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해 왔던 베테랑 고참 활동가들이 움직여서일까, 아니면 잠재해 있던 필요성이 컸기 때문일까. 단 4개월의 활동 결과로 지난해 12월 ‘경기중부 아파트노동자협회’가 만들어졌다. 지난해 하반기 안양군포의왕과천 비정규센터 활동 결과다.

아파트 노동자 자조모임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했던 이들의 활동은 해당 지자체의 조례 제정으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9월에는 ‘군포시 공동주택 경비원 인권 증진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다. 같은해 11월에는 ‘의왕시 공동주택 노동자 인권 증진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다. 시의회에서 아직 통과하지 않았지만, 같은해 11월에 ‘안양시 공동주택 경비원 인권 증진에 관한 조례안’과 ‘과천시 공동주택 노동자 인권 증진에 관한 조례안’이 각각 입법예고 됐다.

8월 염천의 뜨거운 햇볕을 마다하지 않고 관내 모든 아파트 단지를 찾아다니며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안양의 한 아파트 단지 노동자 체불임금을 해결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관리소장과 경비노동자 간 갈등을 중재하기도 하고, 경비노동자 고충상담도 했다. 입주자대표와 경비노동자 간 상생을 모색하기 위한 간담회도 열고, 경기중부지역에서는 최초로 아파트 상생협약을 체결하는 단지도 생겨났다.

이쯤에서 이 사업이 시작된 배경을 조금 설명해야겠다. 지난해 하반기에 경기도에서 ‘취약노동자 조직화 지원사업’을 추진했다.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는 미조직 취약노동자들의 자조모임의 육성과 이해대변조직 형성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사업을 추진할 세 개의 단체가 선정됐고, 각 단체는 자체적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사업 성과를 보고했다. 세 단체는 ‘안양의왕군포과천 비정규센터’와 ‘일하는사람들의생활공제회 좋은이웃’, 그리고 ‘경기지역대리운전노조’였다. 각 단체에 주어진 예산은 5천만원이었다.

짧은 글에서 이들 세 단체의 활동을 다 설명할 수는 없어 핵심 내용만 전한다. 안산지역의 좋은이웃은 아파트 경비·청소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과 아파트 상생협약 체결 사업, 지역의 제조업종으로 사회 진출하게 될 현장 실습생 모임을 준비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번 칼럼에서 소개한 바 있는 공동근로복지기금을 활용한 지역노동공제회를 만들기 위한 계기를 마련했다. 대리운전노조는 경기도 4개 권역별 자조모임을 만들고, 교육사업·실태조사와 함께 대리운전 가이드북을 제작하고 있다.

이 활동에서 두 가지 점에 주목한다.

하나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동사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어느 조직인들 그렇지 않겠는가마는 임기가 있는 선출직 행정기관의 장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는 경향이 있다. 행정기관 장은 제도를 만들 수 있는 권력이기 때문에 제도적 성과를 중시한다. 제도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로 포장하기 좋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플랫폼 공제조합 법안이 그렇다. 플랫폼 노동공제를 만들기 위해 주체와 형식, 그리고 사업의 내용 등과 관련한 여러 가지 논의들이 민간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불쑥 법으로 만들어 내리꽂는 식이다.

경기도의 모든 사업을 평가할 수 없지만 적어도 ‘경기도 취약노동자 조직화 지원사업’만큼은 경기도가 지원자의 태도를 견지했다.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했다. 사업 내용을 가지고 이래라저래라 간섭했으면 노동운동에서 잔뼈가 굵은 활동가들이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러했으면 사업은 형식적인 진행과 적당한 성과 보고로 끝이 나거나 중도에 중단됐을 것이다. 앞으로 이 사업은 행정기관의 지원과 민간 당사자 조직의 자율성이 제대로 발휘된 사례로 인용될 수 있다.

둘째는 마중물 역할이다. 앞의 내용과도 연관돼 있다. 사회적 경제사업, 노동공제회 사업을 진행하면서 마중물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마중물은 마중물이다. 아니, 마중물은 마중물이어야 한다. 나는 마중물의 성질보다는 마중물의 기능을 주요하게 바라본다. 땅속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 펌프에 붓는 마중물은 땅속 물과 같은 성질일 필요가 없다. 땅속 물을 긷는 역할이 끝나면 마중물은 더는 필요 없다. 하지만 물을 긷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지금도 마중물을 찾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을 주체적이지 못하다고 치부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펌프가 아니라 강에서 물을 끌어오는 오랜 수고다.

정리하자. 행정기관과 민간 자율조직의 공동사업이 제대로 되려면 각자의 역할과 기능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창의적인 결과를 내고 싶다면 민간 조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그러한 사례를 봤고, 널리 알리고 싶어 이 글을 쓴다.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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