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 끝에 7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를 통과했다. 법안은 8일 본회의에서 처리된다.

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기업의 경영책임자가 재해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관리 조치를 하지 않아 1명 이상 목숨을 잃는 경우 징역 1년 이상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또 중대재해로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기업에 최대 50억원의 벌금에 처한다. 우리나라 기업의 80%를 차지하는 5명 미만 기업은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또 50명 미만 사업장도 법 시행 후 3년간 적용을 유예한다. 산업재해 사망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 중대재해에 눈감는 법을 만들었다는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중대재해 경영책임자 빠져나갈 구멍 만들고
기업 솜방망이 처벌 가능한 구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중대재해가 작업자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위험을 알고도 방치한 기업의 범죄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마련됐다. 안전관리 주체인 법인과 결정권자인 경영책임자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핵심이다.

법사위는 지난달 29일과 30일, 이달 5~7일 여섯 차례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심의했다. 법안소위가 열릴 때마다 법안은 후퇴했다. 특히 경영책임자와 법인 처벌은 정부가 제시한 안에도 크게 못 미쳤다. 당초 정부는 사망사고를 일으킨 경영책임자에 2년 이상 징역 또는 5천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벌금형을 제시했는데 심의 과정에서 1년 이상 징역으로 후퇴했다. 법인의 경우 최대 50억원으로 양벌규정 상한을 높였으나 하한형을 아예 없앴다. 최근 5년간 법원이 산재사망을 일으킨 기업에 부과하는 벌금은 평균 500만원이 넘지 않는다. 또 징벌적 손해배상의 경우 손해액의 5배 이상에서, 5배 이하로 결정했다. 경영책임자나 법인이 주의,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할 경우 처벌하지 않는 면책조항도 포함됐다.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법안소위는 또 5년간 안전 의무 등을 3회 이상 위반할 경우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삭제했다. 다만 5년 내 사고가 발생한 경우 법인의 전년 매출액 10% 이내에서 가중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경영책임자 범위를 당초 대표이사 및 이사라고 명시한 부분을 삭제하고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수정한 것이다. 노동계는 “기업에서 안전보건 담당 이사를 방패막이로 세워 실질적인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피해가도록 길을 터줬다”고 비판한다.

경영책임자 의무도 대폭 축소됐다. 애초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이나 강은미 정의당 의원안에는 건설업과 조선업의 발주도 법 적용을 받도록 했다. 그런데 법안소위에서 이 부분이 통째로 빠졌다. 정의당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발주처의 공기단축과 공법 변경 금지, 일터 괴롭힘 등 건강장애에 대한 경영책임자 의무는 새로운 내용이 아닌데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에서 제외했다”며 “지난해 12월21일까지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중대재해 사망자의 58%가 건설업에서 발생한 점을 비춰보면 알맹이 빠진 법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 김동명(사진 왼쪽)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봉현 대외협력실장이 7일 오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심의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가 열린 국회 본관 안에서 피켓시위를 했다.<한국노총>
▲ 김동명(사진 왼쪽)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봉현 대외협력실장이 7일 오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심의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가 열린 국회 본관 안에서 피켓시위를 했다.<한국노총>

5명 미만은 배제, 50명 미만은 유예
공무원 처벌은 없던 일로

법사위 법안소위는 늦어도 6일께는 심의를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5명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를 들고나오면서 회의가 길어졌다. 백혜련 법사위 여당 간사가 밝힌 5명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근거는 ‘중소벤처기업부의 강력한 요구’ 단 하나다. 지금까지 발의된 의원입법안에는 관련 조항이 없고, 정부부처 협의 과정에서도 5명 미만 사업장을 제외한다는 논의는 없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우리가 원한 건 처벌이지 차별이 아니다”며 “서울시장 출마를 재고 있는 유력 장관 말 한마디에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목숨마저 차별을 받게 됐다”고 비판했다.

5명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 문제는 원청의 처벌 면제 가능성 때문에 논란이 컸다. 백혜련 간사는 이날 법안 후퇴에 항의하려 국회를 찾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나 “5명 미만 사업장의 사업주는 경영책임자 범위에서 제외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처벌을 받고 원청 책임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처벌받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강조했다. 김동명 위원장은 이날 오전 법안소위가 열리는 국회 본관에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사람도 아니냐”며 “국회는 살인행위를 중단하라”고 피켓시위를 했다.

법안소위가 합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 3조(적용범위)는 “상시근로자가 5명 미만 사업 또는 사업주(개인사업주에 한정) 또는 경영책임자에 이 장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5조(도급 및 위탁관계에서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의 귀속)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제3자에게 도급, 용역, 위탁 등을 행한 경우에는 제3자의 종사자에게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다만 이때도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의 시설·장비·장소 등에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로 한정했다. 임대는 제외했다. 5명 미만 사업장은 적용 제외하더라도 5조에 따라 원청에 대한 처벌은 가능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법안소위는 7일 오전에는 50명 미만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공사)은 공포 후 3년간 법을 적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정부는 300명 미만 사업장까지 법 적용 유예를 요구했지만 ‘5명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 반발 여론에 부담을 느낀 여당측이 수용하지 않았다. 50명 미만 사업장은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의 98%에 이른다. 법 적용을 유예하면 전체 사업장의 1.2%만 적용받는 꼴이 된다.

법안소위는 16조(정부의 역할과 사업주 등에 대한 지원)를 신설해 정부가 중대재해 예방사업에 소요되는 비용 전부 또는 일부를 예산 범위에서 지원하도록 명시하고, 법 공포 즉시 시행하도록 했다.

공무원 처벌 조항은 아예 없던 일이 됐다. 정부안에서 직무유기가 입증된 공무원을 처벌하는 방안이 법안소위 논의 과정에서 “공무원의 주의의무 위반과 사고의 상당인과관계를 묻기 어렵다”며 조항을 통째로 삭제해 버렸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심의를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숭숭 구멍이 뚫린 그물 사이로 중대재해를 유발하고 발생시킨 주범이 유유히 빠져 달아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며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게, 모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지켜질 수 있게 온전하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호소했다.

직업병 종류·경영책임자 책임범위 하위법령에 위임

중대재해에 포함된 직업병을 하위법령으로 위임한 점도 논란이다. 법안소위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도 중대산업재해에 포함했는데 구체적인 질병 종류는 급성중독 외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이미 2년 전부터 업무상질병에 따른 사망자수가 업무상사고 사망자수를 추월하고 있다. 2018년 업무상질병 사망자는 993명으로 전년 대비 22.8% 증가한 반면 업무상사고 사망자수는 963명으로 5명 감소했다. 집배원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삼성반도체 직업병 같은 ‘질병’ 문제가 중대재해 범위에서 비껴갈 경우 법 실효성 논란은 지금보다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또 경영책임자 처벌기준의 핵심이 되는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도 대통령령으로 위임했다. 하위법령에서 법 적용범위가 후퇴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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