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구의역 김군’ 판결을 다시 보자. 20세 김군은 스크린도어 정비업체인 은성피에스디 소속이었다. 2016년 5월28일 2인1조 작업이 필요했으나 혼자서 구의역 승강장 9-4지점 선로 내에서 수리 작업을 하던 중 역사 내부로 진입하는 열차와 충돌해 두개골 골절을 동반한 두부 손상으로 사망했다. 해당 업무는 본래 서울메트로의 일이지만 오세훈 시장 시절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외주화해 하청업체가 떠맡게 된 것이었다. 김군의 사망으로 하청업체뿐만 아니라, 원청 서울메트로 대표이사 이정원씨도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기소돼 벌금 1천만원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서울동부지방법원 2018. 6. 8. 선고 2017고단1506 판결).

적은 벌금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갑 중의 갑인 원청사 대표이사가 처벌을 받았다는 부분이다. 법원은 2015년 8월경 강남역에도 똑같은 원인의 사망사고가 있었고, 이로 인해서 원청 또한 2인1조 작업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인력구조로는 불가능함을 알았으리라고 봤다. 이에 하청이 원청에게 2015년 12월께 정비원 28명의 증원을 요청했으나 원청은 17명만 증원했다. 오히려 원청이 증원을 이유로 스크린도어 센서 점검 횟수를 월 1회에서 2회로 늘리고, 증원된 17명 중 9명만 정비원으로 배치함으로써 2인1조 작업은 더더욱 불가능해졌다는 점도 법원은 지적했다.

결국 원청의 대표이사로서 스크린도어 정비 중 사고를 막으려면 2인1조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은 것이 구의역 김군 사망의 원인 중 하나라고 봐 형사책임을 물은 것이다. 사고 당일의 개별적인 의무위반뿐만 아니라, 의무위반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낱낱이 밝혀냄으로써 원청 대표이사 처벌이 가능했던 것이다.

구의역 김군 형사판결은 내년 1월27일이면 시행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관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이 나라 검찰과 법원은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 법리를 무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소와 처벌을 가능하게 했다. “업무”라는 두 글자 안에 하청이 자신의 ‘근로자’를 위해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진다는 좁은 내용부터, 원청이 하청노동자나 특수고용 노동자 등 자신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모든 이들의 생명·신체를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본 것이다. 이 판결로써 원청 대표이사의 잘못된 의사결정에서 비롯한 구조적인 원인을 탓하고 처벌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구의역 김군 사건에만 구조적인 원인이 있었을까. 아니다. 고 김동준·김재순·김용균·김태규·이한빛 사건을 비롯해 여론의 주목을 미처 받지 못한, 그래서 사소하게 취급된 수많은 사건들도 구의역 김군 사건처럼 가을날 고구마 캐듯이 상세하게 파 보면 구조적인 원인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 제공자는 힘없는 을이 아닌 원청사인 갑, 그중에서도 갑인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의 구조적인 원인을 찾아내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부분을,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보다 더 명확하게 정함으로써 수사·기소·처벌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4조1호는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4호에서는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를 이행하라고 정한다. 그렇다면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이 어느 정도이고,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란 무엇이고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가. 이는 법 시행일까지 1년 동안 구체적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다. 그래야 갑의 책임을 묻는 수사·기소·판결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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