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지난 25일 집권당의 대표가 산업안전보건청을 신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야협의를 통해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했다고 한다. 여러 부처에 산재한 관련 기능을 통합·조정하는 준비를 위해서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을 산업안전보건본부로 격상하고 확대개편하기로 정부와 의견을 모았다고도 했다.

산업안전보건청에 대한 논의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산업안전보건 행정조직의 운영을 합리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20년 전부터 있어 왔다. 비교적 최근인 2018년 노동부 장관 자문기구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에서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중장기 과제로 추진할 것을 권고했다. 지난해 4월에는 대통령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도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검토를 합의한 바 있다. 7월에는 더불어민주당의 김영주 의원이 산업안전보건청을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국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과반의석을 넘는 거대 여당 대표의 발언으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에는 힘이 실리게 될 것이다. 환영한다. 그리고 지켜볼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희석돼 국회를 통과했다. 기본적인 안전보건 조치 미비로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계속 다치고 병들고 죽어가는 현실을 더 이상 지켜볼 수는 없다는 사회적 인식에 기반한 가치중심적인 법안이다 보니 논란도 많았다. 하지만 그러한 논란과 논쟁의 과정 속에서 중대재해를 포함한 산재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고 예방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분명해진 바도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담고자 했던 바가 현실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입법’ 이후에 구체적인 ‘행정’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행정조직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발맞춰 노동안전보건 행정조직 개편을 정치권에서 다뤘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뻔한 이야기이지만 ‘제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여당 대표가 ‘산업안전보건청’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만큼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코로나19 국면에 기대어 ‘질병관리청’이 만들어졌지만 충분한 인적·조직적 준비 없이 진행돼 비판받은 사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질병관리청이 한 두 번의 바이러스 ‘유행’만을 대처하는 조직이 아니어야 하듯이,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의 문제를 다루는 조직은 ‘여론’을 등에 업고 출발하더라도 진중한 검토를 통해 내실을 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2017년 대한직업환경의학회·한국산업보건학회·한국안전학회·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 요청으로 수행된 연구(정진우, 산업안전보건청의 설립 필요성과 추진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산업보건학회지)에서는 현행 산업안전보건 행정조직의 문제점으로 전문성 부족, 효율성(효과성) 미흡, 특수성 미고려, 독립성(자율성) 미약, 능동성 결여를 지적하고 있다. 현재는 국가의 산업안전보건 행정조직의 기본 요건을 어느 것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현재의 노동부 관련 부서와 안전보건공단 조직이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가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강력한 행정권한을 가지고 있는 노동부가 단지 전문성이 부족해서 효과적으로 규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인지, 전문성을 갖춘 안전보건공단이 단지 규제의 권한을 가지지 못해서 기술적 지도·지원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업의 이해관계 앞에서는 왜소하기만 한 노동부나, 산재예방에 있어서 전문성에 기반한 협업을 이뤄야 할 근로자건강센터에 발주처로서 간섭에만 능한 안전보건공단의 행태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산재예방의 출발은 문제와 위험을 드러내는 것인데도 책임지기가 두려워 문제를 왜곡하고,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위험을 들춰내지 않았던 전력을 우려한다.

산업안전보건청이 새롭게 만들어진다면 전문성·효율성·특수성·독립성·능동성 등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게 챙길 것은 일하는 사람,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 대한 견결한 옹호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일 것이다. 그래야만 생산성·임금·고용·노사관계에 휘둘리는 노동부에서 분리·독립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안전보건공단에서 늘상 호소하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만한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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