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의료노조가 2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코로나19 전담병원 인력체계 전면개편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노조는 기자회견 이후 농성에 들어갔다. <보건의료노조>

“그래도 의료인이니까….” 속초의료원에서 근무하는 원은주 간호사가 힘들 때마다 되뇌었던 말이라고 한다. 그는 치매 환자와 스스로 움직이기 어려워 대부분 시간을 누워 있는 중증 환자들을 돌봤다. 방호복을 입고 이들의 식사 수발을 했다. 기저귀를 갈고 여기저기 묻어 있는 대변을 닦기도 했다. 짧게는 2시간, 길게는 4시간을 땀으로 가득한 방호복 안에서 보냈다. 머리가 핑 돌아 넘어질 뻔한 일도 여러 번이었지만 버티고 또 버텼다. “솔직히 너무한다”고 생각하게 된 건 동료가 코로나에 감염되면서부터다. 같이 일했던 동료와 그의 가족까지 감염됐다. 코로나19 병동에 들어가기 두려워졌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12월에는 임금까지 체불됐다. 정부는 이런저런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체감하기 어려웠다. 그가 방호복을 입고 청와대 앞에 섰다.

보건의료노조가 2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대로는 더 버틸 수 없다”며 “감염병 대응체계를 바로 세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기자회견 뒤 코로나19 전담병원 인력체계 전면 개편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 농성장을 꾸렸다.

기존 간호사 노동력 짜내 지탱했던 구조
무너지는 간호사

노조에 따르면 코로나19 전담병원에서는 오래 근무한 간호사들이 자체적으로 병원 내 세부지침을 마련했다. 이들은 3주 파견인력 교육까지 맡았다. 과로는 쌓이는데 보상은 적었다. 병원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 간호사 일부가 병원을 나가 파견직으로 가는 일을 지켜봤다. 코로나19 최전선부터 대응 구조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몇몇 지방의료원은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일반 환자들을 모두 내보내고 코로나19 감염환자를 치료하면서 경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손실보전액을 지급하지만 현장에서는 지원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실제로 남원의료원은 지난해 7월, 강진의료원은 같은해 5~7월 임금을 절반만 주고 수당과 상여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속초의료원은 지난해 12월 임금이 체불됐다.

정부 파견인력으로 지원하는 간호사들은 박탈감을 호소했다. 파견인력은 위험수당과 기본근무수당·전문직수당을 받는다. 노조 계산에 따르면 이들 수당을 모두 합쳤을 경우 기존 인력보다 두 배가 넘는 임금을 받는다. 김정은 노조 서울시서남병원지부장은 “지난 연말 잦은 로테이션과 환자 증가, 중증도 증가 등으로 많은 간호사들이 사직했고 이들 중 일부는 파견간호사로 갔다”고 밝혔다. 노조는 경기도의료원 등 다른 병원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력·보상체계 정비 시급
근본 대책은 공공의료 확충

현장 노동자들은 정부의 인력 지원체계 정비와 보상체계 마련으로 과로구조를 바꾸자고 입을 모았다. 노조는 코로나19 대응 인력기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자고 했다. 환자의 중증도와 기저질환군에 따라 적정 인력을 배치하면 인력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노동강도를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시 파견인력이 아닌 정규인력이 코로나19에 더욱 체계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했다.

공공의료기관 정원 확대와 추가 확보 인력의 인건비 지급이 전제라고 주장했다. 생명안전수당을 만들어 코로나19 대응인력에게 지급하는 보상체계를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현재 정부 지원책인 중환자 치료 간호수당이나 코로나19 환자 야간간호관리료 인상 방안은 간호사들끼리 갈등을 부추겨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근본적 대책으로 공공의료 강화를 제안했다. 정부가 이미 약속한 공공병상 확대와 함께 모든 지방의료원, 적십자병원의 병상을 300∼500병상 규모로 확대하기 위한 지원계획을 반드시 올해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나순자 노조 위원장은 “지난 1년은 임시방편으로 대응했다면 이제는 김염병 극복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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