소율 자체는 20대 이하가 가장 크게 나타나지만 코로나19 이전부터 드러난 40대 취업률 감소가 계속됐다. 중핵 연령층 일자리가 취약해지고 있다는 구조적 위험신호가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문호 : 이동 제한으로 전 세계적으로 여행이나 숙박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이에 반해 온라인 거래는 늘어났다. 온라인 거래가 증가되면서 경영전략에서 배달시간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배송물류센터가 구축된다. 여기서 나타나는 산업구조의 큰 변화는 유통과 물류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자동차산업도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환경문제와 연결되며 내연기관차 지원을 줄이거나 없애고 전기차쪽에 지원을 많이 하고 있다. 하드웨어 중심의 금속산업이 소프트웨어 중심의 전자산업으로 옮겨 가며 자동차산업이 전자산업인지, 금속산업인지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사회 : 산업구조 변화 속에서 구조조정도 실제로 많이 일어나고 있나.

김성희 : 5명 미만 사업장 취업자수 감소가 가장 두드러진다. 고용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 역시 취업자수 감소가 큰 편이다. 다만 서비스업 안에서는 보건복지·운수창고 쪽은 고용이 증가하고 있고 도소매·숙박음식점·여행·레저쪽은 줄고 있다. 영향은 일관되지 않은데 전체적으로 보면 취약한 노동자들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복지서비스 영역에서 일자리 창출 여력이 높고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상대적으로 타격을 많이 받은 곳에는 어떻게 맞춤 지원을 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자동차산업 19세기 말 이후 가장 큰 변화, IT기업 새 강자로”
“준 아웃소싱 방식 활용할 가능성 … 노동은 안 보여”

사회 : 우리 산업구조 허리를 맡고 있는 제조업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자동차의 경우 전기차·친환경차 전환은 기존 내연기관차 중심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자동차산업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나.

이문호 : 최초로 현대적 자동차가 발명된 19세기 말 이후 가장 큰 변화다. 시장·제품·공정 세 가지가 한꺼번에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선진국에서 신흥국가로 옮겨 가고 있고, 공유경제라고 하는 자동차 서비스 시장이 새로 개척되고 있다. 제품은 전기차·커넥티드카·자율주행차 등이 생겨나며 IT기업도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애플·구글·테슬라가 새로운 강자로 등장했다. 디지털화·자동화로 인해 공정도 변하고 있다. 걷잡을 수 없다. ‘파괴적 혁신’이다. 현대차가 ‘2025 전략’을 내놓고 기아차도 ‘플랜S’를 내놓으며 흐름에 적응하겠다고 하는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건 세 가지다. ‘친환경차를 생산하겠다, 서비스시장에 들어가겠다,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거다. 문제는 세 가지 사업모델이 성공할지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노동한테는 불리하다는 점이다. 포괄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새로운 사업모델은 많이 보이지만 노동은 보이지 않는다.

김성희 : 전환의 속도가 어떻든 간에 고용문제는 현재 안정적 일자리에서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기업들이 다른 전략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무리 반발하더라도 현대차그룹이 현대모비스 중심으로 전기차를 생산한다는 방침은 변하지 않을 거다. 재벌구조상으로도, 사업전략 측면에서도, 노무관리 측면에서도 그렇다. 최저임금을 줘도 되는 미숙련 노동자를 데려다 라인 세 개를 깔아서 A·B·C 3개사로 나눠서 하청공장으로 운영했던 그 시스템 그대로 전기차 핵심부품을 생산하는 데 모비스 공장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이전하면 (기업에) 굉장히 편하다. 완성차 정규직 중심보다 훨씬 더 관리하기 용이한, ‘준 아웃소싱’ 방식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거다. 새로운 갈등의 진원지가 될 것이다. 고용구조에 미칠 영향뿐만 아니라 앞으로 노동의 중심 축 이동에 대한 고민까지 초래할 수 있는 변수라고 볼 수 있다.

“전기차 전환 과정 노사관계 새로운 갈등의 진원지”
“직업이동 대처 중요, 교육훈련 위한 사회안전망 갖춰야”

사회 : 일자리와 고용형태에는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이문호 : 모든 산업변화에는 줄어드는 데가 있으면 늘어나는 데가 있게 마련이다. 전기차의 경우 금속가공쪽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지만 전장쪽에서는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공장이 들어오면 직접생산직은 줄어들지만 그 시스템을 관리할 인력이나 소프트웨어 요원은 늘어난다. ‘일자리 몇 퍼센트가 줄어든다’는 식으로 수치적으로 계산해서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전통적으로 전기·전장 회사는 노조가 없거나 있어도 힘이 약하다. 노사관계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전기차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노조가 약한 쪽으로 넘어가거나 아니면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서 노조 없이 무노조 경영을 하려고 하는 위험성이 다분하다.

