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2021년 신년 기자회견이 있었다. 대통령으로서 이 대한민국에서 중요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자리였다. 이 나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과 소식 중에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올려지는 건 그야말로 국민적 관심사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기 내내 계속됐던 검찰 개혁을 둘러싼 소란에 끝없이 부동산값 상승, 매일 수백명 대를 유지하면서 꺾일 줄 모르는 코로나19 사태…. 이렇게 꼽기 시작하니 대통령이 언급할 만한 것들이 수십, 수백이다. 그런데도 굳이 나는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노동에 관해서 무어라고 말했는지 찾아봤다. 과거 어느 대통령보다 노동존중을 말해 왔던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라서 나는 그랬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2017년 5월 촛불대선의 승리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해서 공약했던 대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천명했고, 과거 정권에서는 기대조차 하지 않아서인지 나는 부디 공약했던 ‘노동존중 사회의 실현’을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는 나아가기를 조금은 기대했다. 그리고 4년, 기대는 점점 실망이 됐다.

2.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노동에 관해 언급한 부분을 찾아봤다. 재벌개혁을 위한 새로운 조치를 묻는 질문에 ‘공정경제 3법’이 통과한 것을 평가하고서 이에 덧붙여 말하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노동을 주제로 해서 한 질문이 아니었음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답변에 노동을 언급했던 것이다. 그 전문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노동존중 사회를 위해, 노동관계 3법도 다시 통과되고 그걸 통해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에도 우리가 비준을 할 수 있게 됐다. 그 비준안이 국회에서 처리 중에 있다. 이런 것을 통해서 노사관계도 보다 균형 있는 관계로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하나, 우리가 재벌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이제는 더 이상 일하다가 죽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대기업들이 하청을 통해서 위험을 외주화하고 외주화된 위험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 그런 일이 되풀이돼 국민을 아프게 하는 그런 중대한 재해들이 계속돼 왔다. 중대재해처벌법도 국회에서 통과됐다. 비록 내용에 있어서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또 경영계는 경영계대로 경영에 큰 압박이 될 것이라고 비판을 하고 있어서 서로 불만을 표시합니다만, 어쨌든 중요한 첫발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

3. 위와 같은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문에서 노동에 관해 언급한 것을 읽어 보면, 그것은 최근 국회에서 의결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에 관해 대통령으로서 평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모두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촛불대선에서 했던 공약 사항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ILO 기본협약 비준 및 그에 따른 노조법 등 법률개정은 물론, 중대재해 처벌강화도 공약했다.

사실, 의결된 중대재해처벌법의 내용보다도 더 강한 산업재해로부터의 노동자 보호를 공약했었다. “하청노동자 및 특수고용노동자 등 원청(도급)사업주의 사업상 영향권 내의 근로자 모두로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 개념 재정립”하고,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확대 및 의무가입”하며, “상시적으로 행해지는 유해‧위험한 작업의 사내하도급을 전면 금지”하고, “도급사업시 안전‧보건조치 규정 위반자에 대한 벌칙 강화로 원청사업주 책임 강화”하며, “중대재해와 산재다발 사업장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 강화”하는 내용으로 “산업현장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제‧개정”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산업재해 발생시 신고의무 위반 사용자에 형벌을 부과하고 양벌규정으로 규율, 산재은폐 사업장에 대해서는 사업주는 물론 은폐 가담 관련자 모두 일벌백계”하고, “산업현장 위험 발생 후 작업 재개시 동의권을 원‧하청 근로자 모두에게 부여”하며, “물질안전보건 자료를 작성하는 자가 일부 내용을 영업비밀을 이유로 기재하지 않으려 할 때, ‘물질안전보건자료공개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내용으로 “산업재해 발생 사업장에 대한 책임 강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상과 같이 문재인 대통령이 했던 공약의 내용과 비교해 국회에서 의결된 중대재해처벌법을 한 번 읽어 보라. 그러면 당신은 그 내용에 있어서 부족한 것이라고 비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서 “어쨌든 중요한 첫발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고 문재인 대통령은 밝혔지만, 노동계가 비판하는 바와 같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임기가 4년이 지나 1년여를 남겨 두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이제야 공약 이행의 첫발을 내디뎠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 한참 부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이렇게 기자회견문을 읽고 나니 나는 갑자기 문재인 대통령은 첫발을 내디딘 것에 자족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까지 든다.

4. ILO 기본협약 비준에 관해서는 이 칼럼을 포함해서 나는 여러 차례 말해 왔다. 그러니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이 밝힌 바를 살피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나는 했던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다시 살펴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촛불대선에서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제87호, 1948, 147개국 비준),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제98호, 1949, 156개국 비준), 강제노동 협약(제29호, 1930, 171개국 비준)과 강제노동 철폐 협약(제105호, 1957, 167개국 비준) 비준”과 “ILO 핵심협약 비준에 따른 국내법 개정”을 하겠다고, 그래서 “국가위상에 걸맞는 노동기본권 보장을 이루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지난해 말, 국회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노조법 등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고, ILO 기본협약 비준을 추진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현재 상황에 대해 “노동존중 사회를 위해, 노동관계 3법도 다시 통과되고 그걸 통해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에도 우리가 비준을 할 수 있게 됐”고, “그 비준안이 국회에서 처리 중에 있다”고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이다. 사실 이와 관련해 내 관심사는 ILO 기본협약을 비준한다는 데에 있다. 어서 빨리 비준하기를 바라고 있다. 심지어 ILO 기본협약에 반하는 노조법 등 법률 개정을 하지 않더라도, 그저 신속히 비준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니 ILO 기본협약에 부합하지 않는 법률 개정이라는 데 대해서 굳이 논쟁하고 싶지도 않다. 괜히 그 때문에 협약 비준이 뒤로 미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어서 문재인 정부가 비준하기만을 바라고 바랄 뿐이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와 같이 비준을 “통해서 노사관계도 보다 균형 있는 관계로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노동자의 자유, 노동자끼리 단결해서 교섭과 행동 등 활동할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ILO 기본협약 비준을 통해서 그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5. 이상과 같이 2021년 1월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읽고 보니 2017년 5월 취임 일성으로 노동존중 사회의 실현을 외쳤던 문 대통령의 의지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 의지가 꺾인 것을 읽게 된다. 그동안 틈만 있으면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을 말해 왔다. 노동자, 노동조합,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 등 노동자를 위한다는 말을 임기 내내 해 왔다. 그래서 어떨 때에는 노동자정당이 집권한 유럽 나라의 총리나 대통령이라도 그 정도로 자주 말하진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공약한 대로 이행되지 않아도, 나라 경제 등 현실을 고려해서 정책을 마련해 집행해야 하기 때문에 의지가 담긴 대통령의 말이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4년 내내 했던 대통령의 말은 그랬다. 그러니 그 말에 담긴 대통령의 뜻,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까지는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4년여가 흘러갔다. 이 문재인의 나라에서는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노동자들의 거센 투쟁은 찾아볼 수 없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가장 조용했던 4년여였다. 대통령의 ‘노동존중’의 말에 기대서 이 나라 노동운동은 조용했던 것인가. 비정규직, 특수고용직에 대한 갖가지 노동권 침해가 있을 때면 대통령이 말하고 나섰고, 그것으로 마무리돼 버렸다. 분명히 거기서도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투쟁했음에도 노동운동으로 쟁취했다고 말하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과거 어느 정권보다 노동자 편이라는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운동은, 그 권력에 기대서 요구하고 행동해 온 것인가. 이제 임기 1년여를 남겨둔 오늘,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존중 사회 실현의 말이 이 나라 노동운동에게 무엇이었는가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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