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준규 공인노무사(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지난해 12월20일 경기도 포천에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30)씨가 그의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사망하기 전날은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내려간 한파였다. 그런데 그의 숙소에는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포천경찰서는 국과수에 의뢰해 그를 부검했다. 간경화에 의한 혈관파열과 합병증으로 사망했고, 동사(凍死)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자가 기계에 끼이거나 추락하는 것처럼 사고로 사망하는 것이 아닌,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했을 때 노동자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필요한 일일 수 있다. 왜냐면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밝혀서 책임을 묻게 하고, 손해를 배상하게 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죽음의 원인이 일 때문이었다면, 그것을 개선해 살아남은 노동자가 더 이상 죽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는 노동자가 일이 아닌 다른 이유로 아프다는 것을 떠올리기 어렵다. 그러나 노동자 건강권, 노동안전보건이라는 말을 접해 볼 길이 없는 노동자들은 사고로 크게 다치지 않는 이상 자신이 아픈 것이 일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하다 보면 아픈 건 당연한 거야’ ‘아플 나이가 돼서 아픈 거야’라며 산재 신청을 하지 못하고 자기가 짊어지게 된다. 물론 아예 산재보험 문 밖에 서 있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어찌어찌해 산재 신청을 하더라도 난관이 발생한다. 아픈 게 일 때문이라는 것을 노동자가 증명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의학적·과학적으로 엄밀히 심사하는 경향도 존재한다. 일 때문에 노동자가 아픈 게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가 그들에게 왜 그토록 중요하고 궁금한 일인지 궁금할 지경이다.

노동자의 건강이 결정되는 것은 단순히 작업장에서의 유해요인 때문만이 아니다. 기술·법·제도·인종·성별·경제력 등 사회적 요인으로 결정된다. 그리고 그 여러 가지 사회적 결정요인은 구조적으로 결정된다고 한다.

어렵다. 그렇지만 노동자가 아픈 게 일 때문이었는지 원인을 찾고자 한다면 적당히 멈춰서는 안 된다. 그 원인을 만든 원인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의 보이지 않는 고통까지 헤아려야 한다.

속헹의 죽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앞서 했던 생각들을 장착하고 속헹이 묵었던 비닐하우스 앞에 섰을 때 무너져 내림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사람을 살게 했던 것이고 집이라 할 수 없는 곳을 집이라며 돈을 받았던 것이다.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딱 이 정도 수준이구나. 한참 멀었구나. 지금의 한국이 일하는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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