김성희 : 상실하는 일자리와 새로 생기는 일자리 사이에 개인의 운명은 달라지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고용의 종말을 고한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기술 중심적인 과장의 요소가 분명히 있다. 직무 질의 변화, 직종 간 편차는 있을 것이다. 융합의 시대, 산업경계가 달라지는 가운데 질 좋은 일자리가 더 늘어나느냐 아니냐에 대한 문제가 중요한 변수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위를 가졌던 곳에서 타격이 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새로 생겨날 일자리가 어떻게 안정적 일자리로 정착될 수 있게 할까 하는 문제도 있다.

이문호 : 이 문제는 노동운동의 전망에서도 중요하다. 전환의 시기에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는 종말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노동시장의 이동성이다. 유럽에서도 노조들이 교육훈련에 굉장히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교육을 통해 높은 질의 일자리로 옮겨 주려고 하는 부분이다.

김성희 : 그러기 위해서는 그럴 만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최대 9개월에, 소득대체율 60% 정도밖에 안되는 고용보험으로는 부족하다. 39개월, 43개월 이렇게 받을 수 있는 나라들에서 실질적인 직업이동에 대처할 수 있는 훈련을 받을 수 있다. 실업보험이나 기본적인 안전망이 구비되지 않고서는 새로운 직업으로 이동할 교육훈련을 받을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플랫폼자본주의 이행 과정에서 제조업 하청전락 우려”
“산업위기 직면, 국가의 역할 중요한 때”

사회 : 자동차뿐만 아니라 LG전자도 스마트폰 사업을 중단하고 캐나다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손잡고 전기차 부품사업으로 움직이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의 인수합병(M&A)이 더 잦아질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문호 : 대형화 추세 속에서 중소기업이 몰락하거나 M&A를 통해서 올라가는 현상이 보이는데 노동자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는 따져 봐야 한다. M&A는 보통 구조조정이 따르기 때문에 불리한 측면이 많은 것 같다. M&A 말고 전략적 제휴라는 게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라고 하는 산업발 융합이 많이 일어나며 협력을 많이 하고 있다. 이런 부분들이 과연 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김성희 : 산업자본주의에서 플랫폼자본주의로 이동하는 양상은 분명하다. 제품 제조기술에서는 수익창출이 별로 없고 이동서비스를 중개하는 플랫폼이 수익을 내고 산업을 주도하며 플랫폼화할 수 있는 기업을 매수하는 거고 인수합병도 활발해지고 있는 거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제조기술, 서비스생산이 플랫폼의 하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도 그 제조업 기술이 어떻게 앞으로 수익 기반이 될 수 있을지, 고품질 하청공장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크다. 하청공장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인더스트리 4.0 같은 대응을 해 나가고 있는 거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공제조 기반이기 때문에 고품질·고기술은 아니다. 플랫폼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가졌던 위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변화에 대처해야 한다.

사회 : 변화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업은 존폐 위기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문호 : 코로나19 위기가 터지면서 국가 역할이 커졌다. 산업변화 시기에도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정치다. 쌍용자동차를 비롯해 위기에 처한 기업들에 대해 (국가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책적 결정이라는 건 타이밍이 있는 거고 그 타이밍을 좀 더 단호하게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상당부분 국가가 나서야 할 시기다.

김성희 : 미국조차 일시적·부분적 국유화를 안 하는 게 아니다. 위기에 빠진, 국민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산업은 국유화 조치를 취한다. 자유주의 경제랑 전혀 다른 어떤 방법이 아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딜레마가 있다. 국가라는 게 공명정대하고 공공산업을 위해 움직이는 어떤 존재로 상정하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고 엘리트 이해관계를 가진 관료들의 지배구조하에 있는 거다. 기존 이해관계에 천착해 있는 관료들의 지배로 귀결된다는 딜레마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플랫폼 경제 노사관계 진공상태, 사회적 협약 필요”
“특고 문제 반복 ‘노동자성 인정’ 정면승부 요구돼”

사회 : 코로나19는 플랫폼 경제 활성화를 촉진하며 서비스산업에서 일자리 질이 낮아지고 소멸도 빨라지고 있다.

