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기국회에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통과했다. 그런데 협약 비준 동의안은 관련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먼저 법을 개정하고 비준해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정부와 여당 논리였다. 그런데 스스로 정한 절차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2월 임시국회에서 다룰 가능성이 있지만, 이어질 보궐선거 국면에서 표류할 수도 있다.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겠다는 정권과 여당의 의지는 의심받고 있다.

실망스러운 국회, 해야 할 일은 하라
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
 

▲ 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
▲ 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

필자는 약 두 달 전 이 지면을 통해 정부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 의지를 언급하며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은 ILO 기본협약 비준을 대비해 국내의 노사관계 법령을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개정함을 도모하면서도 우리나라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한 절충안으로 평가한다고도 했다. 내용상 약간 수정이 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이 유지되면서 지난해 12월9일 노조법이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달 5일 공포돼, 올해 7월6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노동계는 ‘사상 최대 개악’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매우 비판적인 견해들도 많았다. 그러나 필자가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은, 아무래도 지난 정기 국회에서는 반드시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국회 통과와 함께 곧 ILO 기본협약 비준동의 절차가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바람이 무색하게도 국회에서는 ILO 기본협약 비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협약 비준동의 절차를 담당하고 있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회의록을 살펴보면, 지난해 11월30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동의에 대한 논의를 하기는 했다. 그러나 일단 노조법 개정안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과해야 비준동의안을 처리할 수 있다는 입장(김기현 국민의힘 의원)과 비준동의안을 먼저 처리해야 환노위에서도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입장(소위원장 김영호·윤건영·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립했다.

비준동의안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쪽은 한국의 ILO 기본협약 미비준을 문제삼고 있는 유럽연합(EU)에 대한 시그널 등 사안의 시급함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지만, 대립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논의 중 회의가 중지되고 의사록에는 공개되지 않은 비공개 논의가 있고 난 뒤, 환노위 법안심사 결과를 보고 비준 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후 추가적인 논의는 아직까지 진행되지 않았다. 382회 국회 정기회가 종료된 뒤 393회 국회 임시회가 열렸지만, 외통위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은 채 지난 8일 임시회도 종료했다.

외통위가 개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 힘겨루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치적 입장이 당장 눈앞에 놓인 유럽연합과의 분쟁보다 중요한 것인지는, 정치를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정치를 해보지 않은 국민으로서는 특정당의 정치적 입장보다는 유럽연합과의 분쟁에 따른 국익 손상이 더 큰 문제다. 한 언론 기사에 따르면 톰 젠킨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국내자문그룹 의장은 “EU와의 FTA에 따라 완전히 적용하고 시행해야 하는 ILO 기본협약 비준을 추진하는 데 있어 한국 국회가 진전이 없는 점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고 한다(2021년 1월6일 서울신문).

외통위 위원 중에는 직전 고용노동부 장관이었던 김영주 의원이 있다. 사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과 ILO 기본협약 비준에 관한 논의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됐던 김 의원이 시작한 일이다. 침체기에 빠졌던 노사관계 법·제도 개선에 관한 논의가 활성화하기 시작한 것도, 국정과제로서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시작된 것도 김영주 의원이 노동부 장관이었던 시기의 일이다.

김 의원이 외통위 법안심사소위 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ILO 기본협약 비준동의안 처리 논의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김영주 의원이 외교통일위원회 구성원인데도 ILO 기본협약 비준 동의안이 아직까지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실망스러운 일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근래 국회 모습을 보다 보면 다음과 같은 시 구절을 읊조리게 된다.

“너무 많은 길을 가리키고 서 있는 표지판과 / 너무 많은 방향으로 날아오르는 새들과 / 너무 많은 바다로 가는 배들과 / 너무 많은 돌멩이들 / (중략)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허연의 시,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중)

노사정은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해야 할 일은 했다. 국회의 역할이 남아 있을 뿐이다. 수많은 표지판과 새들과 배들과 돌멩이들인데도 해야 할 일은 명확하지 않은가.

문재인 정권 ILO 협약 비준, 0개로 끝나나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문재인 정권 5년차다. 그런데 지금껏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은 없다. ‘핵심협약’으로 노사정 모두가 오역하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에 관한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s)만이 아니다. 190개 협약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기술협약(Technical Conventions)도 비준한 게 하나 없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일하는 시간·임금·안전과 보건·모성보호·사회보장·농업근로감독 등 근무조건과 환경을 규율하는 기술협약이야 말로 ‘핵심협약’이다.

