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국어사전에 애주가와 애연가를 위한 낱말이 꽤 많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 술과 관련한 낱말만 모아 <국어사전에서 캐낸 술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을 낸 적도 있다. 그 안에 잘못 풀이한 낱말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담았는데, 책을 낸 뒤에 다른 낱말들에서도 오류를 발견하곤 했다. 그런 낱말 두 개를 소개한다.

연주(煙酒) : 담배와 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에만 실린 낱말인데, 한자의 뜻만 기계적으로 풀이해서 실었다. 이 말은 담배와 술을 아우르는 뜻을 가진 게 아니라 그냥 담배를 이르던 말이다. 낱말이 사용된 용례나 근거를 찾아보지 않은 채 한자 자체만 가지고 풀이하다 보니 이런 실수가 종종 나온다.

“이 풀은 병진·정사년간부터 바다를 건너 들어와 피우는 자가 있었으나 많지 않았는데, 신유·임술년 이래로는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어 손님을 대하면 번번이 차[茶]와 술을 담배로 대신하기 때문에 혹은 연다(煙茶)라고 하고 혹은 연주(煙酒)라고도 하였고….”(인조실록 37권)

위 실록의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차나 술 대신 대접한다는 뜻으로 담배를 이를 때 연주(煙酒)라는 표현을 썼다. 연다(煙茶)는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다른 낱말 하나가 더 실려 있다.

주연(酒煙) : 술과 담배를 아울러 이르는 말.

한자의 앞과 뒤만 바꿨는데, 이 낱말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연주’라는 표기를 달고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낱말 중에 이상한 게 또 보인다.

연주(煉酒) : 청주(淸酒)에 달걀의 흰자와 흰 설탕을 넣고 약한 불에 끓여서 만든 음료. 끈끈한 느낌이 있고 맛이 달다.

이 낱말은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 같은 뜻을 달고 올라 있다. 그런데 이런 술 혹은 음료를 구경하거나 맛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꽤 독특한 방법으로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아무래도 우리 조상들이 해 먹었을 것 같지는 않다. 이 낱말은 일본어사전 <고지엔(廣辭苑)>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ねりざけ(煉酒·練酒) : 白酒(しろざけ)의 일종. 청주에 찐 찹쌀과 누룩을 섞어 저장 발효시켜, 맷돌로 갈아 여과한 것. 白酒(しろざけ)의 시작으로 博多(はかた)산의 것이 유명했다.

청주를 이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반면, 달걀의 흰자와 흰 설탕을 넣는다는 설명은 없다. 하지만 일본 사이트에서 검색해 본 결과 우리 국어사전에 실린 것과 같은 종류를 가리키고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제조해서 마시던 연주(煉酒)는 에도 시대에 성행했는데 한동안 맥이 끊겼다가 현대에 들어와 다시 제조법을 복원했다고 한다. 현재 일본에서 ‘박다연주(博多練酒)’라는 상표를 달아 판매하고 있다.

일본어사전 풀이에 나오는 ‘白酒(しろざけ)’는 중국 사람들이 수수로 빚어 마시는 독한 술인 ‘바이주(白酒)’와는 종류가 다르다. 다시 <고지엔>에 나오는 풀이를 보자.

しろざけ(白酒) : 진득진득하고 보얗게 흐린 술이다. 찐 차조와 쌀국수, 고춧가루를 미림 또는 청주, 소주에 혼합해 발효시킨 후 으깨서 만든다. 단맛이 풍부해서 일종의 특유한 향이 있다. 히나마츠리(雛祭り)에 사용한다.

풀이에 나오는 히나마츠리는 일본에서 3월3일에 여자 어린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하며 베푸는 행사다. 그날 여자 어린이가 있는 집에서는 인형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무병장수를 빌며, 친구들을 불러다 단술과 과자를 나누어 먹기도 한다. 이때 사용하는 술이 바로 ‘白酒(しろざけ)’이며, 아이들이 마실 수 있을 만큼 맛이 달고 도수가 약하다.

연주(煉酒)는 마치 요구르트처럼 끈적하고 유백색을 띠고 있으며 도수가 3% 정도여서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우리 국어사전 풀이에 음료라고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연주(煉酒)’를 제대로 풀이하려면 일본 사람들이 빚어 마시는 술이라는 설명과 함께 우리의 단술과 비슷한 종류라고 했어야 한다.

일본 술 이름이라는 이유로 우리 국어사전에서 뺄 필요는 없다. 일본 술뿐만 아니라 중국 술, 서양 술 이름도 국어사전 안에 꽤 많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술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도 마찬가지로 생산지의 국적은 분명히 밝혀 줘야 한다. 그게 기본이지만, 이름이 한자로 돼 있다 보니 우리 술로 착오를 일으킨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착오가 너무 많다는 게 우리 국어사전의 커다란 문제점이기도 하다.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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