이문호 : 디지털 시대에는 플랫폼 노동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일자리가 생기는데 문제는 나쁜 일자리라는 거다. 예를 들어 플랫폼 노동은 근로계약이 없다. 용역위탁계약으로 건당 수수료를 받으며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기그(Gig) 노동이나 웹기반 노동이나 거의 똑같다. 사용자도 없고 노동자도 없다. 그나마 생기는 일자리가 이런 식이다. 노사관계가 아예 진공상태다. 진공상태 속에서 노동조건은 계속 나빠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노동자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런 진공상태를 메우는 차원에서 사회적 협약이 당분간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대화가 역할을 해야 한다.

김성희 : 플랫폼을 혁신의 아이콘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상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특수고용 노동자의 음습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양상이다. 우리나라 플랫폼의 절반 이상이 택배·배달·대리 등 운송기반인데 사람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과거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해 놓았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는 거다. 사회적 합의가 제도의 진공상태를 돌파할 수 있는 일시적 해결책은 될 수 있지만 지속성과 구속력을 가질 수 없다면 확산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제도를 바꾸는 것과 비견했을 때 사회적 합의를 10번 쌓아야지 제도 개편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문호 : 투트랙으로 가야 할 것 같다. 궁극적인 해결방안은 법·제도 개선이다. 이는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될 일이고 현재 상태에서 진공상태를 메울 수 있는 방법은 사회적 협약이 될 수 있다.

김성희 : 제도 자체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고민을 정면승부하지는 않고 계속 우회로만 찾고 있다. 최소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을 통한 노동자성 인정은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성 문제에 전향적으로 새롭게 접근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 사각지대가 계속 늘어나는 문제가 생긴다.

“한국판 뉴딜은 임시적 처방, 나머지가 안 보인다”
“일자리 정책으로 접근 안 돼 … 자본주의 성찰 필요”

사회 : 정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일자리를 ‘한국판 뉴딜’로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김성희 : 디지털 뉴딜은 공공·청년일자리 해결책으로 많이 나오는데 임시적 일자리가 한시적으로 필요할 때도 있다. 불가피성은 있지만 지속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청년일자리의 경우 일자리 경험을 가질 수 있는, 소득을 메꿀 수 있는 일자리 외에 안정적인 일자리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임시적 처방, 일시적 대응책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그 외에 나머지가 안 보인다는 게 문제다.

이문호 : 개념상으로는 거부할 수 있는 흐름이 아니다. 큰 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한국판 뉴딜은) 일자리 정책으로 가면 안 된다. 일자리 190만개를 만든다고 하는데, 문제는 어떤 일자리냐다. 한국판 뉴딜이 일자리 정책으로 가는 것보다는 기후변화와 노동의 질적 문제에서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자본주의적 위기 극복모델은 위기가 생기면 더 많이 생산해서 더 많이 소비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후변화가 본격화하면서 자본주의의 근본적 문제를 성찰해야 할 때다. 이윤추구에 대해 경제적 관점이 아닌 사회적 관점으로 생각해야 한다. 새로운 생산모델, 새로운 소비패턴으로 뉴딜을 접근하지 않으면 과거 반복적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김성희 : 어떤 도덕적 각성이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고민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일자리 몇만 개’ 이렇게 양화하는 순간, 목표와 방법은 전도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진다.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70%’를 목표로 내세우며 양 개념으로 접근했고 문재인 정부도 ‘공공부문 81만개’ 이런 식으로 수량 이야기를 했다. 양을 만들어 내는 거는 결과로서 해야 하기는 하는데, 그 자체가 캐치프레이즈가 되는 순간 구시대적 작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바이든 시대 글로벌 공급망 다각화·안전성 강화로”
“대기업도 중소기업과 건강한 산업생태계 구축해야”

사회 : 바이든 미국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미·중 무역갈등과 탈세계화는 어떻게 전망하나. 우리 사회 산업구조 변화에도 타격이 있을까.

이문호 : 일본과 무역갈등이 생기자 소재·부품·장비 공급망을 국내화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코로나19로 인해 지역문제가 강화하며 이러한 흐름은 심화할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코로나19와 무역갈등으로 생기는 공급망 변화는 자급자족식보다는 다각화가 돼야 하지 않겠나. 공급망도 효율성보다 안전성을 높이는 위주로 재편돼야 한다. 보건·안전이 중시되고 있다. 이건 기회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중요하다. 기업의 ‘건강성’이 강화하고 있다. 세계화를 종속적 체제가 아닌 호혜적 체제로 가야 한다는 정책적 변화가 요구된다.