대한민국은 1991년 12월 ILO에 가입했다. 이후 노태우 정부는 3개 협약, 김영삼 정부는 4개 협약(기본협약 1개 포함), 김대중 정부는 11개 협약(기본협약 3개 포함), 노무현 정부는 6개 협약, 이명박 정부는 4개 협약, 박근혜 정부는 1개 협약을 비준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하나의 협약도 비준하지 않고 있다. 필자는 비준을 안 한다는 표현을 썼다. 의지가 있었다면 집권 첫해에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권은 입법을 완성해야 비준할 수 있다는 ‘선입법-후비준’ 논리로 비준을 회피했다.

필자가 누차 주장했듯이 ‘선입법-후비준’은 사기극이다. 입법을 제대로 완성해 협약을 비준한 사례는 없다. 주 40시간 근무를 규정한 ILO 협약 47호를 보라.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11월 비준했다. 이 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세계적으로 한국을 포함해 15개에 불과하다. 한국은 주 48시간 근무를 규정한 협약 1호조차 비준하지 않는 나라다. 세계적으로 1호 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52개나 된다. 지금도 대한민국 정부는 주 68시간 근무를 합법으로 간주한다. 이런 나라에서 십 년도 전에 주 40시간 협약 비준을 위한 입법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산업안전보건 협약은 더 가관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4월 화학물질 안전에 관한 협약 170호가 비준된다. 이 협약에 따르면 노동자는 자신이 일하는 일터에서 사용되는 각종 물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11월 발암물질 금지 및 통제를 규정한 협약 139호(1974년 채택)가 비준된다. 이 협약은 노동자에게 취업 기간은 물론 퇴직 후에도 발암물질과 관련된 의학적 검사와 생물학적 조사를 제공받을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화학물질관리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비롯한 관련 법령은 이러한 노동자의 권리에 침묵하고 있다.

이미 비준한 기본협약인 고용과 직업에서의 차별을 금지한 111호는 또 어떤가. 21세기에 들어선 지 스무 해가 넘도록 기독교 집단이 반발한다고 차별금지법 하나 못 만들고 있다. 그런데, 직업이 노동자임에도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차별이 가득한 나라에서 스무 해도 전인 1998년 12월 각종 차별을 금지한 111호 협약을 버젓이 비준해 놓았다.

입법 완성도를 양적인 수치로 평가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이 이미 비준한 29개 협약과 관련된 국내 법령들의 완성도는 70점에나 미칠지 모르겠다. 이를 감안할 때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금지를 통한 노동자의 단체교섭권 보장’을 규정한 ILO 협약 98호는 대한민국 정부가 ILO에 가입했을 때인 1991년 이미 비준이 이뤄졌어야 한다. 당시에도 관련 법령의 완성도는 70점을 훨씬 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ILO 기본협약은 노동권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시민권에 관한 것이다. 1930년 채택된 29호 강제노동 협약은 식민지 ‘노예노동(slavery labour)’을 ‘자유로운 임금노동(free wage labour)’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것이다. 1948년 채택된 87호 협약은 사용자만 누리는 결사의 자유를 노동자에게도 동등하게 보장하라는 것이다. 1949년 채택된 98호 협약은 노동자들이 단체를 만들어 사용자와 대등하게 교섭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에 대한 차별 행위(acts of anti-union discrimination)’, 즉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과 기준은 대한민국 헌법과 대한민국 정부가 이미 비준해 놓은 여러 국제조약들의 뼈대를 이루고 있으며, 노동법을 비롯한 국내의 사회권 관련 법령에도 내용적으로 녹아 있다. 더군다나 지금은 비준을 사사건건 방해한 관료와 법기술자들의 논리인 ‘선입법’이 이미 완료된 상태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문재인-더불어민주당 정권은 비준 일정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비준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 판단하는 이유다.

글을 맺으며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105호 협약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이 협약 역시 노동권이 아니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 자유주의적 원칙에 관한 것이다. 기성의 정치·사회·경제 질서에 반대하는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을 가하면 안 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내란 선동 혐의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고 이석기를 감옥에 가둔 사법부의 결정은 이 협약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사상의 자유와 관련된 ILO 기준으로, 8개 기본협약의 하나인 105호는 국무회의 안건조차 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노동계와 시민사회 역시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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