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2020년, 청년유니온 6기 집행부에 합류하면서 처음 맡게 된 업무는 총선대응이었다. 청년 노동을 주요 의제로 정책 요구안을 만들고 정책협약이나 정책질의를 통해 각 후보와 정당에 우리가 만든 정책 아이디어를 공약에 반영해 줄 것을 요구했다. 유권자에게 선거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었다. 중요한 역할이지만 운동으로 풀어내는 작업은 정말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확산 초기였기에 모든 이슈가 코로나19로 수렴되는 상황이었고, 주로 오프라인을 통해 시민을 만나 왔던 우리는 발이 묶였다.

여기에 정치적 파트너로 처음 마주했던 정당과 후보는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원래 그랬던 걸까. 그 선거에서만 유독 그런 모습이었던 걸까. 학교에서는 후보자의 정책을 꼭 살펴보고 뽑으라고 가르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책을 잘 아는 사람을 우리의 대표로 뽑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현실정치가 아무리 교과서·이론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유의미한 정책 경쟁은 사라졌고 하나라도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가고자 하는 꼼수만 난무했다. 그들이 낯부끄러운 꼼수를 부리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건 과반수였다. 눈을 감고 귀를 닫아 버린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선거 결과를 지켜보며 스스로 무기력해졌다. 내 손으로 또 다른 거대한 권력 형성에 동조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여지없이 현실이 됐다.

물론 174석이나 차지했으니 시민들의 요구를 담아낸 법안, 우리 삶에 진짜 필요한 법안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으리라는 현실적인 기대를 했다. 그러나 실체는 우리가 견제해야 할 거대한 권력이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당헌을 바꿔 가면서까지 보궐선거가 진행되는 서울시·부산시 두 곳 모두 당헌을 후보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코로나19를 핑계로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종료시키며 절차의 정당성으로 합리화했다. 그리고 10만 국민동의 청원으로 입법 발의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미루고 미뤄 해를 넘겼다. 결국 막판 논의과정에서 법안은 누더기가 됐다.

새해가 밝았고 한국 사회의 현재를 보여주듯 한파가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새해에는’이라며 설레는 소망을 빌기에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절박한 사람들이 많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하나만 바라보고 단식에 들어간 유가족분들, 그저 올해에도 일하고 싶어 파업을 시작했지만 사측 용역의 방해로 식사마저 빼앗긴 분들,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서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는 피해자.

언급한 내용은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 소모품처럼 쓰다 버려지는 일자리가 아닌 고용안정이 보장되는 일자리,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터. 일하는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이지만 ‘유니콘’이라도 되는 듯 한정된 누군가만 누릴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적어도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우리는 당연한 권리를 외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지난 총선 때 만들었지만 적극적으로 배포하지 못했던 거울 굿즈가 있다. 거울 뒷면에는 ‘정치는 시민의 얼굴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선거는 시민을 대변하는 사람을 뽑는 행사이니 제대로 투표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물론 받는 사람이 그다지 기분 좋을 만한 문구는 아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정치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시민의 힘이라고 믿는다.

8일을 기준으로 2021년 재·보궐선거가 89일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시장·부산시장이 갖는 정치적 위치는 우리 삶에 직접적인 변화로 다가오기에 정말 중요한 선거다. 어쩌면 지난 총선에서는 하지 못했던 진짜 ‘견제’를 꼭 해야 하는 순간일 것이다. 거대 양당이 서로 견제를 위한 견제를 하고 있는 모양새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이야기할 수 있는 정치, 혹은 지금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정치를 만들기 위한 견제가 필요한 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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