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예람 변호사(법무법인 오월)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21. 1. 14. 선고 2020구합50386 판결

1. 사건 개요

원고는 신장장애를 가진 장애인이다. 운전업무 종사자로서 필요한 모든 자격을 갖추고 시내버스 운전기사로서 입사했다. 회사는 원고가 채용 면접시 장애를 밝히지 않았다고 하면서 구두로 원고를 1차 해고했다. 이에 원고는 신장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해고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차별에 해당한다고 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고,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인권위 및 노동위의 조사가 개시되자 회사는 원고를 복직시켰다.

그러나 회사는 약 한 달 후 원고를 재차 해고하면서, ①채용시 만성신부전을 앓고 있음에도 건강상 문제가 없다고 했다는 점, ②만성신부전증으로 인한 신체적 능력이 우려된다는 점 및 혈액투석을 위해 거짓으로 휴무를 요청했다는 점, ③버스 내 차량 안전사고 1회, 조기출발 1회의 업무상 실수가 있었던 점을 그 사유로 제시했다. 원고는 이러한 2차 해고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지노위 및 중노위는 모두 원고에 대한 회사의 본채용거부에 합리적 이유가 인정된다는 취지로 원고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원고는 노동위 판정에 불복해 이 사건 행정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2. 사건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크게 1) 근로계약 체결시 명시적인 합의가 없었음에도 취업규칙에 기재된 내용만으로 시용근로관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 2) 시용근로관계에 있었다고 보더라도 본채용거부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는바, 신장장애로 인해 시내버스 운전기사로서의 업무적격성이 부정된다고 볼 수 있는지, 3) 기타 경미한 업무상 실수를 이유로 본채용을 거부할 수 있는지로 정리할 수 있다.

3. 대상판결 요지

시용근로계약 체결 여부와 관련해 대상판결은 원고와 회사가 작성한 근로계약서에 시용근로계약의 내용이 명기돼 있지 않으나, “회사의 각종 규칙, 규정을 성실히 준수할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고, 원고의 단체협약·취업규칙이 신규채용시에 의무적으로 3개월의 시용기간을 두도록 정하고 있는 점 등을 이유로, 노동위 판정과 마찬가지로 원고와 회사가 시용근로관계에 있다고 봤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시용기간 중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본계약 체결을 거부하는 것은 사용자에게 유보된 해약권의 행사로서 보통의 해고보다는 넓게 인정되나 이 경우에도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해 사회통념상 상당하다고 인정돼야 하는데, 회사가 주장한 사유들만으로는 이 사건 본채용 거부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먼저 원고가 면접에서 건강상 문제가 없다고 대답한 것은 원고가 정기적으로 혈액투석 치료를 받고 있어 실제로 건강상태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므로 거짓이라고 볼 수 없고, 직장생활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건강상 문제까지 회사측에 고지할 의무는 없다고 판시했다. 다음으로 원고에 대한 의사소견서들을 볼 때, 원고가 정기적인 혈액투석 치료를 받는다면 건강상의 이유로 버스 운행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또한 혈액투석 치료와 근로제공의 병행이 가능한지와 관련해, 원고는 실제로 배차일정에 따라 오전 또는 저녁 시간에 치료를 받으며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해 왔고,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해 회사는 치료와 직무를 병행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조정해 줄 의무가 있으며, 위와 같이 근무시간을 조정하더라도 회사에게 과도한 부담이 된다거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생긴다고 볼 수 없으므로 편의 제공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지도 않는다고 봤다.

마지막으로 대상판결은 시용기간 중 안전사고 1건, 조기출발 1회의 업무상 실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가벼운 과실로 발생한 사고로 피해가 크지 않았고, 회사가 안전사고를 이유로 다른 근로자의 채용을 취소한 사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상해 정도가 훨씬 심하거나 중앙선 침범과 같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경우로서 원고의 경우와 비교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4. 대상판결 의미

대상판결은 정기적인 혈액투석 치료를 받아야 하는 신장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시내버스 운전업무의 적격성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확인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4조1항은 장애를 사유로 한 직접차별 및 간접차별, 그리고 정당한 사유 없는 편의 제공 거부를 모두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동법 10조1항에서는 채용부터 해고까지 고용관계 전반에서의 장애인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회사는 원고가 신장질환을 가졌고 이를 고지하지 아니했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하여 원고의 채용을 거부한 것이므로,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고용관계에서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

한편 장애인차별금지법 11조는 사용자가 장애인 근로자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법적 의무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장애인이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데 적격성이 있는지는 편의 제공이 이뤄질 것을 전제로 해 판단해야 한다(국가인권위원회 2010. 4. 9. 09진차490 결정). 대상판결은 이 사건 회사에 원고를 위해 근무시간 조정 편의를 제공할 법적 의무가 있다는 점과 이러한 내용의 편의 제공이 상시 300명이 넘는 근로자를 사용하는 대규모 기업인 이 사건 회사에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확인했다.

또한 대상판결이 면접에서 직장생활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건강상 문제까지 고지할 의무는 없으므로 지병을 숨겼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12조1항은 채용 이전에 장애인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의학적 검사 실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다만 채용 이후에 직무의 본질상 요구되거나 직무배치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이를 허용하고 있다. 원고는 채용 전 회사가 요구하는 건강검진을 받았는데도 이와 별개로 면접시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답변한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대상판결은 원고의 신장장애가 직무의 본질과 무관한 것이라면 이를 사용자에게 고지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판시한 것이다.

다만 대상판결은 근로계약 체결시 시용기간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고 근로계약서에도 전혀 기재돼 있지 않았는데도, 채용 전에는 내용을 알 수 없는 취업규칙에 따라 시용근로관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시용근로계약은 사실상 근로기준법 23조 해고 제한의 규정을 회피할 수 있게 하므로, 근로자가 명시적으로 합의한 경우에만 이를 인정하는 것이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해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신장장애인에 대한 고용관계 배제는 업무수행에 적합한 건강상태가 아니라거나 수행 능력이 없다는 편견으로 인해 오히려 차별이라는 인식 없이 공고하게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대상판결은 업무의 본질적 특성과 무관한 경우 신장장애를 이유로 채용을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함으로써, 신장장애인 차별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는 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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