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환춘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노동법 전문 변호사로서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게 되는 사건 유형은 원청을 상대로 하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불법파견 소송)이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 등 근로자파견 대상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 업무에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즉시’ 고용의무를 부담하도록 규정돼 있다. 파견법 문구만 놓고 보면 비정규직 문제는 파견법으로 대부분 해결이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지엠은 오래전부터 사내하청 형식으로 비정규 근로자들을 정규직과 같은 생산라인에 투입해 왔다. 오른쪽 바퀴는 정규직이, 왼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조립하는 풍경은 비현실적이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한국지엠은 파견법 위반으로 기소돼 이미 2013년에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그러나 한국지엠은 근로자지위확인 사건에서 대법원 승소가 확정된 5명을 직접고용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도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금속노조 한국지엠 비정규직지회는 조합원들의 힘을 모아 집회, 고용노동부 진정 등을 통해 한국지엠을 압박했지만 결국에는 또다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의 방법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급심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승소했고, 한국지엠의 상고로 현재 대법원에서 계속 심리 중이다(대법원 2020다244894 사건 등).

그렇다면 시간이 걸리고 비용부담이 들더라도 소송으로 불법파견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한국지엠 비정규 근로자들은 운이 좋은 경우에 속한다.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생산공정에서 비정규직을 완전히 분리해 낼 수 없는 점, 원청 관리자가 직접적인 업무지시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 등이 소송에서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불법파견 소송이 계속되면서 사용자들은 파견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대법원 판례의 판시에서 나타난 표지들을 역으로 이용해 생산공정을 재편하고 있다. 게다가 비정규직 문제가 가장 심각한 조선업종의 경우는 그 산업적 특성이 건설업과 유사해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모든 비정규직을 호봉제와 고임금으로 보호받고 있는 정규직과 동일한 조건으로 채용할 경우 발생하는 비용부담을 피하고 싶어 한다. 한국지엠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비정규 근로자들이 승소할 경우 ‘기업의 존폐를 고민해야 하는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며 ‘신의칙’을 주장하기도 했다. 불법으로 이익을 얻은 당사자가 신의칙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는 하나, 이 문제는 현장에서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 사이에 긴장감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노조 안팎에서 불법파견 소송이 아니라 비정규 근로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화두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금속노조 산하 자동차산업 관련 비정규직 노조 중에는 불법파견 소송을 하지 않고 임금과 고용 등 근로조건 향상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 노동조합 주도로 불법파견 소송을 진행할 경우 조합원들의 관심이 소송에 집중돼 정상적인 노동조합 활동이 사실상 무력화된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노조 바깥에서는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과 관련해 호봉제가 아닌 직무급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주장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직무급제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사용자와 정부인데, 노동조합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이해관계 상충에 주춤하는 사이에 그 틈을 파고든 것이다.

노동운동에서 소송을 비롯한 법률투쟁은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노동조합이 전체 노동자의 이익과 노동자 연대라는 관점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노동조합 활동의 원칙은 ‘함께 살자’라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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