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 공공운수노조

“간격 좀 더 벌려 주세요. 나눠 준 페이스 실드(얼굴 가리개) 써 주세요.”

영하의 강추위 속 철도공사(코레일) 자회사 노동자 50여명이 10일 오전 서울역사에 모였다. 외투 위 방역복을 껴입은 이들은 철도노조 관계자의 지시대로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차단하려 페이스 실드를 착용했다.

처우 개선과 정년 연장을 요구하며 지난해 11월 시작한 코레일 자회사 노동자의 파업이 62일차를 맞았다. 코레일네트웍스 노사는 2019년 12월 역무직·주차직 정년은 만 62세로 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사측은 지키지 않았고 지난해 12월31일부로 206명의 노동자가 일터를 잃었다. 20년 일해도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도 그대로다.

지난 9일 조상수 철도노조 위원장과 서재유 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장, 조지현 노조 철도고객센터지부장, 황상길 노조 서울지방본부장이 단식에 돌입했다. 매일 49명의 조합원들이 돌아가며 동조단식을 진행 중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격상으로 모두가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이때 왜 노동자들은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해고노동자 시름
“의사가 자살 충동 우려해”

“회사에 속았어요. 2017년 4월 코레일네트웍스 계약직으로 들어갔어요. 그러다 어느날 한꺼번에 불러 모아 사인을 받아 갔어요. 꼭 정규직이 돼 모든 게 나아질 것처럼 이야기하고요. 그런데 정작 정년 축소와 같은 중요한 이야기를 안 해 줬어요. 계약직으로 일하면 만 70세까지 일할 수 있었을 텐데….”

코레일네트웍스에서 주차직으로 일하던 김진수(62·가명)씨는 지난해 말 해고됐다. 그는 계약직으로 입사하던 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전환 뒤 정년이 만 70세에서 61세로 줄었다.

2019년 12월 노사는 같은해 단체협약 체결이 지연되면서 “무기계약직의 정년은 2019년부터 만 61세로 하되, 역무직 및 주차직의 정년은 만 62세로 한다”고 우선 합의했다. 하지만 회사는 1년 넘게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김씨는 “적어도 만 62살까지라도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집사람과 거기에 맞춰 재정계획을 세워 뒀다”며 “그런데 두 번의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씨는 해고 통보를 받은 이후 건강이 부쩍 나빠졌다. 최근 원인 모를 통증 탓에 통증의학과와 신경과·정신과까지 다니고 있다. 정신과 검진 결과 “자살 가능성이 높아 주의해 살펴야 한다”는 소견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갑자기 일을 중단하게 되니 몸이 자꾸 아프다”며 “정년퇴직하면 갑자기 죽는 사람도 있다던데, 아마 이런 경우인 것 같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일요일인 이날도 병원을 찾았다.

정년초과자도 무기계약직 전환 … “실적 내기 급급”

경강선 초월역 역장으로 2014년부터 일해 온 남기석(65)씨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지 1년 만인 지난해 12월 해고됐다. 애초 민간업체 소속이던 그는 2019년 12월 코레일네트웍스에 직접고용 됐다. 당시 나이는 만 64세로 이미 코레일네트웍스 정년(만 61세)을 초과한 상태였다. 소속을 바꾸더라도 고용형태를 기간제로 했다면 회사 정년과 무관하게 계약을 갱신해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정년 초과자들도 무기계약직 전환을 밀어붙였다.

남씨는 “원래 회사는 만 67세 정년으로, 건강이 허락하면 만 70세까지 일하게 해 줬다”며 “전환 당시 1년짜리 계약서를 쓰고 갔지만, 민간업체 당시처럼 최소 3년 고용은 보장받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1년 일하고 그만둬야 할 것 같으면 누가 전환에 동의했겠냐”고 반문했다.

노조는 모회사 코레일과 코레일네트웍스가 정규직 전환 실적 채우기에 급급해 60세 이상 기간제 노동자를 그 의사와 상관없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고 보고 있다.

당장 정년이 닥치지 않은 노동자도 이들과 연대해 싸우고 있다. 철도 안 질서유지 업무를 하는 질서지킴이 안지선(52·가명)씨는 지난 9일에 이어 10일도 동조단식에 참가했다. 지난해 공채 시험을 보고 코레일네트웍스에 입사한 안씨는 “질서지킴이들은 모두 102명 있었는데 이 중 80여명이 12월31일자로 정년 만료를 이유로 해고됐다”며 “선배님들과 1년 만이라도 같이 일하려고 투쟁에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씨와 함께 공채로 입사한 사람 중 5명은 만 61세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1년뿐이지만, 코레일네트웍스는 ‘무기계약직’으로 근로계약을 맺었다.

노사 교섭 평행선
“코레일이 책임져라”

노조는 지난 21일 △총 인건비 내 4.3% 인상 △시중노임단가 100%에 따른 예산 확보된 금액 일시금 지급 △시중노임단가 100% 적용(2021년 7월부터) △정년 연장 방안을 제시했다. 인건비와 시중노임단가를 포함한 임금과 관련해서는 기존 요구안보다 양보한 것이다. 하지만 노사 이견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조지현 노조 철도고객센터지부장은 “지난달 21일 사측은 매출하락을 이유로 1.6% 가량의 인상안을 제시했고, 고용안정 방안에 대한 진전된 안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한국철도공사 코레일이 여기 있는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으로 이 파업 사태를 해결해야 할 주체”라며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1월12일 2차 대책회의 날까지 회사에 진전된 안을 제출하도록 한 상태다. <매일노동뉴스>는 코레일네트웍스 입장을 들으려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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