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지난해 9월22일 10만명의 국민동의청원으로 발의한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과 국회의원이 발의한 5건의 법률안을 통합해 법사위 대안으로 제안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이달 8일 임시국회 마지막 날 가결됐다.

하지만 법 제정까지 집권 여당과 정부가 얼마나 무능하고 지리멸렬했는지를, 그리고 보수 야당의 기만적인 파렴치함을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지난해 정기국회가 끝나도록 10번 이상의 헛된 약속을 남발한 이낙연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은 법안조차 상정하지 못한 채 궁색한 변명을 되풀이했다. 뒷짐 지고 훈수만 두던 보수 야당은 변죽만 울린 채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하루 7명의 노동자가 퇴근하지 못하는 참혹한 죽음의 일터를 바꾸겠다는 의지는 이들에게서 눈곱만큼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의 기만적인 태도는, 이번에는 기필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 노동자·시민의 죽음을 멈추고, 기업의 살인행위를 제대로 처벌하겠다는 결의를 더욱 높이게 했다. 산재 사망사고 아픔을 겪은 유족들과 비정규 노동자들은 국회와 청와대 앞에서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차가운 추위와 혼란스러운 코로나19 상황을 뚫고 전국에서 많은 시민과 노동자들이 캠페인·농성·동조단식·행진으로 함께했다.

결국 더 이상 눈치 보기와 방관, 변명을 늘어놓을 수 없게 된 국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임시국회에서 처음으로 다뤘다.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연대의 법안보다 훨씬 후퇴한 정부안과 여야 합의안은 법 취지를 훼손시키며 노동자·시민들을 실망하게 했다. 중소 영세 사업장을 보호하겠다며 5명 미만 사업장 법적용 배제와 50명 미만 사업장 시행 3년 유예를 포함시켜 분노케 했다.

법 취지 훼손 논란 속에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연대와 산재 유가족의 외침·선언을 정부와 국회는 겸허히 받아야 할 것이다. ‘사람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 중대재해처벌법이 가져가야 할 과제와 ‘법 제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의미를.

우선 대통령령을 제대로 제정해야 한다. 지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처럼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더욱 협소한 법으로 만들어 버리는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기업 처벌의 하한선 기준을 1년 이상의 징역으로만 규정하고 벌금의 하한선 기준을 마련하지 못한 부분도 문제다. 12일 발표한 대법원의 양형기준은 과거보다는 확대했다고 하나 여전히 기업 처벌을 제대로 하기엔 매우 미흡하다. 더욱 문제는 여전히 산재 사망사고를 기업의 살인 행위로 인한 사고임을 인정하지 않은 점이다. 3월29일 기준안 확정까지 노동자·시민의 의견을 수렴해 제대로 기업을 처벌할 수 있는 양형기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법 제정이 끝나자마자 3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했다. 석탄 운송업체 금호 TNT의 하청업체에서 컨베이어 점검 중이던 노동자가 협착사고로 숨졌고, 폐플라스틱 재생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플라스틱 파쇄기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부산의 오피스텔 공사현장에서 방수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9층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50명 미만 사업장 시행 유예와 5명 미만 사업장 적용배제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중소 영세사업장을 보호하기는커녕 더 많은 하청구조와 위험의 외주화를 양산할 뿐이다.

그렇다. 법이 만들어졌지만 이제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름부터 애매모호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재사망을 초래한 기업과 그 대표를 제대로 처벌하고, 유예와 배제가 없는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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