김성희 : 글로벌 공급망이 합리적으로 구축돼 있지 않은 영역이 있다면 리쇼어링(본국 회귀)도 가능하겠지만 시장개척과 비용측면에서 합리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사실은 리쇼어링 할 게 없다. 다국적기업으로서 글로벌로 생산하고 공급하는 산업체제에서 작동할 여지가 적은 거다. 글로벌지엠의 경우 생산전략이 자동차에서 완전히 다른 걸로 바뀌었으니까 가능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변화가 생기긴 어렵다.

사회 : 기업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중요한 문제다. 중소기업은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하나. 스마트공장 영향은 어떤가.

이문호 : 이번 기회를 통해 대기업도 국내 산업생태계가 건강하게 자리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인식이 공유되면 서로 협력적 체제로 가야 한다. 스마트공장으로 인한 공정혁신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에 제일 중요한 것은 제품을 만들어서 팔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불안하면 투자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청과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한다. 서로 ‘내가 필요한 것은 이거니까 너는 이런 식으로 개발을 하라’는 식으로 공유체제가 발전돼야 한다. 시장수요라든지 판로가 중소기업의 가장 약한 고리다. 전환의 시기에 중소기업을 위한 전환펀드 같은 것을 조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시장에서 어떤 제품이 필요한지, 판로는 어떻게 개척해야 하는지 지원해 주는 전문기관도 필요하다.

김성희 : 중소기업을 구분해야 한다. 독자적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혁신할 수 있는 독립기업도 있지만 하청기업, 인건비 따먹기 하는 인력공급기업이 있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 지원금이 많은 편이고 중복지원도 많다. 하청기업 같은 경우 대기업이 투자해야 할 부분을 정부가 대신 투자하는 경향도 많다.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뿐만 아니라 단련시켜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가 정신에서 벗어나는 행태에는 가혹한 제재가 필요하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기후변화 대응·노동의 인간화 어젠다 찾아야”
“노동운동 한계 딛고 연대 속 미래변화 대응 필요”

사회 : 급격한 변화 속에서 노동운동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

이문호 : 대전환 시기에 새로운 사업모델이 나오면서 자본의 어젠다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 노동의 어젠다가 있느냐, 이게 가장 큰 문제다. 기후변화 대응과 노동의 인간화. 이 두 가지 어젠다를 확실히 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 대응은 생태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의 인간화는 전환의 시기에 기술변화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기술변화로 일자리가 줄어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독일에선 금속노조가 주 4일제를 제안하고 있는데 이처럼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방식이라든가, 어젠다를 찾아서 입장과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 번째로 산별노조를 강화해야 한다. 개별사업장이 전환에 대응하기는 굉장히 힘들다. 사업장에 맡기면 물량싸움에 따른 노노갈등이 발생할 우려도 크다. 두 번째는 사업장에서 미래협약 같은 것을 체결할 수 있다. 사업장에서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 나갈지, 노사가 미래협약을 맺을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산업정책적 개입과 참여다. 노조가 노동정책이나 사회안전망에는 상당히 많은 기여를 했지만 산업정책적 측면에서는 소홀했다.

김성희 : 한국의 노동운동은 단기적이다, 보수적이다, 이기적이다는 비판을 받는다. ‘단기적이다’는 비판은 산업정책이나 경제변화에 대한 시각을 별로 가지지 않고 기업 틀 안에 갇혀 있는 경향이 강하다는 의미다. 그렇게 육성되고 양육돼서 생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수적이다’라는 것은 노조가 속성상 궁극적 사회변화에 대한 열망은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변화에는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구조와 미래 변화 사이 관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기적이다’는 것은 양극화된 경제구조에서 반작용하는 게 아니라 편승하는 문제들이 생긴다는 거다. 하지만 자기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노조의 기본 속성이다. 연대를 중심에 놔야 한다는 것이 도덕적인 요구처럼만 돼 있는 거다. 현실하고 잘 맞지 않았던 거다. 자기이해 추구와 연대 추구라는 것이 일치될 수 있는 조건들을 우리가 창출해 내지 않으면 이 문제에 대해 도덕적 비판을 하고 도덕적 권고를 하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 하는 점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접맥할 지점을 어떻게 찾느냐, 자기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연대 속에서 녹아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우리가 찾는 데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정리=어고은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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